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막: 6월의 영화 Ⅰ 이두용, 1980

by.김경욱(영화평론가) 2019-06-01조회 843
피막 스틸
이두용의 <피막>(1980)은 전국 각지의 무당들이 강 진사 집으로 몰려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강진사의 장남 성민이 알 수 없는 병으로 혼수상태에 빠지자 굿을 통해 고쳐보려는 것이다. 무당 가운데 옥화(유지인)가 영험을 보이자 나머지 무당들은 모두 물러간다. 옥화는 마을 외딴 곳에 묻혀있던 호리병을 찾아내고 거기에 갇혀 있던 원혼이 성민에게 씌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강 진사 집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게 되고 미스터리는 차츰 풀려나간다. 

이두용이 이 영화 바로 전에 연출한 영화는 <최후의 증인>(1980)이었다. 한국전쟁의 상처와 분단의 후유증을 담아내려고 열심히 찍었지만 ‘빨갱이 영화’로 몰려 온갖 고초를 겪었다. 이두용은 2시간 30분 길이의 영화가 40분이 잘려나가는 걸 보고 상심한 나머지 영화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제작자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피막>은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액션영화를 주로 찍었던 이두용은 당시 이른바 ‘토속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시기 한국 대중영화의 주류는 ‘에로티시즘 영화’였다. 따라서 <피막>은 토속적 샤머니즘과 에로티시즘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원혼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질 때, 에로틱한 설정과 장면들이 나열된다. 강 진사 집안에는 남자들이 요절을 많이 한 탓에 청상과부들이 즐비한데, 여인네들은 밤마다 욕망을 참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그 가운데 둘째 며느리(김윤경)는 자해를 계속 하다 상처가 덧나 중태에 빠진다. 그녀는 ‘피막’으로 옮겨지는데, 피막지기 삼돌(남궁원)의 극진한 간호로 살아난다. 처음에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성관계를 맺게 되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그 대가로 두 사람은 강 진사 집 사람들에게 살해당한다. 원혼의 주인공은 삼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계급이 다른 남녀(여성이 양반이고 남성이 완전 밑바닥 계급인 경우가 많다)가 성관계를 맺는 설정을 통해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고 그 결과 비극을 맞이하는 결말은 1980년대 토속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여기에 옥화가 강 진사 집 남자들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설정을 통해 에로틱한 장면이 더해진다.  

옥화의 굿 때문인지 성민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빠르게 회복된 그는 그간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다. 동경유학을 다녀온 듯한 그는 ‘과학문명으로 개화된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며 옥화의 영험을 믿는 가족들을 비판한다. 그는 옥화와 관련된 죽음의 현장에 가서 형사처럼 조목조목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는다. 샤머니즘을 모티브로 전개되던 영화는 이 대목에서 전근대와 근대가 충돌한다. 피막에서 씻김굿을 하는 옥화와 과학적인 설명을 하는 성민의 장면은 교차 편집을 통해 더욱 대비된다. 성민의 추리는 설득력이 있지만 그럼에도 옥화가 내림굿을 통해 진짜 무당이 되는 과정이나 피막에 묻힌 삼돌의 시체가 20여 년 동안 하나도 썩지 않은 상태 등은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옥화는 강 진사에게 자신이 삼돌의 딸이라고 정체를 밝힌 다음 죽이려고 하다 잘못을 빌자 복수를 포기한다. 한국 공포영화에서 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 원수들을 처치하다가 가부장(주로 시아버지)에게 억울함을 호소한 다음 복수를 멈추고 물러나는 설정과 유사하다. 이두용은 근대로의 방향은 동의하지만, 전근대의 가치에 대해 연민과 동조의 시선을 보낸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설정은 ‘피막’이라는 공간이다. 그 곳은 혼령이 돌아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죽어가는 병자를 마을에서 멀리 옮겨놓는 장소로서, 하계와 이승의 중간정거장 같은 곳이다. 다시 말해서 호상도 누리지 못하고 가족들의 임종도 받지 못한 영혼들의 한이 서린 공간이다. 옥화는 복수를 완수하고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피막에 들어간다. 그녀가 기도를 시작하자 억울하게 죽었다고 호소하는 수많은 원혼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때 그 원혼들은 멀리는 한국전쟁에서부터 가까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한국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희생자들처럼 보인다. 이두용은 인터뷰(월간 [키노](1999년 9월)에서, ‘1980년대는 검열을 피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대였다. 사실적인 작품을 할 수가 없으니 사극의 형태를 빈 영화를 선택했다. 정권에 아부하기는 싫고 생존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근대사를 표현한 미스터리한 사극 <초분>(1977) <물도리동>(1979) <피막>을 연출했다’고 말한다. 옥화가 그 모든 원혼들에게 한을 풀어주겠다고 응답할 때, 피막에 불을 지르고 아버지와 다른 모든 원혼들과 함께 산화할 때, 그 앞에서 안타까워하는 마을 사람들과 원혼들을 달래는 굿 소리가 어우러질 때, <피막>은 역사의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곡이 된다.

<피막>은 한국영화 최초로 1981년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되어 특별상을 받았다. 한국영화사에서 1970-80년대는 무자비한 검열과 3S 정책에 의해 초토화된 시기였다. 만일 <피막> 같은 성과마저 없었다면, 그 시대는 완전히 한국영화의 암흑기로만 기록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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