‘김수현’이라는 아이콘이 마주한 세 개의 전선 시네마테크KOFA 2월 기획전 : 김수현 영화데뷔 40주년 특별전

by.김한상(한국영상자료원 연구원) 2009-01-15조회 1,793
김수현 드라마

올해로 작가 김수현의 영화가 40년이 되었다. 1968년 MBC 라디오 연속극 공모상 당선작 <저 눈밭에 사슴이>의 신선한 매력을 눈여겨본 정소영 감독이 이를 영화화(1969)하면서 원작자인 그에게 각본을 맡겼고 그로부터 40년이 흘렀다. 그로부터 <미워도 다시한번 2002>(2001)에 이르기까지 그는 총 22편의 영화에서 시나리오를 썼고, 12편의 영화에 원작을 제공했다(한국영상자료원 데이터베이스 기준). 신봉승이나 김지헌, 윤삼육 같은 이들에는 못 미치지만 그렇다고 결코 적다고 치부할 수 없는 편수이고, <내가 버린 여자>(1977)나 <어미>(1985) 같은 영화에서 보듯이 흥행성으로나 작품성으로나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도 상당하다. 하지만 ‘김수현’과 ‘영화’를 함께 놓고 보았을 때 생기는 묘한 어색함은 떨쳐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방송 쪽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일 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김수현’이라는 20세기 후반 한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숙명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인식의 전선(戰線)들 때문이다. 이번 기획전은 그 전선 앞에 함께 서는 경험이 될 것이다.

전선1 -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김수현은 작가다. 이것은 ‘작가주의’ 운운할 때의 ‘작가’와는 다른 층위의 호칭이다. 영화에서 그녀는 철저하게 글쟁이 역할에 한정된다. 대본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들을 영화화하는 것은 감독의 몫으로 여겨진다. 이는 영화를 감독 개인의 예술로 환원하는 오랜 관행이 낳은 문제다. 물론 한국의 영화제작 구조에서 이는 얼마간 근거 있는 분류방법이지만, 여러 사람의 기여를 통해 완성되는 공동창작물로서 영화의 특성을 생각할 때 부당한 것은 사실이다. 김수현의 작품들은 이에 대한 하나의 반론이다. 정소영, 변장호, 김기, 이두용 등 각기 다른 감독들이 연출을 맡았지만, 이번에 선보이는 스물 네편의 작품들에서는 ‘김수현’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관된 성격을 볼 수 있다.

전선2 - 영화는 여성보다는 남성에 의해 주도된다? 누구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주장하지 않지만 이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도서관에 꽂힌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영화의 역사는 남성 영화인들과 일부 여배우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는 실제 영화현장의 남성지배적 환경도 원인일 것이며, 여성 영화인이 주도하기 어려운 구조적 원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렇던가? 영화시장을 움직이는 관객은 태동 이래로 여성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던가. 그녀들을 울리고 웃기는 영화, 아니 거꾸로 말해서 그녀들의 욕구에 부응하여 마음껏 울고 웃을 계기를 제공하는 영화들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런 측면을 생각할 때 ‘김수현’의 존재는 상징적이다. 여성 시청자들과 여성 작가 김수현의 견고한 동맹은 스크린 앞에서 역시 발휘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간과된, 그러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그 역사를 돌아보아야 한다.

전선3 - 방송드라마에서 시작된 통속성은 저질이다? 어쩌면 ‘김수현’이라는 상징적 존재가 아직까지 학술적 영역에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런 인식 때문일 것이다. 30여 편의 영화에 기여한 그가 영화인으로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통속성은 저질일까? 적어도 그의 드라마와 멜로영화에서 나타나는 ‘통속적’ 이야기들 속에는 ‘정치’가, 계급과 성차를 둘러싼 날카로운 사회고발이 녹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이야기들에 몸으로 반응했던 그 시대 관객들의 욕망, 슬픔과 희열이 배어 있다. 김수현을 대면하는 것은 바로 그 날 것의 역사를 만나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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