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성공시대> 돈을 독재로 삼은 김판촉 씨의 말로를 보라! : 10월의 영화 Ⅱ 장선우, 1988

by.허남웅(영화평론가) 2018-10-16조회 5,413
성공시대 안성기

제 이름은 ‘허평론’입니다. 평론보다는 리뷰 작업이나 피처 기사 쓰기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이 시장에서는 저를 평론가라고 부릅니다. 평론가라고 부를 때 저에 대한 시장 가치가 발생하는 까닭이죠. 그에 대한 불만요? 없습니다. 그 때문에 돈도 벌고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모든 것은 팔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라는 말이 있죠. 누가 했느냐고요? <성공시대>(1988)의 김판촉(안성기) 씨가 한 얘기입니다. 

<성공시대>는 장선우 감독의 ‘실질적인’ 장편 데뷔작입니다. 장선우 감독은 <성공시대>에 2년 앞서 <서울예수>(1986)를 선우완 감독과 공동으로 연출했죠. 하지만 기독교계의 반발로 제목이 <서울황제>로 강제적으로 바뀌고 검열로 극장 상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등 비운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인 폭압이 ‘아무렇게’ 자행됐던 ‘암울했던’ 시대였죠. 암울했던 시대를 아무렇게 다룬 태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선우 감독이 다시 한번 사회 풍자를 시도한 작품이 <성공시대>입니다. 이 작품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는 건 김판촉 씨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입니다. 

성공시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절대권력은 ‘돈’입니다. 돈이 독재자로 군림하는 시대, 김판촉 씨는 만 원 지폐의 세종대왕 자리에 자신의 얼굴을 대신 ‘뽀샵’ 처리하고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손을 들어 돈을 향한 절대 충성을 맹세합니다. 콧수염만 기르지 않았지 1:9 가르마를 고수하고 슈트를 제복처럼 두른 김판촉 씨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히틀러입니다. 대중을 현혹하는 언사도 어쩜 그렇게 닮았는지, 취업 면접날 아무거나 팔아보라는 면접위원들의 요구에 주먹을 쥐어 술이 있다고 속이고 돈을 받은 후 빈손을 펴며 ‘당신은 제게 ‘상술’을 사셨습니다’ 아재 개그 눙치는 솜씨가 과연 돈의 히틀러다운 면모입니다.

여전히 돈의 장기 독재 시대, 빅 브러더 개념이 돈으로 발현한 현재에도 <성공시대>의 예리한 풍자는 유효합니다. 그럴진대 정확히 30년 전인 당시 장선우의 ‘꼴통’ 기질 다분한 비판 정신에 매료된 시인 김지하는 김판촉 씨의 상징성에 주목해 ‘판촉’으로 이 영화의 제목을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소설가 황석영은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소비 욕구를 극단적으로 부추기는 극 중 극단적인 물질사회의 병폐를 비판하면서 ‘판촉’을 앞세운 제목이 이 영화를 알리는 극단적인 마케팅 용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장선우 감독을 대신해 이 영화의 제목을 ‘성공시대’로 지었습니다. 

확실히 영화 제목으로 ‘판촉’보다는 ‘성공시대’가 더 냉소적이면서 좀 더 반어적이라 더욱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극 중 ‘성공시대’는 성소비(이혜영) 씨가 운영하는 술집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성공시대는 김판촉 씨가 근무하는 회사의 라이벌 기업 중역들이 자주 드나드는 바(bar)입니다. 김판촉 씨는 성소비 씨에게 접근, 애인으로 삼고 라이벌 기업의 내부 정보를 캐내 자사 신상품 개발에 이용합니다. “사랑도 팔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거야” 자본주의적 사랑론을 설파하는 김판촉 씨에게는 그래서 성소비 씨의 존재가 일회적입니다. 결국, 김판촉 씨의 회사가 라이벌 기업을 누르는 순간, 성소비 씨의 이용 가치는 사라지는 거죠. 


김판촉 씨가 돈의 DNA로 움직이는 돈의 황제라면, 성소비 씨는 성호르몬을 풍겨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성의 여왕벌입니다. 버림받은 성소비 씨는 김판촉 씨와 대척점에 있는 기업의 젊은 중역에게 접근, 김판촉 씨가 몰락하는 데 미끄럼틀 역할을 하죠. 물질적 가치가 우선인 자본주의 시대에서 ‘상술’의 가치를 잃은 김판촉 씨는 서울 본사에서 저 먼 강원도의 보잘것없는 보급소 영업소장으로 미끄럼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공시대>는 물질 자본주의 시대의 가치를 간파하여 초스피드로 성공한 김판촉 씨가 부메랑처럼 돌아온 소비사회의 욕망 파편을 맞아 몰락을 예고하는 작품인 셈이죠. 

1980년대 중후반 당시의 살풍경한 한국 사회를 풍자로 꿰뚫어 단면 조감하는 <성공시대>는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1988)와 더불어 한국영화의 뉴웨이브를 선도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성공시대>의 메시지가 지금에도 가치를 유지하는 건 돈을 절대권력으로 삼은 자본주의 소비사회가 신자유주의로 변태하여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발광하는 까닭입니다. 장선우 감독 본인 또한, 100억 원에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의 흥행 실패 이후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는 연출 활동을 접고 제주도에서 두문불출하는 중입니다. 

그런 배경일랑 상관없이 저 ‘허평론’은 지금 이 지면에서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를 주제로 한 글을 써 원고료를 벌며 “모든 것은 팔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다”는 김판촉 씨의 철학을 맞춤한 자본주의적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일회성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사용 가치가 그리 오래 남지 않은 또 한 명의 김판촉 씨일 터. 오랜만에 <성공시대>를 보며 제 처지를 뒤 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반성, 돈에만 함몰하여 영혼을 팔아서 어찌할 거냐는 자각.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 <성공시대>는 2018년인 지금에도 전달하는 메시지가 뚜렷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성공시대>는 장선우 감독의 또 하나의 문제작이자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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