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수성못 유지영, 2017

by.백승빈(영화감독) 2018-04-05조회 6,416
수성못 스틸

영화학교 졸업작품인 <어느 날 갑자기> 때부터 첫 장편영화인 <수성못>을 거쳐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는 두 번째 장편에 이르기까지, 나 혼자 조용히 지켜보고 몰래 미리 엿듣는 유지영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위장한) 저승사자 캐릭터가 등장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시 계 바늘처럼 째깍째깍 돌아가며 인물들 위를 거뭇하게 드리웠다가 슬그머니 숨었다가 다시 길쭉하게 혀를 내미는 것 같은 이들 영화에서 저승사자 캐릭터를 단번에 알아맞히기란 예상외로 어렵지 않다. 그 이유인즉,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겉도는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도, 막상 존재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인물이 바로 그 저승사자이기 때문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죽음을 이야기하다가 누구는 귀신이 되고 누구는 시체가 되는 학원물이었던 <어느 날 갑자기>에서 그 역할은, 이성복의 시를 주술처럼 읊조리고 다니던 문학 선생이었고, 연못에 빠져 죽은 남자의 귀신이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 <수성못>에선, 호객행위를 하며 주인공 ‘희정’의 팔목을 덥석 붙잡는 휴대폰 매장 직원이 그 역할을 맡았다. 전자의 작품에서 저승사자는 주인공 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선생과 제자라는 권력 관계를 이루며 만나기 때문에 후자의 경우에 비해 좀 더 고상한 품격과 신비로운 아우라 같은 것으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수성못>의 저승사자인 폰팔이 청년은 주인공에게 쌍욕까지 들으며 등장한다. (“ㅆㅂ새끼가... 팔 안 놓을래...?”) 그리고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 (대충 이야기만 엿들은) 두 번째 장편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을 죽음의 길로 인도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다니는 캐릭터가 나온다. 감독의 (이미) 학습된 팬으로서, (저승사자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묘한 행위로 등장하는 그 캐릭터의 설정을 듣고 있자니, 내 입꼬리가 조용히 올라가더라니까. 왜냐하면, 그럴 줄 알았고, 재밌게도 들려서다.
   
 수성못  스틸
(서울미래대학 편입시험을 앞두고 있는) 수성못 알바생 희정 
 
영화를 아직 못 본 사람들에게 <수성못>에 대한 감상/의견을 꺼낼 때마다 나는 매번 이렇게 ‘저승사자’에 대한 코멘트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아마도 그 이유라고 한다면, 상대방에게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무엇보다 적당한 수사이면서, 그 역할을 주목하는 것이 영화를 가장 재밌고 정확하게 즐길 수 있는 출발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되면, 이 영화의 감독 또한, 좋은 좌석에 앉아 편안하고 또렷하게 영화를 따라가는 관객을 보며 감사하고 뿌듯해하지 않을까? 우와, 내가 타깃으로 노린 관객의 정확한 모습이 요기 있네, 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은, 조만간 정식으로 개봉한다는 유지영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수성못>을 좀 더 재밌고 정확하게 즐길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물론,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오독의 가능성을 무시할 만큼 확신에 차 있진 않겠지만, 감독의 전작들이 한글파일의 텍스트였을 때부터 지켜본 독자/관객이었던 나로선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견이고, 이유도 있는 접근이자 해석일 것이라 주장하며 ‘수성못’의 가이드에 나서볼까 한다. 
 
이 영화는 더러운 물속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탁한 물속에 가라앉아있던 카메라가 명랑한 기타 소리와 함께 슬그머니 고개를 밖으로 드러내면, 저 멀리 오리배 몇 척이 둥둥 떠다니는 연못의 전경이 보이고, 그 위로 <수성못>이라는 오프닝 타이틀이 뜬다는 얘기다. 이 장면을 기억해두면 좋다는 코멘트는 따로 하지 않겠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엔딩 크레딧이 떠오를 때 슬그머니 다시 기억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등장하는 인물은 수성못의 오리배를 관리하고, 이용객들을 응대하는 알바생 ‘희정’으로, 그는 손님이 없는 시간 틈틈이 시험공부에 열중한다. 그는 곧 있을 대학편입 시험에 합격하면 (지금 거주하고 있는) 대구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들떠있다. 그동안 저축한 월급의 총액이 찍힌 대구은행 통장을 고속열차 예매 티켓 마냥 뿌듯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막바지 시험공부에 열심이던 어느 비 오는 날의 오후, 희정이 깜빡 조는 사이에 몰래 오리배를 타고 나갔던 중년 남자가 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벌어진다. 누가 뭐란 것도 아닌데, 자신의 부주의를 걱정해 조마조마한 희정은 그날 밤, 구명조끼 하나를 연못 위에 몰래 던져놓고 돌아간다. 그런데 하필 그 시간에 그 장면을 목격한 누군가가 있었으니, 얼마 전 희정의 팔목을 붙잡은 대가로 쌍욕을 들었던 폰팔이 청년 ‘영목’이다. 
 
