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시즘과 검열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정진우, 1981)와 <무릎과 무릎 사이>(이장호, 1984)의 검열 서류 해제

by.유승진(연세대학교) 2018-04-23
무릎과 무릎사이 스틸사진
1980년대 한국영화를 지배했던 코드는 에로티시즘이었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강박적인 풍속 통제 아래 억압되었던 문화적 표현 양식은 체제의 몰락과 함께 그 외연이 급속히 확장되었는데, 남녀 간의 성애(性愛)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극장용 성인영화의 등장은 변화된 시대적 조건을 반영하는 흐름이었다. 유신체제의 종말에도 불구하고 신군부의 등장으로 급속히 위축된 정치적 자유는 문화정치적 맥락에서 다양한 벡터로 표출되었는데, 새로운 독재 권력에 저항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등장한 대항적 영화문화가 하나의 경향이라면, ‘권력이 허용한 금기’를 위반하는 것으로 자유를 대리 충족했던 경향은 제도권 영화계의 지배적인 흐름으로 존재했었다. 물론, 1980년대의 한국영화가 다른 여타의 문제보다 에로티시즘에 천착하게 된 것은 시장에서 활로를 찾지 못했던 당시의 영화산업계의 요구가 정책적으로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한국영화의 질적 저하와 함께 TV 보급률이 증가하면서 1970년대의 한국영화(방화)의 시장성은 크게 줄어들었고,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VCR이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대중화됨에 따라 관객들을 극장으로 유인할 상업 극영화만의 시장 전략이 간절하게 필요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적 조건 아래서 볼 때, 이후 ‘에로영화’라는 장르적 범주로 묶이게 되는 일련의 영화들이 유신체제의 종말과 함께 등장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이행이었다. 특히,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영화의 주류적 흐름으로 자리잡은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는 에로티시즘을 전면화한 1980년대의 한국영화를 예비하는 징후이기도 했다. 미국식 소비문화를 매개로 확산된 섹스 담론과 도시적 감각으로 채색된 청년세대의 ‘성모랄’을 영상언어로 번역한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는 유신체제의 풍속 검열 아래서도 예술성을 표방하며 표현의 임계점을 확장해나가며 관객들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아래는 1974년 이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올랐던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를 정리한 것인데,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에로티시즘은 197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의 영화산업을 지탱해온 중요한 흥행 자산이었던 것이다.

1974년 : <별들의 고향>(이장호) (1위, 46만) 
1975년 : <영자의 전성시대>(김호선) (1위, 36만) 
1976년 : <여자들만 사는 거리>(김호선) (1위, 8만 7천) 
1977년 : <겨울여자>(김호선) (1위, 58만) 
1978년 : <내가 버린 여자>(정소영) (1위, 37만), <O양의 아파트>(변장호) (2위, 28만) 
1979년 : <속 별들의 고향>(하길종) (1위, 30만), <내가 버린 남자>(정소영) (2위, 24만), <꽃순이를 아시나요>(정인엽) (3위, 21만) 

1970년대 호스티스 멜로드라마가 성노동 시장으로 내몰린 동시대의 여성의 삶을 소재로 삼아 시대적 부조리와 성윤리를 이야기했다면, 1980년대의 성애영화는 소재와 시기의 제한을 넘어 높은 수위의 노출과 정사 장면을 통해 사랑과 성적 욕망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1981년에 개봉하여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정진우, 1981)는 사회적 규범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남녀 간의 사랑을 에로티시즘이라는 렌즈를 통해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대중에게 공개된 영화의 표현 수위 또한 이전 세대의 영화들과 달리 매우 높았는데, 당대의 검열 자료를 통해 볼 때 이는 제작주체와 민간위원회, 그리고 정책 당국의 조율 과정을 거친 결과로 보인다.

우선, 영화제작사는 영화법에 따라 영화 제작에 앞서 문화공보부(이하 문공부)에 제작 신고를 하게 된다. 이때 제작자측은 ‘작의’(작품의 의도)와 ‘줄거리’를 포함한 제작신고서를 시나리오 5부와 함께 문공부에 제출하여 시나리오 검열을 받는다. 검열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의 제작사인 우진필름(대표이사 정진우)은 1981년 7월 16일자로 제작신고를 하는데, 그에 앞서 영화자율정화위원회에서 해당 영화에 대한 사전 검토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영화자율정화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영화제작자협회(이하 제협)는 7월 15일자로 문공부 장관에게 해당 영화가 제작신청에 있어 문제의 소지가 없다는 뜻의 심의서를 제출한다. 이후 문공부에서는 시나리오 검열에 착수하게 되는데, 실질적인 검열이 어디에서 이루어졌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83년 이후의 검열 자료에서 영화진흥공사가 ‘영화 대본 검토 보고’를 문공부에 올렸고, 해당 서류의 형식 또한 동일한 것으로 보아 1981년에도 동일 기관에서 대본 검열을 진행한 듯하다.

