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지붕밑: 6월의 영화 이형표, 1961

by.듀나 (영화칼럼니스트 / SF소설가) 2018-06-18
서울의 지붕밑

올해는 조흔파 탄생 백 주년이 되는 해이다. 20세기 후반 몇십 년 동안은 굉장히 인기 있는 이야기꾼이었고 소설과 방송 매체, 영화에 남긴 업적도 만만치 않지만, 지금은 거의 중장년층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작가이다. 방송 활동은 증발해버렸고 소설은 얼마 전 탄생 백 주년을 맞아 새 책들이 나오기 전에는 한동안 거의 절판된 상태였다. 새로 나온 책들을 통해 조흔파가 새 세대의 독자를 얻을 수 있을까? 장담은 못하겠다. 5, 60년대 한국은 백 년 전 미국이나 유럽보다 낯설고 생경한 곳이다. 과거 배경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만 그 시대를 상상하는 사람들은 당시 사람들의 언어와 사고방식이 지금과 얼마나 달랐는지 놓칠 때가 많다. 조흔파와 같이 현재성이 중요했던 대중작가의 작품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조흔파 작가
조흔파 작가
 
조흔파하면 다들 『얄개전』을 먼저 떠올리지만 『서울의 지붕밑』도 만만치 않은 히트 프랜차이즈였다. 단지 이 제목은 그가 지은 것이 아니다. 원래 제목은 『골목 안 사람들』. 이형표가 감독한 1961년 영화가 택한 <서울의 지붕밑>이라는 제목은 르네 클레르의 <파리의 지붕밑>(1930)에서 가져온 것 같다. 

그래도 각색물과 함께 원작이 꾸준히 읽혔던 『얄개전』과는 달리 『서울의 지붕밑』은 오로지 원작의 설정을 끊임없이 재해석한 각색물을 통해 명맥이 유지되었다. 우선 가장 유명한 이형표의 영화가 있었다. 다음 해에 최초의 시추에이션 드라마였다는 <서울의 지붕밑>이 나왔다. 1982년에 나온 텔레비전 드라마 <서울의 지붕밑>은 나도 본 기억이 있다. 검색하다가 <골목 안 사람들>이라는 아침 일일연속극이 2002년에 방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똥고집 한의사 가족이 중심이고 딸이 양의사와 연애를 한다니 이 역시 <서울의 지붕밑> 드라마가 맞았나보다. 아직 전쟁의 기억이 생생한 5, 60년대 서울 서민들의 삶을 그린다는 계획으로 시작된 설정이 전두환 시대를 거쳐 (주인공이 세상이 좋아져 통금이 해제되었다며 자정을 넘긴 골목을 돌아다닌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21세기 초까지 어떻게 살아남은 것이다. 비록 지금 아무도 원작을 읽지 않지만. <골목 안 사람들>의 작가는 원작을 읽었을까? 아니면 그냥 설정만 취했을까? 후자여도 이상하지는 않다. 『서울의 지붕밑』에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설정과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연속극에 최적화된 재료였다. 

골목안사람들 이미지
(출처: KBS 홈페이지)
 
이형표의 영화 역시 시트콤의 한 시즌을 재편집한 것처럼 보인다. 단지 흑백 와이드스크린으로 찍고 김승호, 황정순, 도금봉, 최은희, 김진규, 허장강과 같은 당대의 명배우들을 총동원한 시트콤이다. 큰 흐름의 이야기는 있다. 주인공 한의사 김학규의 딸인 미용실 주인 현옥은 아버지의 숙적 양의사 최두열과 사귀는 사이다. 한의사의 아들 현구 역시 아버지 맘에 안 차는 술집 주인의 딸 점례를 임신시켜 결혼하려 한다. 세상 돌아가는 게 꼴 보기 싫은 김학규는 지방선거에 시의원 후보로 나가지만 떨어진다. 하지만 <서울의 지붕밑>은 큰 흐름으로 이 이야기를 그리는 대신 다양한 골목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10여 분 정도의 짧은 소동극 에피소드들을 모자이크처럼 조립해나간다. 이야기의 호흡이 툭툭 끊기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1960년대 초 사회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서울의 지붕밑> 촬영현장
<서울의 지붕밑> 촬영현장
 
지금 와서 보았을 때 <서울의 지붕밑>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세대 갈등을 그리는 낙천적인 관점이다. <서울의 지붕밑>의 세계는 둘로 갈라진다.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지만 고집은 엄청난 구세대와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하고 보다 열려있는 신세대다. 영화는 다양한 소동을 거치며 저항하던 구세대가 고집을 간신히 접고 신세대의 젊은이들에게 항복하면서 끝난다. 

김학규는 조흔파와 같은 세대이니, 이는 열린 마음을 가진 구세대의 이야기꾼이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응원과 화해의 제스처라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영화가 그리는 60년대 신세대 젊은이들은 어떤 시대적 특징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영화 속 젊은이들이 막연히 구시대보다 똑똑하고 친절하고 많이 배웠고 그들보다 새로운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만 안다. 이는 세대 묘사가 아니다. 구세대의 희망이 2차원적으로 반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이 영화는 다음 세대가 구세대보다는 낫지만 그들의 가치관과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존재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의 지붕밑>의 설정은 그 안전한 기대 때문에 21세기 초까지 살아남았다. 세대는 계속 바뀌어갔지만 늙은이들은 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여전히 비슷하게 살아 버텼다. 2002년 <골목 안 사람들>에서 한의사 가장을 연기한 이정길은 1961년 신세대를 연기한 김진규의 조카뻘이다. 그동안 세상은 충분히 젊어졌는가? 영화 끝에 그렇게 희망에 차 있던 젊은이들은 그 뒤로 어떻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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