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갯마을 : 9월의 영화 II

by.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교수) 2019-09-16조회 7,649
갯마을 스틸

1953년에 발표된 오영수의 단편소설을 신봉승의 각색을 거쳐 김수용 감독이 1965년에 장편으로 완성한 영화다. 1965년 11월에 개봉한 <갯마을>(김수용, 1965)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1961), <벙어리 삼룡>(신상옥, 1964)과 더불어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예술영화로까지 의미가 확장된 ‘문예영화’의 기준을 확립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흥행과 비평 면에서 모두 성공적이었고, 이후 1967년까지 폭발적으로 이어진 문예영화 전성기를 연 기념비적인 영화다. 

장편영화만 109편을 연출한 김수용 감독은 이 영화의 성공으로 문예영화의 기수로 떠오르게 되는데, 한국 문예영화의 전성기는 김수용의 영화 활동의 전성기와 대략 일치한다. 예술성 있는 문예영화가 수익성도 있다는 것을 입증한 이 영화의 경험으로 김수용 감독은 소설의 영화화에 더욱 매진하였던 것이다. <까치소리>(1967), <안개>(1967), <산불>(1967) 등 그의 대표작은 거의 문예영화였던 점이 이를 잘 나타내준다. 짧은 단편소설을 장편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원작에 없는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을 더하여 좀 더 스토리라인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 해순과 시어머니, 상수, 그리고 동네 아낙들로 이루어진 원작의 단순한 캐릭터 구성 위에 영화에서는 시동생을 주요 캐릭터로 더하였다. 그리고 남편의 죽음 이후, 해순이 상수와 함께 하는 육지 생활과 산속 생활이 새롭게 추가되어 구체적으로 묘사됨으로써 영화의 드라마적 구성이 더 풍부해졌다.    
 

결혼한 지 이제 열흘이 된 새댁 해순(고은아)의 남편 성구(조용수)가 고깃배를 타고 출항한 후 거센 폭풍우로 인해 사망하고, 그녀는 시어머니(황정순), 시동생 성칠(이낙훈)과 함께 살아간다. 바닷가 갯마을은 과부가 많은 동네로 시어머니도 일찍 남편과 사별했다. 경제적 토대와 일상적 생활이 서로 한데 엮인 연대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갯마을 과부들은 끊임없는 성적 농담으로 자신의 척박한 처지를 이겨낸다. 그러던 중 아름답고 해맑은 해순을 쫒아 다니는 건장한 상수(신영균)는 그녀와 새출발하고 싶어 하고, 도망 다니던 해순은 결국 그와 관계를 맺게 된다. 성칠과 어머니는 해순과 상수 사이를 눈치 채고 해순을 설득하여 보내기로 한다.  

원작은 상수가 징용에 끌려가자 홀로 산에 남은 해순이 바다를 그리워 하다가 병이 나서 갯마을로 돌아가는 결말이다. 이에 반해 영화는 서사적 확장을 꾀하기 위해 에피소드들을 추가한다. 채석장에서 행복하게 일하던 두 사람이 살인사건에 연루되자 산속으로 들어가 숨어살던 중, 지나가던 사냥꾼이 해순을 겁탈하려 한다. 그러자 상수가 사냥꾼을 죽이고, 해순은 기절한다. 상수는 약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갔다가 산으로 뛰어오던 중 절벽 밑으로 떨어져 죽는다. 정성스럽게 남편의 장례를 지낸 해순은 그리운 갯마을로 돌아온다. 시어머니와 마을 아낙들은 해순을 반갑게 맞이하고, 해순은 다시는 바다를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원작이 해순과 상수의 해후를 열린 결말로 놓았다면, 영화는 두 번이나 사별한 해순이 운명에 순응하면서 다시 갯마을에서 갈아가기로 결심하는 닫힌 결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말은 운명의 비정함과 삶의 건강한 활력이 뒤섞이는 보다 풍부한 마무리를 생산해낸다. 

<갯마을>은 <벙어리 삼룡>처럼 향토색 짙은 서정성의 로컬 컬러 경향의 영화로 보이지만, 이전 향토성 문예영화들과 다른 면이 많다. 갯마을은 시대성이나 외부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는 원형적인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과부들로 구성된 여성 공동체에서는 성적 욕망을 마음껏 발산해도 된다. 남편 없는 이들이 섹스를 그리워하는 직설적인 농담을 나누거나, 서로의 맨 다리를 베고 누워 서로의 육체를 찬양하거나, 여성들끼리 진하게 포옹하고 키스하며 뒹구는 장면은 에로틱하면서도 건강한 생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갯마을이라는 원형적인 공간은 원초적인 삶의 양태들로 가득 채워져 생동하는 삶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표현된다. 영화가 보여주는 삶의 원초적 건강성이 뿜어내는 매혹은 비관적인 신파성과 거리를 둔다. 이 위에 1960년대 한국 감독들이 의식하고 있었던 유럽 모더니즘 영화의 영향이 더해진다. 캐릭터들의 농담과 태도에서 보여지는 보다 건조한 표현은 영화적 품격으로 나타난다. 해순이 상수를 받아들이던 날 클로즈업의 투 쇼트를 보자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나 루이 말의 영화처럼 내면의 환희와 갈등이라는 복잡한 감정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카메라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이처럼 분열된 의식세계가 감각적인 서구의 예술영화적 기법으로 표현된다.  

바다와 갯벌, 이 속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성적 욕망은 원초성의 자연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유교적인 사회적 규범이 깨어지는 장면들은 어색하지 않다. 남편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남자를 받아들이는 것, 이제 막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며느리를 재가시키는 것, 다시 돌아온 며느리를 가족의 일원으로 환영하는 것과 같은 장면들은 이전 영화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진보적인 애티튜드다. 
 

굿과 성황당 또한 원초성의 상징으로 기능하는데, 이전 영화들에서 무속이 전근대성의 표상으로 타파해야 할 구습으로 비춰지는 면이 있었다면, <갯마을>의 무속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삶과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순응하는 갯마을 사람들에게 무속은 또 하나의 자연의 일부다. 해순이 남편의 혼백을 건져내는 푸닥거리 장면, 그리고 아들의 넋을 건져내 정성스레 품에 안고 집으로 데려오는 어머니의 행동은 기이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사람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일상적 제의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갯마을>은 신파성에서 한걸음 나아가며 모더니즘 영화언어에 대한 갈망을 그려내는 전환기적인 작품이며 문예영화의 기준이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영화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진보적인 이상적 여성 공동체는 지금 봐도 놀랍다.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성과 동시대적 이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계속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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