이후, 7월 25일에는 시나리오에 대한 심의의견서가 문공부로 제출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8월 4일, 검열에 대한 기안지가 작성된다. 아래는 시나리오 검열 결과이다.

유의사항 : 다음과 같은 문제점 등에 유의하여 예술적으로 승화된 작품을 제작하시기 바랍니다.

  가. 과다노출, 정사 또는 강간 장면을 순화 또는 삭제할 것
      (예: 씬 15, 32, 38, 49, 65, 119, 135 등)

  나. 다음과 같은 대사를 순화 또는 삭제할 것. 
    씬 25: “고자”    
    씬 27, 29 : “사리마다”
    씬 56, 57, 108: “…고기 덩어리” (검열문서 #9)

 
극영화 제작신고에 대한 유의사항 통보
(그림1) 극영화 제작신고에 대한 유의사항 통보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시나리오 검열 단계에서는 풍속상 문제가 될 만한 장면에 대한 삭제 요구와 전반적인 제작 방향성에 대한 의견이 제시된다. 1980년 2월 시나리오 사전심의제가 폐지되고 점차 영화 제작의 자율성이 높아짐에 따라 시나리오 검열은 특정 장면에 규제와 금지보다는 사전 조율을 위한 단계로서의 성격이 강조되는 것으로 보인다. 제작허가가 떨어진 8월 8일로부터 2달가량이 지난 10월 5일, 제작사는 상영을 위한 실사 검열을 신청하는데, 실사 검열은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윤)가 주체가 되어 이루어졌다. 제작사인 우진필름은 10월 5일, 영화 필름 1부, 대본 5부와 함께 영화검열신청서를 문공부에 제출하는데, 필름의 경우 문공부에서 공윤으로 이송되어 9명의 검열관이 배석한 가운데 실사 검열을 받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공윤의 심의 의견이 어떻게 수렴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9명의 심사위원들이 모두 각자의 의견을 제시한 후, 이를 토대로 ‘검열 종합 의견서’를 작성하고 이를 문공부에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실사 검열 이후, 영화검열 종합의견서 1부와 검열담당관들의 심의의견서 9부, 그리고 영화검열대본 1부가 문공부로 올라간다. 그런데 심의의견서에 나타난 검열담당관들의 견해가 대부분 검열 종합의견서의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검열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구두로 교환한 뒤, 이를 사후적으로 각자의 심의의견서에 반영한 듯하다.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의 검열 종합의견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화면삭제)
 1) S#13의 정사 장면 중 유두 부분 삭제
 2) S#21 유두 부분 삭제
 3) S# 최영감 하제 나체부분 삭제
 4) S#124 정사 장면 중 나체 및 유두부분 삭제

(화면단축)
 1) S# 132 강간장면 단축 (검열문서, #19)

 
영화 검열 종합의견서
(그림 2) 영화검열 종합의견서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는 많은 노출 신에도 불구하고 화면삭제 4곳, 화면단축 1곳으로 비교적 무난하게 검열을 통과하게 된다. 이는 영화에서 상당히 공을 들인 영상미가 예술적 성취로 인정받아 심의과정에 반영된 듯하다. 검열을 신청한 영화는 모두 6벌(12권 분량)이었는데, 검열 합격증을 교부받고 1벌 당 11.95m(분) 가량의 분량이 삭제된다. 6벌의 필름에 대한 삭제 작업은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제작사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검열 작업의 일정에 따른 것이라 생각된다. 영화는 “빗발치는 개봉 독촉”1)에 10월 24일에 개봉하였는데, 공개를 앞두고 개봉예정 신문광고가 지속적으로 나간 것으로 보아 제작사측에서는 빠른 공개를 원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에 대한 검열 작업은 10월 8일에 1벌, 10월 17일에 3벌, 10월 19일에 1벌이 이루어졌고, 개봉 후인 10월 29일에 남은 1벌을 마쳐 필름 검열이 모두 끝이 났다. 특정 신체 부위의 노출과 정사 장면 문제를 둘러싼 검열의 과정은 정부의 일방적 규제와 금지보다는 정부와 민간 사이의 조율과 협상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 이전 시대와 매우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다.

특기할만한 점은 영화가 개봉되었던 10월 24일에 예고편 영화에 대한 검열신청이 이루어지는데, 1권 12벌에 해당하는 필름이 신청된다. 예고편의 경우는 우선 검열을 위한 대본이 제출되고 곧 이어 실사검열이 이루어진다. 예고편 검열은 10월 26일에 완료되어 연소자관람가능 등급으로 허가증이 교부된다. 예고편의 제한사항은 화면삭제 1개처인데, 삭제된 장면은 예고편의 첫 신(scene)에 해당하는 것으로 “남녀의 완전 나신에 가까운 장면”이다. 이는 예고편이 ‘연소자관람가’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서 본편 검열과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 것으로 해석된다.
 
