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태와 영자(하길종, 1979) 70년대 한국영화를 이끈 활기와 슬픔의 미학

by.김영진(영화평론가) 2008-07-04조회 712
병태와 영자 스틸

<병태와 영자>(하길종, 1979)는 故하길종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다. 중학생 때 이 영화가 개봉했던 극장이 만원사례였던 걸 기억한다. 훗날 <만추>(이만희, 1966)로 유명한 원로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 선생에게서 <병태와 영자> 개봉 당시 하길종 감독과 얽힌 사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하길종 감독은 <병태와 영자> 개봉 직후 빨리 다음 영화를 찍고 싶은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병태와 영자>가 흥행에 성공하자 하길종 감독은 여기 저기 축하주를 사라는 자리에 불려 다녔다. 그 즈음 거리에서 우연히 하길종 감독을 만난 김지헌 선생은 그에게서 다소 황당한 제안을 들었다. 하길종 감독은 그 자리에서 당장 소록도로 함께 떠나자고 졸랐다. “이제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으니 원하던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생각했던 아이템을 당장 쓰자.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길종 감독은 말했다. 김지헌 선생은 그런 그를 말렸다. “왜 서두르느냐. 내일 떠나도 늦지 않다. 내일 새벽에 만나자.” 그러나 바로 그날 밤 하길종 감독은 술자리에서 쓰러져 운명을 달리 했다. 김지헌 선생은 “아마도 그 날 어떤 불길한 운명의 예감이 하길종 감독을 재촉했을 것이라고, 그런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돌이켰다.

하길종 감독 본인이 <병태와 영자>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꿈꿨던 이상의 영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전위적인 영화를 찍고 싶어 했고 동시대의 미국이나 유럽의 젊은 감독들의 영화와 겨루고 싶어 했다. 전근대적인 당시 한국영화계의 현실을 탓하면서 그는 서서히 적응하고 있었다.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이후 <속 별들의 고향>(하길종, 1978)과 <병태와 영자>로 이어지는 그의 흥행작들은 그가 하고 싶었던 영화를 위해 일보 후퇴한다는 기분으로 만든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요즘 영화에선 찾기 힘든 어떤 울컥하는 열정과 상실감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하길종 감독의 또 다른 저력이 아니겠는가, 동시대를 끌어안을 수 있는 그의 예술가적 안테나의 예민함을 드러내는 게 아니었을까 추측하는 것이다.

<바보들의 행진>의 속편인 이 영화는 병태가 군대 말년에 병장 신분으로 면회 온 영자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보들의 행진>에서 휴교령이 내려진 대학 캠퍼스에서 구토를 하며 오열하던 병태는 부대 앞길을 걸으며 기계적으로 마주치는 상관에게 경례를 올려붙이는, 준사회인으로 변해 있다. 그는 이제 청춘을 보내고 어른이 되려 하고 있다. 어디로 에너지를 발산할지 몰라 절망하던 대학생은 이제 군대를 제대하면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사랑하는 영자에게 청혼할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런 병태에게 영자는 꿈 깨라고 충고한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여자는 바겐세일 하는 게 아니래. 비쌀 때 팔아야 한 대.” 영자는 병태를 기다릴 수 없다. 그런 영자를 병태는 잡아야 한다.

<바보들의 행진>이 그랬듯이 동해바다로 고래를 잡으러 떠나는 청춘의 열망과 상실감을 <병태와 영자>는 담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슬프다. 어디론가 에너지를 내지르고 싶었지만 이제 그 청춘의 에너지는 사회적 정착을 모색하는데 쓰여야 한다. 영화 중반에 아직 대학생 신분인 병태는 영자와 결혼할 것을 가족들에게 선언하고 영자를 가족들에게 소개시킨다. 어색하고 썰렁한 그 상견례 자리가 파한 후에 병태는 가족들의 허락을 받기 위해 작전에 돌입한다. 형, 형수, 남동생에게 사정한 끝에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낸 병태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접근한다. 어머니는 안방에 누워 있다. “누구냐?” “접니다. 둘째 아들입니다.” “잘 됐다. 이리 와서 허리나 주물러라.” 병태가 어머니의 허리를 주무르며 눈치를 보는 동안 어머니는 말한다. “그래, 그 아가씨는 너 같은 놈이 어디가 좋다던. 천하에 불한당 같은 네가 어디가 좋다던?” 이윽고 어머니가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나, 사실 그 아가씨가 마음에 들었다. 젊었을 적 나처럼 예쁘더라. 전부 다 예뻐. 손도 발도 다 예뻐. 발도 만두처럼 예뻐.” 그리고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소란스런 요즘 일부 한국 영화에 결핍된 것은 바로 이것, ‘삶’이다. 최인호가 쓴 <병태와 영자>의 시나리오에는 평범한 삶을 묘사하면서도 거기서 문득 배어나는 희로애락의 감정, 그리고 어깨 너머로 흘낏 엿보는 듯한 어머니의 마음 같은 것이 잘 드러난다.

<병태와 영자>의 결말은 해피 앤드다. 잘 나가는 의사인 영자의 약혼자와 내기를 건 병태는 그가 약혼식장까지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자신은 뛰어서 더 빨리 목적지까지 도착하겠다고 다짐한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이것은 더스틴 호프만이 나온 <졸업>(마이클 니콜스, 1972)을 의식한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시대의 할리우드 영화에 담긴 청춘의 에너지와는 다른 걸 끌어낸다. 국군의 날 행사에 영자의 약혼자가 탄 차가 막혀 있는 사이에 병태는 있는 힘껏 달리며 결국 그보다 먼저 도착하고 내기에 이긴다. 군인들이 행진하고 있는 여의도 광장을 병태는 달린다. 그렇게 달리는 병태의 에너지는 <바보들의 행진>에서 고래를 잡으러 동해바다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에피소드처럼 활기차면서도 슬프다.

사방이 극복되기 힘든 사회적 억압의 분위기로 가득했던 병영 체제 시절에 젊은이들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활기와 슬픔이 공존하는 이것은, 최악의 시기라고 폄하됐던 70년대의 한국 영화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에너지이다. 영화 초반에 자신을 면회 온 영자에게 달려가다 고꾸라지는 병장 병태의 모습위로 겹쳐지는 ‘사랑과평화’의 당대 히트곡 ‘한동안 뜸했었지’의 가사처럼, 그 당시 일부 영화의 결기는 슬픔을 씩씩함으로 감춘다.

“한동안 뜸했었지. 웬일인지 궁금했었지. 혹시 맘이 변했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안절부절 했었지.”
이 노래가 씩씩한 척 하는 슬픈 노래인 줄 나중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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