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절: 1월의 영화 하길종, 1973

by.김영진(영화평론가) 2021-01-05조회 3,481
미성숙한 작가의식

<수절>(1973)은 하길종 자신의 말과 글에 의해 한동안 신비화된 작품이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UCLA 대학원 동문이었으며 졸업 작품으로 MGM에서 주는 주요한 상을 받았고 귀국해서는 한국사회의 폭압성을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풍의 전위적인 스타일로 형상화환 데뷔작 <화분>(1972)으로 비평적 스캔들을 일으켰던 하길종은 당시의 충무로를 활동사진적 의식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전근대적 장터와 같은 곳으로 비유했으며 자신을 그 불모지에 처한 순교자 내지는 희생자로 여겼다. 대학원 동문 코폴라는 <대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본인은 영화예술의 폐허 한국에서 검열과 낙후된 시스템의 이중고 속에서 고통받는, 미완의 영화작가일 수밖에 없는 운명의 순교자로 여겼다. 이 나르시시즘은 그의 예리한 평문이 지닌 설득력 덕분에 한동안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여졌는데 그 예시가 되는 작품 중 하나가 <수절>이었다.
 

“<화분>을 연출한 후 써낸 나의 시나리오는 매번 제작자의 거부반응을 받거나 칼자루를 든 관(官)에서 항시 보이코트를 받아왔다. 최대한도로 현실과 타협해서 만든 <수절>은 ‘저항적이다’ ‘반사회적이다’는 이유로 20분이 커트 당했고 극장에서는 알맹이가 빠진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졌다.” 사지가 잘려나갔다는 고통을 하길종 스스로 느꼈다는 <수절>의 검열 수난사는 그의 말대로 검열에 다치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공개됐다면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함의를 남긴다. 1970년대의 엄혹한 유신정권 시대의 검열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지금 남아 있는 필름 <수절>에서 하길종의 영화작가로서의 재능은 그의 자의식에 비해 별로 드러나는 게 없다. 그보다는 한국영화의 부족한 물적 시스템을 아랑곳하지 않고 현실에 비해 이상만 높았던 야심가의 무모한 시도가 참혹하게 실패한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수절>의 배경은 한사군 시대. 행복한 삶을 살던 유는 아내 길과 딸 영을 남겨두고 전쟁터로 떠난다. 유는 적군의 포로가 된다. 10년 만에 돌아온 유는 아내와 딸을 만나지만 그들이 귀신임을 알게 되고 사건의 전모를 전해 듣는다. 유의 귀환을 믿었던 아내와 딸은 빈곤과 전염병, 가뭄을 이겨내지만 도읍의 실력자인 장군에게 모녀가 함께 윤간, 살해당한다. 마지막 시퀀스는 유와 장군의 결투. 폭정에 대한 저항이라는 알레고리는 쉽게 드러나지만 장면의 컨티뉴어티 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쇼트의 연결은 조악하다.
 

<수절>의 전반적인 문제는 아무리 검열과 열악한 제작환경의 이중고를 겪었다고 하더라도 1970년대의 다른 한국영화에 비해서도 완연히 처지는 구성감각이다. 쇼트와 쇼트가 붙는다는 느낌이 없이 쇼트 하나에 잔뜩 힘을 주지만 그 다음 쇼트와의 배열에는 무능한, 검열에서 잘린 탓이라고 하기엔 장면들내의 리듬이 아예 성립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초반에 유가 귀신이 된 아내와 딸을 만나는 장면을 비롯해 이 영화에는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의 영향이 희미하게 어른거리지만 이걸 인용, 참조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것이 수평적 비교가 아예 불가능한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한때 하길종의 동료였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홍파는 이에 관해 영화진흥공사에서 발간한 <영화>지에 실은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매섭게 지적했다. “하길종이 ‘활동사진’論을 약간 늦춘 것은 그 자신이 두 번째 연출한 <수절> 이후쯤이라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그 작품이 그가 그렇게 매도해 마지않았던 ‘활동사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결과의 양심이었음에 분명했다. 그는 비로소 한국영화 풍토를 익혔으며 진정한 추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제작 실태의 과정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고독해 갔다. 그는 많은 사람들과 만났지만 더욱 고독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그를 어느 제작자도 찾지 않았다. 괴팍하고 열기찬 그는 제작자들이 원하는 고분고분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는 서라벌예대, 서울예술전문교의 학생들에게 영화 열정을 심어주려 애쓰기도 했다.”
 

그 이후의 하길종의 삶은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다. 그는 지속적으로 매서운 필봉을 휘둘렀으며 (감독으로서만큼이나 비평가로서 하길종이 한국영화사에 기여한 공로는 크다) 한국영화시스템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그 자신의 영화적 호흡을 가늠하게 하는 준수한 영화를 만들었다. <바보들의 행진>과 <속 별들의 고향>, <병태와 영자>는 동시대의 한국영화계를 내려다보는 오만 없이 수평적으로 영화인들과 소통하면서 해낸 상대적으로 성공한 그의 작업결과물이다. <수절>까지의 그는 병사들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돌격을 명하는 전쟁터의 무모한 장군과 같았다. <수절>에는 그런 지휘자의 돌격 구호에 따라 배우들이 느꼈을 엄청난 물리적 고통이 화면을 통해서도 느껴지는 장면들이 많다. 구원에의 전망이 사라진 고대 세계를 묘사하면서 하길종은 당대의 한국사회를 비유하려 했다. 그것이 너무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만큼이나 폭정, 억압, 가난, 전염병에 시달리는 <수절>의 화면 속 인물들의 고통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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