필름통관 추천 요청-1
필름통관 추천 요청-2
필름통관 추천 요청-3
(그림3) 필름통관 추천 요청

검열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국가가 영화 필름이 유통되는 과정을 매우 엄격하게 통제·관리했다는 점이다. 1983년 3월 2일, 도호 영화사는 해당 영화에 대한 수입을 추진하기 위해 실사용 프린트를 우진필름에 요청하는데, 이를 위해 제작사는 해당 필름이 수출계약을 위한 실사용 프린트임을 서약한 다음 문공부에 필름통관 추천을 요청한다. 또한 상영허가 기간(최초 검열완료일로부터 1년 6개월)이 종료되는 1983년 4월 9일에는 해당 필름에 대한 상영기한 연장 신청이 이루어지는데, 당국에서는 필름이 화질과 녹음 상태가 불량하여 상영기간 연장을 거부한다. 결국 제작사는 1983년 10월 17일 복사본을 제작하기 위해 복사 허가신청서를 제출하고, 영화진흥공사는 해당 영화에 대한 서류를 검토한 후 이를 문화공보부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는다. 이후 복사판에 대한 검열이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은 실사 검열이라기보다 기존의 검열 기준을 적용하여 필름을 잘라내는 행정상의 과정으로 보인다. 복사편수는 총 4편이었는데, 필름 절삭 작업이 진행되는 시점은 1983년 10월 29일, 12월 10일, 1984년 1월 20일, 3월 4일로 시간적 편차를 두고 있다. 이는 행정상의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제작사가 4편의 복제판에 대한 검열을 미리 신청한 뒤 상영 시점을 고려하여 제작자측에서 작업을 요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에서 제기된 에로티시즘이 예술성과 결부되어 비교적 온건한 방식으로 검열의 과정을 거쳤다면, 1984년에 개봉한 <무릎과 무릎 사이>(이장호, 1984)는 성애에 대한 묘사 수위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을 일으킨 사례라 할 수 있다. 우선 영화는 1984년 5월 31일 문공부에 제작신청서를 제출하고, 당일로 영화진흥공사로부터 대본검열 합격 승인을 받는다. 작품내용에 대한 심의의견은 “1. 성묘사의 과실에도 불구하고 퇴폐적이거나 음란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는 평가와 “2. 다소 차원이 높은 섹스물이라 하더라도 공서양속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영화진흥공사는 6월 2일자로 문공부에 대본검열에 대한 심의서를 보내고, 6월 7일에는 제협 산하 영화자율정화위원회가 위법성 여부를 가늠하는 심의서를 제출한다. 심의서에는 “사회윤리를 저해하지 않도록하고 격조 높은 작품”을 제작하기를 주문하면서 “아버지의 가정부 강간과 가정부 애인의 여주인공 강간 등 인물설정”을 수정할 것을 권고한다. 감독은 대본 검열 심의의견을 충실히 따를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작성한다.

시나리오 심의 의견서
(그림 4) 시나리오 심의의견서

심의서
(그림 5) 심의서

극영화제작신고에 대한 유의사항 통보
(그림 6) 극영화 제작신고에 대한 유의사항 통보

감독서약서
(그림 7) 감독의 서약서
 
1984년 7월 24일에는 예고편 상영을 위한 검열을 신청하는데, 이는 실사 검열보다 대략 1달 보름가량 앞선 시점이었다. 즉, 작품이 완성되기 전에 예고편 검열을 신청한 셈인데,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의 경우 실사 검열이 종료된 후 이를 재편집하여 예고편을 제작했다면, <무릎과 무릎 사이>는 본편이 완성되기 전에 예고편을 미리 제작하여 검열을 신청한 경우였다. 제작사측은 1권 12벌의 분량의 예고편 검열을 위해 대본 1부를 제출하는데, 대본 검열 차원에서 수정할 것을 지시 받고 반려된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검열서류를 통해 검열이 이루어진 예고편 대본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 검열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연필로 표시가 되어 있다. 예를 들어, “S#1. 무릎 사이로 루즈를 바르는 자영” (장면 삭제), “S#4. 무릎과 무릎 사이, 여성의 두 번째 본능, 무릎에 놀라운 비밀” (대사 삭제), “S#5. 여인의 무릎은 관능의 샘”(자막 삭제)과 같이 장면, 대사, 자막 부분에서 각각 수정 권고 사항을 표시해둔 것이다. 이후, “청소년 덕성함양에 저촉되지 않도록 재편집하여 검열신청”하기를 요청받은 제작사는 8월 2일, 영화를 재편집하여 검열에 합격하게 된다.

