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현해탄은 알고 있다: 3월의 영화 김기영, 1961

by.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2018-03-06조회 8,026
현해탄은 알고있다

김기영 감독은 많은 작품에서 생명을 향한 의지를 이야기했다. 그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죽음을 극복하는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간단하게 말해 김기영의 인물들은 죽음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영화 안에서 주로 두 가지 형태로 드러나는 데, 첫 번째는 종족 보존, 또는 번식에 대한 집착이며 두 번째는 죽음마저 극복해버리는 초현실적인 상황의 등장이다.

전자는 김기영이 쥐를 이야기하는 영화들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김기영의 말에 따르면 쥐는 번식 욕구가 매우 강한 동물로서, 어떤 경이의 대상이다. 쥐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대표적 영화인 <하녀>(1960), <충녀>(1972) 등은 물론이며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에도 쥐의 생식 본능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는 <바보사냥>(1984)의 병아리 같은 경우도 동물만 바뀌었을 뿐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작품마다 구체적인 맥락은 조금씩 다르지만 김기영은 동물의 번식을 반복해서 그리며 죽음을 극복하려는 생명의 본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김기영이 연출한 섹스신이 에로틱하기보다는 노골적으로 그 행위 자체에 집중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렇게 상징을 통해 생명의 본능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론 부족했기 때문일까, 김기영은 아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인물들을 즐겨 그렸다. 그들은 말 그대로 죽음을 거부하고 삶의 영역에 남으려 한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의지”를 외치던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 무덤을 반으로 갈라버린 <양산도>(1972), 죽은 남자의 성기를 발기시킨 <이어도>(1977), 심지어 목이 잘린 채로 다시 살아나 버린 <반금련>(1981) 등, 김기영은 삶의 의지 앞에 ‘상식’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라는 것처럼 관객의 눈을 의심케 하는 상황을 연출하곤 했다.

그리고 <현해탄은 알고 있다> 역시 생에 대한 의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아로운은 조선인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간 젊은 청년이다. 그는 군대 문화의 부조리와 전쟁의 위험과 정면으로 맞서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살아남는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아로운은 상급자들의 폭력 때문에 죽을 뻔한 상황에 여러 번 처하며, 폭격 때문에 전사할 뻔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물들은 “우리 살고 봅시데이”, “사람은 사는 게 전부다!” 같은 대사를 다급하게 외치고, 전쟁은 “사망 계획”이라며 전쟁터에 나가길 거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김기영이 그리는 전쟁은 폭탄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지는 자연 재해 같은 것이라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토록 살기 위해 애쓰던 아로운 역시 폭탄에 맞아 전사자들과 함께 공터에 버려지고 불에 타버릴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아로운은 결국 다시 살아난다. 그는 새카맣게 타서 버려졌지만, 즉 죽었다고 봐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지만, 다시 살아나 삶으로 돌아온다. 이 장면은 전형적인 김기영 스타일의 사건인 동시에 개별적인 사건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데 더욱 특별한 건 이 상황을 보여주는 미장센이다.

김기영은 다시 살아난 아로운을 프레임의 중심에 놓지 않는다. 카메라는 아로운을 계속 보여주는 대신 여전히 죽은 채 누워 있는 수백 구의 시신에 더 집중한다. 아로운은 애인과 함께 프레임 왼쪽 구석으로 이동하고 마침내 사라지지만(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아로운을 찾기 힘들 정도다) 김기영은 아로운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시체 더미와 그 시체 위로 몰려든 유가족들을 롱숏으로 보여주며 영화를 끝낸다.

이 연출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 김기영은 생에 대한 의지를 이야기하면서 아로운을 극적으로 부활시키지만 정작 아로운이 살아난 후에는 이름 없이 죽어버린 피해자들에게 더 관심을 보인다. 즉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기적적인 사건보다 결국 살아나지 못한 다수의 죽은 자들에게 더 눈길을 주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김기영이 누구보다 뚜렷하고 큰 목소리로 인간의 생에 대한 본능을 말하는 감독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어떤 방법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거부할 수 없는 존재를 항상 의식하고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기영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픽션 속에서도 살릴 수 없는 저 죽은 자들의 존재 앞에 어떤 무력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그렇게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김기영의 삶에 대한 집요한 집착이 죽음에 대한 강박적인 의식과 나란히 놓여있음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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