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나님: 9월의 영화 Ⅱ 배창호, 1987

by.조재휘(영화평론가) 2018-09-17
안녕하세요 하나님 스틸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가는 순례의 여정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에서 영민은 짝사랑하던 혜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인내하며 기다림을 견뎌내야 했다. 그리고 같은 해 연말,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한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에서 (마찬가지로 배우 안성기가 연기한) 청년 병태는 경주의 첨성대를 보기 위한 여행길에 나선다. 전자가 오랜 시간의 흐름을 경유한다면, 후자의 서사는 장소와 공간의 이동을 통해 전개된다. 얼핏 보면 상반된 면을 보이는 이 두 영화는 사실 배창호(裵昶浩: 1953~)라는 감독의 세계관 안에 하나로 수렴되는 동전의 양면들이다. 사뭇 달라 보이긴 하지만 이 두 영화는 시간을 통해서든, 아니면 공간을 통해서든 일종의 긴 탐색의 여정을 다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물들은 ‘사랑’이라는 가치에 눈뜨게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소풍 하루 전날 뇌성마비에 걸려 몸져누운 병태는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 몰래 집을 나선다. 그에게 있어 경주행은 유년기에 멈춰버린 인생의 시간을 되찾기 위한 꿈의 여정이다. 그러나 장애의 몸에 홀로 여행을 떠나는 건 쉽지 않다. 단순히 서울역을 찾는데도 버스를 잘못 타고 길을 헤매는 그에게 조력자 역할로 시인 한민우, 무임승차한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춘자가 동행으로 붙는다. 인물의 설정은 다르지만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감독의 성공작 <고래사냥>(1984)의 또 다른 변주에 가깝다. 실연의 고통을 달래고자 무작정 길을 나서 방랑하던 병태는 구체적인 목적지를 얻으며, 거지 왕초 민우는 시인으로 바뀌었지만 병태를 돕는다는 점에서는 같으며, 사창굴에 빠져들어 삶의 험난함을 겪었던 춘자는 홀로 만삭의 몸을 끌고 다니는 미혼모로 바뀌어 있다.

안녕하세요 하나님 스틸

여행은 배창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라이트모티프(Leitmotiv)이다. 배창호 영화에서의 인물들은 여행(또는 방랑)을 나서서 고난과 역경을 거친 뒤 성장 내지 각성을 얻고 돌아오는 신화-동화의 서사적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 여행은 <고래사냥>처럼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거나, <황진이>(1986), (일견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연상케 하는) <꿈>(1990)처럼 종교적 깨달음의 추구이기도 하며, 때로는 <적도의 꽃>(1983)의 미스터 M(한민우와 더불어 이명세의 <M>(2007)에서 재활용되는 이름)이 선영의 죽음을 겪고, 한국과 멕시코, 미국으로 계속 이동하는 <깊고 푸른 밤>(1984)에서 백호민이 끝내 자신이 추구하던 성공이 허망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바와 같이 냉혹한 현실 인식 내지 자기 성찰에 직면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종국에 맞는 상황이 다를 뿐이지, 배창호가 만든 일련의 영화들은 가치관에 대한 탐색의 과정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 <안녕하세요 하나님>은 배창호식 로드 무비 중 가장 낙관적이고 따스한 정감을 지닌 버전이며, 지금에 와서도 눈여겨볼 만 한 보편통시적인 지점을 관통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주인공들은 사회의 정상성 속에 편입되지 못한 채 주변부를 맴도는 방외인(房外人), 시대의 소수자(minor)들이다. 병태는 뇌성마비 장애를 앓고 있고, 춘자는 처음엔 시댁으로 간다고 했지만, 실은 남자에게 속아 이용당한 뒤 홀몸 아닌 몸으로 버려진 미혼모(그녀가 정표로 간직하던 보석은 전당포에서 보통의 유리 조각으로 판명된다.)였으며, 보헤미안 시인 민우는 원래는 교사 출신으로 합창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전복사고로 학생들의 죽음을 겪고는 자취를 감춘 불행한 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 상흔(傷痕)을 안고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연대. 영화는 이러한 인물들의 사연을 여정이 진행되는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서서히 드러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극의 흥미를 잃지 않게 하고, 각 인물의 자아 찾기, 인간성 회복과 깨달음의 여정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여행 중 일행으로서 가족적 연대의식을 형성한 병태 일행은 각자의 소중한 것을 조금씩 희생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자 한다. 춘자는 만삭의 몸임에도 자신이 굶는 대신 병태와 민우에게 자장면을 먹이고, 병태는 경주에 가서 그림을 그릴 물감을 전당포에 맡겨 일행을 위한 돈을 마련한다. 이러한 자기희생과 배려의 행위는 일행을 배불리 먹이고자 호텔 레스토랑에서 속임수를 쓰는 민우의 행동에서 정점으로 치닫는다. 무임승차로 역에 붙잡혔던 병태 일행이 서로를 부축하고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의 롱테이크, 시골 학교 교실에서 민우의 풍금 연주에 맞춰 정상적인 몸으로 춘자와 춤을 추는 걸 몽상하는 병태의 환상은 불완전한 소수자들이 서로를 돕고 보듬으며 난관을 헤쳐나가는 영화의 인간미 넘치는 감성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다.

