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낮은 목소리 2 변영주, 1997

by.주성철(영화평론가) 2012-09-05조회 3,995
낮은 목소리 2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시리즈는 총 3편으로 완성됐다(1995년, 1997년, 1999년). 제주도의 기생관광 등 국제매춘에 관한 고찰을 담았던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1993)까지 포함한다면 광의의 4부작이라 부를만하다. 더구나 모든 작품들은 각각의 텍스트들이 색다른 접근 방법과 구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채롭다. 그렇게 모든 작품들이 하나같이 다 소중하지만 개인적으로 굳이 한 편을 고르라면 <낮은 목소리2>에 좀 더 마음이 움직인다. 흥행결과와 별개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 <낮은 목소리>의 최초 충격, ‘할머니가 할머니를 인터뷰한다’는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된 <낮은 목소리3: 숨결>에서의 접근방식 변화와 인상적인 마무리도 좋았지만, 나에게 <낮은 목소리2>는 시리즈 중에서 할머니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말하자면 <낮은 목소리2>는 그해 나에게 가장 ‘웃긴’ 영화였다. 웃음이야말로 그 어떤 구호보다 더 힘이 세다고나 할까. 

안타깝게도 지난 2006년 세상을 뜬 박두리 할머니는 그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와 장난기로, 그해 한국영화에 등장한 그 어떤 배우들보다 뛰어난 엔터테이너로 다가왔다. ‘내가 그때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고 공부를 더 했으면 국회의원이든 뭐든 대단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술기운에 노래를 부르며 한 많은 세월을 회고하던 그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고 박두리 할머니는 1924년 부산 출생으로 1940년 17세에 삼량진에서 연행, 대만에서 해방까지 ''''''''''''''''위안부''''''''''''''''로 생활하면서 구타 및 폭력 후유증으로 인한 척추 질환과 중이염 등을 앓아오며 다리가 골절되는 등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었으며 계속적인 투병생활을 하던 와중에도 “내일 데모 하재?”라며 끝까지 수요집회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낮은 목소리2>는 1995년 12월 자신이 폐암말기라는 사실을 알고 죽기 전에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변영주 감독에게 자신의 모습을 끝까지 영화로 담아주기를 원한 강덕경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결국 강덕경 할머니는 1997년 2월 세상을 떠나셨다). 그렇게 할머니들의 ‘의뢰’로 시작한 작품은 그들의 일상을 너무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그것은 감독의 연출과 카메라의 태도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할머니들 스스로 제작진과 친해지고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할머니들에게는 당시의 카메라가 지금의 SNS처럼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해방구가 됐다. 누구에게나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부자연스런 것이지만 나눔의 집 할머니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연기’가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자유’가 된 것이다. 내 얘기를 사람들이 모여서 관심 있게 듣고 얘기해주더라는 1편의 쾌감이 그들을 마치 수다스런 여고생처럼 만든 느낌이었다. 그래서 가끔씩 카메라를 흘깃거리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더없이 귀여워 보였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영화가 (관객으로서의) 사람을 바꾼 것이 아니라 (피사체로서의) 사람이 영화를 바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변영주 감독이 1편보다 ‘덜’ 연출했다거나 그저 할머니들에게 ‘맡겼다’는 얘기가 아니라, 시리즈를 이어가며 자신이 가졌던 다큐멘터리의 방법론에 대한 치밀한 고민들을 비껴가지 않고 정면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 2편이 있었기에 변영주 감독은 3편 <숨결>에 이르러 이용수 할머니를 인터뷰어로 내세우고 그 자신이 직접 공동촬영으로도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할머니들의 웃음 뒤에서 한층 더 냉정한 표정으로 피사체와 함께 하고 있는 감독의 모습이 깊이 감지된다. <낮은 목소리> 3부작이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1988)과 더불어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면, 소재의 무게와 더불어 바로 그런 끊임없는 접근방식의 모색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 <낮은 목소리2>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후일담으로서 현재적 희망과 현실에 대한 강렬한 귀속 욕구를 드러낸 사려 깊은 다큐 에세이다. <낮은 목소리2>만 생각하면 닭똥을 치우고 한가로이 밭을 매는 할머니들의 여유, 그리고 박두리 할머니의 익살스런 검둥개 노래가 자동적으로 떠올라 미소 짓게 된다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