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황후 테오도라(데오도라)

영화 해제

현재통용제명: 노예 황후 테오도라
수입개봉명: 데오도라
원제: Teodora, Imperatrice di Bisanzio
제작년도: 1954
제작사: 뤽스 필름(Lux Films) / 이탈리아, 프랑스 (합작)
감독: 리카르도 프레다(Riccardo Freda)
출연진: 쟌나 마리아 카날레(Gianna Maria Canale), 조르주 마레살(Georges Marechal), 앙리 귀졸 (Henri Guisol), 레나토 발디니(Renato Baldini)
수입사: 동화영화사
개봉극장: 수도극장
개봉일: 1955.08.11.


전단지 구성 및 특이사항 
장방형의 총 4면 구성으로 된 전단으로, 1면과 4면에는 컬러 인쇄로 영화의 주요 장면을 담은 스틸컷이 수록되어 있다. 1면 상단에는 “이태리 룩스필름 사 1955년도 최신 거대작품”이라는 소개문구와 함께, 타이틀 롤을 맡은 쟌나 마리아 카날레를 “이태리 최신 육체 여우(女優)”라고 소개한 것이 이채롭다. 1면의 왼편으로는 “호화! 현란! 요염!”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소개 문구가 붉은 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4면에는 이탈리아어로 된 영화 내용이 들어 있는데, 그 대체적인 내용은 1면의 한국어 내용과 대동소이하지만 한국어 소개문구에서는 타이틀 롤을 맡은 쟌나 마리아 카날레의 이름이 크게 소개된 것에 반해 이탈리아어 소개문은 당시 중견배우였던 조르주 마레샬의 이름이 더 크게 들어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편 이들 컬러 페이지의 하단부에는 이탈리 필름 (Italifilm Co. Ltd)의 표기가 들어간 로고와 “NCC”라는 글씨가 새겨진 로고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1949년 2월 도쿄 치요다 구에서 설립되어 1962년까지 일본에서 <자전거 도둑>과 <길> 등의 이탈리아 영화를 수입, 배급한 “이탈리 필름 유한회사”(イタリフィルム有限會社)와, 그 모회사로 1950년대 일본에서의 외화 배급을 주도했던 배급사인 일본 시네마 코퍼레이션(Nippon Cinema Corporation)의 로고이다. 이를 통해 당시 동화영화사가 수입, 배급한 이 영화의 판본이 일본을 거쳐 들어온 이탈리아어 판본이었으며, 이 전단 역시 일본에서 사용된 도안을 그대로 복사해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면과 3면에는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와 제작 해설에 대한 글과 함께, 역시 영화의 여러 장면을 담은 스틸 컷들이 수록되어 있다. 3면 상단부에는 “제왕의 위기? 대망에 불타는 요염 "데오도라"의 운명은 운명의 전차경주와 귀족과 민족의 대립을 상징하여 흥분과 열광의 거대편! 금년도 최대의 흥취편!" 이라는 문구가 있고, 2-3면 하단부 전체에 걸쳐서는 “전통의 역사에 빛나는 이태리 영화가 세계에 자랑하는 관능과 스펙타클 초노급편 (超弩級篇)!” 이라는 글이 들어있는데, 문장 구조의 어색함이나 한국어에서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이 사용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역시 일본에서 사용된 전단을 그대로 번역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줄거리 
6세기 비잔틴 제국. 새로 즉위한 비잔틴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조르주 마레샬)는 민심을 살피려 평민으로 변장하고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시장통으로 나가 순시를 하던 중, 시장통 한가운데에서 매우 관능적인 춤을 추는 아름다운 무희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 그 무희의 이름은 테오도라(쟌나 마리아 카날레). 노예로 태어나 간신히 자유민이 된 이후에도 저잣거리에서 춤을 추고 웃음을 팔며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처지였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테오도라에게 간절한 구애를 하고, 테오도라 역시 그의 구애를 받아들여 둘은 깊은 사랑에 빠지고, 급기야 황제는 테오도라와 정식으로 혼인을 하여 그녀를 황후로 삼기에 이른다.

테오도라는 황후가 되자 마자 평민과 천민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테오도라의 비천한 신분을 경멸했던 비잔틴의 귀족들과 부유한 상인들은 테오도라를 폐위시키기 위한 음모를 꾸미게 되고, 결국 유스티니아누스의 오른팔인 대신 카포도치아의 요한(앙리 귀솔)을 중심으로 하여 황제와 테오도라를 몰아내려는 음모가 펼쳐진다. 그러나 테오도라는 그 자신의 지략과 하층민들과의 인기를 업고 모반 음모를 저지시킬 뿐 아니라, 평민들의 삶에 관심이 없던 유스티니아누스의 마음까지도 설득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출처: IMDb)


NOTE 
이 영화는 1950년대를 풍미한 프랑스-이탈리아 합작의 로마 사극 장르 영화들 가운데 하나로, 당시의 합작영화 대부분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의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954년 7월에, 이탈리아에서는 두 달 뒤인 1954년 9월에 개봉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일본과 미국에서도 공개되었다. 상당한 제작비를 들인 연출 및 세트 디자인과, 인기 배우 조르주 마레샬과 쟌나 마리아 카날레를 기용해 제작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럽과 영미권의 평단에서는 영화의 완성도나 플롯 전개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어조가 이어졌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1955년 말까지 거의 1년 가까이 상영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으며, 한국에서도 1955년 8월 수도극장에서 처음 개봉된 이후 1956년 2월까지 7개월 동안 계속 호응을 끌며 성남극장, 동도극장, 계림극장, 광무극장으로 계속 재개봉을 거치며 꾸준히 상영되었다. 당시의 외화로는 이례적으로, <동아일보> 1955년 8월 11일자에는 영화의 자세한 내용과 제작 소개, 그리고 실제 역사상의 비잔틴 황후 테아도라에 대한 간단한 약전까지 담은 기사가 실려 있는데, 이 역시 당시 이 영화가 한국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석지훈(영화사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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