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영화: 서울의 지붕밑 이형표, 1961

by.김도훈(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2018-06-05
서울의 지붕밑

이 영화에는 세대를 넘어서는 ‘하도'가 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가족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젠 기타노 다케시의 명언을 그만 써먹을 때가 됐다고 말이다. “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을 때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다케시의 명언은, 옳다. 이제는 좀 지겨울 때도 됐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영화를 만들면서 이 놀랍도록 진부하게 재생산된 명언을 그냥 지나치는 건 힘든 일이다. <서울의 지붕밑>(1961) 역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둔 1961년 작 코미디 영화다. 아니,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좋겠다. 


한의사 김학규


김학규의 딸 미용사 현옥


산부인과 의사 최두열


김학규 아들 현구와 점례

내용은 간단하다. 한의사인 김학규(김승호)는 요즘 좀 화가 나 있다. 골목 건너편에 생긴 산부인과로 동네 손님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다. 게다가 산부인과 의사인 최두열(김진규)는 김학규의 딸이자 이혼하고 돌아와서 한의원 2층에서 미장원을 운영하는 현옥(최은희)과 호감을 느끼고 있다. 김학규는 그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들도 문제다. 취업 전선에서 번번이 좌절하는 아들 현구(신영균)은 말 많고 탈 많은 동네 주막 주인(황정순)의 딸(도금봉)과 몰래 연애를 하다가 임신을 시키고 말았다. 도대체 김학규는 이 많은 자식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는 매우 분명하다. 오프닝에서 나오는 내레이션은 이렇게 선언을 한다.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대"라고 말이다. 여기에는 구세대와 신세대가 있다. 김학규는 구세대의 어떤 모델이고, 최두열은 신세대의 상징이다. 전자는 한의, 후자는 양의라는 설정은 도식적으로 명확하거나 명확하게 도식적이다. 두 캐릭터 중 누가 고개를 숙이고 모든 갈등이 해결될 것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지금 와서 보자면 고리타분해 보이는 이 설정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지붕밑>은 60여 년 전 관객들이 극장을 떠나가게 웃었을 유머 감각을 그대로 이 시대에 옮기는 데 성공한다.

생각해보면 그건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한국 고전영화는 세대의 단절을 치열하게 겪었다. 60년대 대중영화의 감정이 2010년대의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일은 드물다. 지금의 미국 관객들은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1960)나 <뜨거운 것이 좋아>(1959) 같은 영화들을 보며 여전히 웃을 수 있다. 한국 관객들이 같은 시기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가 의도한 장면에서 웃으리라는 보장은 거의 없다. <서울의 지붕밑>은 지금의 관객이 보면서 1961년의 관객과 같은 마음으로 웃을 수 있는 드문 고전이다. 

영화는 몇 가지 스테이지를 늘어놓고 마치 TV 가족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세대의 전쟁이라는 큰 그림 위에 여러 캐릭터들이 펼치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계속해서 열었다 닫는다. 그리고 감독은 마치 작은 단편 꽁트처럼 각 에피소드에 일종의 펀치 라인들을 집어넣는다. 특히 한의사 김학규가 젊은 연인이 “당신에게 제 하트를 드리지 않았어요?”라고 밀담하는 것을 엿듣고는 딸에게 “하도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장면은 백미다. 딸이 “하트는 심장이에요"라고 답하자 그는 “심장이라니 염통 말이냐?”라고 되물은 뒤 “사랑이라는 뜻도 된다는 말"에 능글능글하게 웃는다. 이 장면은 시대가 지나도 늙지 않는 코미디인 동시에, 세대의 급격한 변화라는 영화의 주제와도 근사하게 맞물린다.
 

“당신에게 제 하트를 드리지 않았어요?”


"하도..?"

물론 <서울의 지붕밑>이 도무지 낡아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스타들의 존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서울의 지붕밑>은 조촐한 배경과는 달리 당대의 신필름과 지속적인 작업을 하던 최고 인기 배우들이 모조리 모여 있는 당대의 블록버스터다. <마부>로 당대 한국인의 배우가 된 김승호, 부인 역할의 한은진, 딸 역할의 최은희, 산부인과 의사역의 김진규는 물론, 김승호의 아들 역할은 신영균이 맡았다. 신영균과 결혼하는 점례 역할은 도금봉이고 그의 어머니는 황정순이 연기한다. 허장강김희갑, 구봉서의 기막힌 코미디 연기는 물론, 젊은 신성일의 깜짝 출연도 <서울의 지붕밑>을 배우의 영화로 만든다.

사실 이형표 감독을 잃어버린 거장이라고 말하는 건 좀 무리일 것이다. 그는 <말띠 여대생>, <아가씨 참으세요>나 <남자 가정부> 같은 코미디 장르의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었다. 홍콩 영화 <취권>의 성공에 힘입어 졸속으로 만든 <애권> 시리즈의 감독이기도 하다. 80년대 영화를 기억하는 관객에게는 82년작인 <관속의 드라큐라>가 먼저 떠오를게다. 그는 오랫동안 많은 대중 영화를 만들었지만 데뷔작인 <서울의 지붕밑>을 능가하는 영화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서울의 지붕밑>이 시대를 어느 정도 무사히 뛰어넘은 영화가 된 것은 신필름 출신으로 <동심초>와 한국 최초 컬러 시네마스코프 영화였던 <성춘향>의 촬영을 담당했던 이형표의 덕이기도 하다. 훌륭한 테크니션으로서의 이형표의 능숙한 설계는 영화 전체에 깃들어 있다. 특히 그는 서울 중심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큰 골목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한의원과 산부인과를 배치한다. 그 골목길은 세대의 단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네 사람들이 오가며 가십을 퍼뜨리고 몰래 연애를 하는 일종의 연극적 무대다. 이형표 감독은 로케이션 촬영과 세트 촬영을 적절하게 섞어서 각각의 무대를 감정적으로 잘 이어붙일 줄 안다. 특히 그의 테크니션적인 솜씨는 좁은 골목을 무대로 이후 등장할 모든 캐릭터들을 세련되게 소개하는 첫 장면에서 가장 멋지게 드러난다.
 

모든 한국 고전영화가 그렇듯이 <서울의 지붕밑>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예찬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서울의 옛 모습은 여전히 낯설다. 우리는 할리우드 고전영화에서 등장하는 맨하탄의 모습이나 오즈 야스지로 영화 속 동경의 모습에 묘한 향수를 느끼면서도 도무지 서울의 옛 모습에는 익숙하지가 않다. 그건 어쩌면 당대 한국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압도적으로 적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울의 지붕밑>은 (아마도 남산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서울의 전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 순간 ‘아!’하고 낮은 탄성을 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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