안녕하세요하나님 스틸
민우의 풍금 연주에 맞춰 정상적인 몸으로 춤을 추는 병태와 춘자

이와 같은 인정(人情)의 베풂은 주인공 일행 사이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병태 일행이 여행 중에 만나고 스쳐 지나는 주변 인물들은 때때로 역무원처럼 박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버스를 잘못한 병태를 챙겨주는 우이동 버스 종점의 기사들과 샌드위치 노점 아저씨, 숙직 중 병태 일행을 맞아 잠자리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야식으로 감자를 대접해준 학교 선생님, 일행을 받아들이고 대접해준 환갑 잔칫집(<고래사냥>에처럼 스틸컷으로 전환되는 연출은 훗날 이명세의 <M> 에서도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병태의 물감을 받고서 선선히 돈을 내준 전당포 주인, 비 내리는 날의 이삿짐 트럭, 병태와 춘자를 돕고자 일어선 시외버스 안의 승객들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을 환대할 줄 알며, 그들의 여정을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선량함을 품고 등장한다. 소수자에 가해지는 정상적 사회 일반의 차별과 폭력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인 통속적 피해자 서사와는 사뭇 궤적을 달리하는, 당대의 관객에게 대안적 사회상을 영화적 유토피아로써 제시하고자 하는 배창호식 휴머니즘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여행 중 길과 사람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배창호식 로드무비의 휴머니즘은 경주를 지척에 두고 춘자가 출산하는 헛간 시퀀스에서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비약한다. 이 지점에서 경주로 향하던 병태 일행의 여행은 예수 탄생 직전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기독교 신화의 순례와 치환된다.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처럼 헛간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춘자의 주위에서 병태와 아이들은 (마치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1957) 엔딩에서 줄리에타 마시나를 둘러싼 광대들처럼) 노래하고 행진한다. 화사한 촛불 조명과 필터 처리로 연출된 병태의 환상과 더불어 이 장면은 유영길 촬영감독의 섬세한 조명 처리를 통해 낭만적이고 상징적인 순간으로 그려진다. 실내의 노란 빛은 차츰 문과 나무 벽 틈 사이를 관통해 안으로 비치는 신비로운 푸르스름한 빛으로 대체되며 일순간 신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이른다. 현실적인 상황으로는 차별받기 십상인 미혼모의 아기는 구세주의 탄생과 동일시되며 축복받는 것이다. 이 아기는 병태 일행과 그들을 도와준 사람들 모두의 인정이 한땀 한땀 모여 빚어낸 사회적 사랑의 결실이다. 아이가 구원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아이가 바로 구원의 산물이자 징표이며, 그것으로 세상은 이미 구원받은 것이다.

안녕하세요하나님 스틸(춘자 출산 장면)
신화적 분위기의 춘자의 출산 장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여행은 서울과 경주라는 출발점과 종착점을 갖는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여행은 실상 실패한 여행이다. 목적지를 향한 여행은 진행되면서 여행자의 신체와 의식, 삶을 변화시키며, 종국에는 목적지가 아닌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토록 선망하던 첨성대에 도착했음에도 (배창호 영화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벤치에 앉은 채) 침울해 보이는 병태의 표정은 이러한 여행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 정작 중요했던 건 첨성대가 아니라 그에 도달하기까지 겪었던 다양한 사건들, 다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춘자와 병태는 일행을 떠났던 민우와 다시금 경주에서 재회한다. 지저분한 머리와 수염을 깔끔히 정리하고 다시금 교사로서 풍금을 연주하는 민우의 모습은 “경주에는 왜? 거긴 폐허와 무덤뿐인데”하던 극 초반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며 그가 여행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본연의 자아와 인간미를 회복했음을 보여준다. 이때 유아기적 순수성을 은유하던 병태의 노란색 모자는 견학을 온 유치원생들 모자의 노란색과 포개지며 봄날의 개나리꽃과 같은 화사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안녕하세요하나님 스틸
춘자, 병태 그리고 유치원생들

동시대 한국영화계는 열린 영화’의 개념을 주창하며 <성공시대>(1988)로 풍자적 리얼리즘의 전위에 섰던 장선우, <칠수와 만수>(1988)로 사회적 리얼리즘을 제시한 박광수의 등장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배창호 감독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에 입각해 특유의 낭만주의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정립했다. 때론 이러한 감독의 성향은 진보적 평자들의 시선에서는 몽상적이며 현실의 정치적 문제를 다루지 않고 안전한 지점에 안착한다고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오늘날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정서는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어떤 점에서는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순수하며 인정이 넘친다. (또한 별개의 논의를 요구하는 바이지만, 여성 캐릭터를 남성에 의한 구원을 해야 하는 대상적 존재로서 그리는, 배창호 필모그래피 전반에 걸쳐 일관되는 감독의 여성관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다소 걸리는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는 돌이켜보면 영화를 바라보는 지금의 시대상이 각박해졌다는 방증인 동시에, 한국영화의 사회적 상상력이 더 이상 유토피아적 사회상, 공동체와의 유기체적 관계성을 그려낼 수 없을 만큼 빈곤해지고 황폐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배창호 영화의 낭만주의는 암울한 시대상을 포장하고 뒤덮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로부터 상처 입은 당대 사람들의 내면적 치유를 갈망하고, 더 나아가 인간적 삶이 가능한 대안의 사회, 대안적 공동체의 잠재적 형태를 제시하고자 했다고 보아야 감독의 본의에 더욱 근접한 해석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안녕하세요 하나님>은 장애인(병태), 피해자로 내몰린 여성(춘자),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은 지식인(민우)을 주인공으로 함과 아울러, 언제든지 소수자들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유쾌한 동료들, ‘도래할 민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30년 넘는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관객에게 다시 발견되고 재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세월호 사건의 증후를 겪는 한편, 페미니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봉인 당한 채 피해자 서사와 디스토피아에 주박된 오늘날의 한국영화계에 있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낭만주의, 유토피아적 비전은 차츰 잊혀가고 죽어가던 어떤 가능성을 일깨울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안녕하세요하나님 포스터

2018년 9~10월 VOD 기획전 <길 위에서 답을 찾다: 로드무비> 상영작 ->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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