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공동정범 김일란, 이혁상, 2016

by.변영주(영화감독) 2018-03-22조회 4,187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제작진은 종종 스스로 만든 것이건 혹은 피사체의 삶과 환경에 의한 것이건 함정에 빠지곤 한다. 이야기와 캐릭터의 중심이 상상에 의해 건설된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있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바라보며 서로를 해석해오던 관계와 삶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동정범>의 김일란, 이혁상 감독도 어쩌면 이 함정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가 그들 작품의 첫 번째 미션이었을지 모르겠다.

전작 <두 개의 문>은 그 탁월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시퀀스가 빠져있다. 바로 그때 망루에 있었던 당사자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그 당사자들이 석방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공동정범>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비극의 시간들을 함께 “기록”해낼 수 없었다. 각자의 기억은 이어지지 않는 파편들로 가득했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상태였고, 서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여기서 김일란, 이혁상의 훌륭한 “함정 빠져나오기”의 선택이 이뤄진다. 두 감독은 파편화된 기억을 억지로 조합하여 봉합하지 않는다. “도시 재개발의 야만적 폭력”과 “공권력의 남용”이라는 깃발 같은 화두를 앞세워 이 상황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들은 바로 지금의 상태에서 더 작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제 투덜거리며 누군가를 원망하는 사람 (천주석), 죄의식에 스스로와 주위를 괴롭히며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 (김주환), 자신의 기억과 객관적인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 (지석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와 지금을 연결시켜 읽어보려 애쓰는 사람 (김창수), 그리고 모든 것을 봉합하며 깃발만을 바라보자고 말하는 사람 (이충연)과 함께 두 감독은 엔딩을 알 수 없는 깊은 대화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대화가 놀랍도록 기이하다. 보통의 경우, 제작진이 카메라를 들고 그들 곁으로 가서 이야기를 꺼내도록 독려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의 주체는 실은 피사체가 아니라 그것을 주워 담는 제작진이다. 그러나 <공동정범>은 다르다. 마치 카메라는 대나무 숲처럼 그들 곁에 부유하고, 그들은 세상 누구에게도 하고 싶지 않거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귓속말하듯 카메라에 속삭이기 시작한다. <공동정범>을 독해하고자 할 때 너무나 다층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메라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그 자발적이고 폐쇄적인 웅얼거림을 듣고 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난 감옥에 있을 때 <두 개의 문> 이야기를 들었어. 니들은 내 편인 것 같아. 저 카메라는 실은 내 일기장이 될 것이야”라고 주장하는 다섯 명의 생존자들이 카메라에 부탁을 하는 형국이다. “나는 좀 힘든데, 네가 내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전해주겠니?” 그래서 <공동정범>은 영화의 대부분이 주관적이며 복합적이다. 카메라는 옵저버가 아니라 메신저이거나 대나무 숲의 바람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곁들에게 조심스레 전한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장면 이충연이 눈물을 흘릴 때 관객은 긴장한다. 누군가는 눈물이 흐를 것을 예견하며 제발 카메라가 그때까지 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예견했음에도 눈물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그 눈물은 결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이충연도 카메라를 자신의 메신저로 여기게 된 시작으로 느껴졌다. 바꿔 말하면 <공동정범>의 마지막은 봉합이 아니라 이제 겨우 스스로의 상처 밖으로 조심스레 나와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그들의 결심인 것이다.  <공동정범>에 표현주의적인 자유로운 이미지들이 오히려 더 많이 사용되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카메라가 결국 옵져버의 태도로 돌아왔어야 했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갖게 되는 어떤 아쉬움은 어쩌면 메신저로서의 카메라 그 너머의 바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가 완성된 후,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영화를 본다. 그리고 영화를 본 후, 천주석은 이충연이 망루에서 제일 먼저 나간 것이 자신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살길을 먼저 보여준 것이고 그래서 결국 그로 인해 우리가 살아남은 것 아닐까하는 이야기를 했다. 난 영화가 세상에 복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역할 중에서 이보다 더 찬란하고 고마운 역할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공동정범>은 나에게 이제 세상의 상처받은 모든 피해자들에게 그 상처 너머의 대화를 시작해보자고 넌지시 독려하는 친절하고 상냥한 쪽지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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