수성못  스틸
희정과 영목
 
이후의 이야기는 희정의 약점을 잡은 영목이 그를 협박하며(자살방조죄를 들먹이는데 이 부분은 사실 조금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제안한 일을 함께 하게 되고, 그때부터 희정의 주위엔 죽음과 혼돈, 우울과 체념의 귀신들이 서서히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것은 비유와 팩트가 절반씩 섞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함께하는 일이,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대화를 녹취/정리해서 책으로 내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편입시험을 위해 방문했던 서울에서 폭행을 당하고 돌아온 희정은 수성못이 보이는 벤치에 넋 놓고 앉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얘기한다. 입으로 내뱉지 않고 글로 썼으면 분명히 ‘유언’처럼 들렸을, 이 마지막 대사를 들어주는 사람은, 영화 속에서 이미 죽은 중년 남자의 귀신이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팩트이다) 그는 희정에게 ‘그만 집에 들어가라’고 대꾸한다. 마치, 사람들이 이러다가 수성못에 뛰어들어 죽곤 하지, 라는 말이 문장의 앞이건 뒤건 생략되어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목소리로. 여기서 이어지는 사운드는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했던 밝고 명랑한 무드의 기타소리이고, 때마침 돌아보는 희정의 시야엔 수성못의 귀신이 보인다. 영목이 얘기했던 ‘수성못의 전설’에 등장하는 바로 그 귀신이.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대구를 떠나려고 발악하던 주인공의 꿈이 좌절되는 과정, ‘어쩌면 나는 절대 이곳을 떠나지 못하리’ 라는 죽음과도 같은 각성에 이르게 만드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든 자라면, ‘저승사자’라고 불러도 되지 않겠냐는 것이 내 논리의 핵심인 셈이고… 엔딩 크레딧이 시작하며 영목의 목소리로 다시 한번 조곤조곤 설명되는 ‘수성못의 전설’을 떠올려 보면 그는 (감독의 전작에 등장하는 저승사자에 비해선) 꽤 또렷하고 친절한 편이다. 모든 이야기를 조명 불빛이 떨어지는 무대 위의 독백이나 부글부글 끓는 항아리 앞의 정신 나간 주술사처럼 읊조리는 듯한 <어느 날 갑자기>의 문학선생에 비하면 말이다. 그리고 지금 시나리오 작업 중인 두 번째 장편영화에서 (저승사자로 예상되는) 그 역할은 이들에 비해 좀 더 어리고 귀여워서 안아주고 싶기까지 한 면모가 추가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감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몹시 기대가 된다.  
 
수성못  스틸
죽은 남자의 귀신이 나타나자 제사를 지내는 희정

혹시나 (영화를 못 본 관객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이야기들로 짐작되는 <수성못>이, 보기만 해도 전염될 것 같은 우울함의 정서로 전체가 코팅된 영화일까 봐 걱정된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먼저 하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코미디는 결국 어떤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 대상이 ‘죽음’이나 ‘자살’ 같은 우울하고 어두운 단어로 정리될 순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역설적으로 이 주인공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서 애쓰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순간과 만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 내내 일관적으로 보여준 그 시니컬하게 귀여운 태도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 영화가 그런 역설의 경지를 독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까진 못하겠지만, 감독이 어딘가에 글로 남겨둔 연출 의도를 보고 나면 두 번째 장편영화에 대한 기대가 더욱 선명해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나침반의 바늘을 들여다보면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습니다. 우리 삶도 지금보다는 좀 더 정확한 방향을 찾기 위해 조금씩 흔들리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작은 움직임이 곧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나리오가 조금씩 수정되면서 영화에 충분히 등장하지 못한 캐릭터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는데, 그는 희정의 아버지다. 대구에 거주하며 어떻게든 그곳을 떠나려고 애쓴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을 생각만 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가져다 놓은 현재의 버전과는 결과적으로 (이 중/노년 남자의 서사가) 굳이 어울리지도 않고,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도 정확한 대답을 해주기 뭣한 에피소드였지만, 하루 종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성냥개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로 배(boat)를 만들고 있던 그의 뒷모습에 대한 묘사가 있었다. 초기 시나리오에서 말이다. 그때도 아버지에게 어떤 특별한 사연이나 서사 같은 게 더 있지는 않았지만, 희정의 가족들이 부대끼고 사는 집안의 묘사를 보고 있으면, ‘대구’라는 지역과 그곳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대한 괴상하고 인상적인 스케치로 받아들여지더라. 나는 나중에 그가 성냥개비로 만든 배를 타고 수성못을 횡단할 줄 알았다. 물론, 말이 안 될 것 같지만, 그때의 시나리오를 그런 초현실을 불러낼 만한 깊고 어둡고 답답하고 커다란 그릇 같은 느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서 굳이 언급해본다.    
 
유지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에서 앞서 옮긴 그의 연출 의도가 어떻게 더 보편적으로 또렷해지거나, 흥미진진하게 더 모호해질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정해진 분량을 훨씬 넘어서) <수성못>을 가이드해보았다. 이 글이 공개될 즈음엔 아마 개봉 일자가 나와 있으리라 예상하는데, 모쪼록 많은 분이 수성못의 전설을 듣고 서서히 빠져들길 바라본다. 가이드의 역할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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