<무릎과 무릎사이> 예고편 검열대본-1
<무릎과 무릎사이> 예고편 검열대본-2
<무릎과 무릎사이> 예고편 검열대본-3
<무릎과 무릎사이> 예고편 검열대본
(그림 8) <무릎과 무릎사이> 예고편 검열대본

그런데 8월 28일, 제작사측에서는 1권 3벌의 분량으로 새로운 버전의 예고편을 제작하게 되는데, 해당 버전 또한 장면 삭제 및 재편집을 요구하는 심의의견과 함께 반려된다. 9월 4일 재편집본으로 검열을 실시한 결과, 영화는 화면 2개처, 대사 2개처를 삭제하는 조건으로 합격 판정을 받게 된다. 이전 버전과 비교해보았을 때, 새로운 버전의 예고편은 여성의 가슴을 직접 노출하는 것과 같이 높은 수위의 장면과 대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영화 검열을 둘러싼 이슈 자체를 홍보 효과로 전유하려는 기획으로 보인다. 소위 ‘개봉관’ 극장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 버전의 예고편을 제작했다하더라도, ‘연소자관람가’ 판정을 위한 암묵적 기준이 있음에도 이를 노골적으로 위반한 것은 기획에 의한 것이라 생각된다.

영화의 선정성과 검열에 대한 논란은 본편 검열에서 반복된다. 9월 13일 제작사인 태흥영화사는 대본 검열 당시 지적받았던 수정 사항을 반영했음을 알리는 ‘수정대비표’와 함께 상영허가를 위한 실사 검열을 신청한다. 특기할만한 부분은 영화의 최초 분량이 140분이었다는 점이다. 이후에 검열을 마치고 실질적으로 상영 허가된 필름의 길이가 97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부분이 삭제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법이 개정되기 전이었던 만큼, 실사 검열의 과정은 1981년의 경우와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제협의 확인서와 함께 관련 서류가 문공부에 제출되고 필름 검열은 공연윤리위원회(공윤)에서 이루어졌다. 검열이 이루어진 시점은 9월 17일이었고, 제한 사항을 포함한 심의결과보고서가 공윤에서 문공부로 제출된 시점은 9월 19일이었다. 검열종합의견서에 기록된 제한사항은 모두 화면단축 3곳으로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S#48. 정사 장면 중 율동부분 화면 단축
2. S#75. 무릎 사이의 플롯 및 남자 둔부 화면단축
3. S#98. 어린이 얼굴 확대부분 화면 단축

<무릎과 무릎 사이> 영화 검열 종합의견서
(그림9) <무릎과 무릎 사이> 영화 검열 종합의견서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검열을 통과한 다음날인 9월 20일, 제작사는 상영허가(검열합격증)를 받았음에도, 이후 “자진 삭제”의 형식으로 공윤과 협의하여 많은 분량을 스스로(?) 삭제했다는 사실이다. 9월 18일에 이루어진 실사 검열 자료를 통해 보면, 이우용을 제외한 다른 검열관들은 모두 검열종합의견서에 적시된 부분만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우용은 적시된 부분과 함께 S#104의 장면에 대해서도 화면을 단축할 것을 요청한다. 기안지 작성자가 모두 이우용이라는 점에서 그는 공윤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문공부 관료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진삭제”라는 형식도 의문이 가지만 그 내용에 S#104의 화면단축도 포함되어 있어 심의의견이 문공부의 기준에 맞춰 사후적으로 재조정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21일 검열심의를 마쳤으면서도 또 다시 재검토를 받기도 했”2)다는ᅠ당대 신문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검열 과정에서 공윤의 의견과 정책 당국자의 의견이 상당히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무릎과 무릎 사이> 자진삭제 현황
(그림10) <무릎과 무릎 사이> 자진삭제 현황(공윤과 제작사 협의 결정)

영화는 결국 “씬 30. 좌석버스 안에서 승객남자가 여자의 음부 쪽으로 손을 집어넣는 장면, 씬 47. 대극장에서 남자관객이 여자의 음부쪽으로 손을 깊이 집어넣는 장면, 씬 48. 남자가 여자의 음부에 얼굴을 대는 장면, 씬 104. 봉고차 안에서 여자의 오르가즘에 도달시키기 위한 남자손의 율동장면”을 포함하여 총 22.30m(분)이 삭제되어 개봉하게 되었다. 검열 과정에서 정책당국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것은 사실이나, 그 과정이 정부의 일방적인 통제의 형식이 아니라 시장 주체들과의 조율과 협상의 과정이었다는 것은 박정희 시대의 검열과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1)  《동아일보》, 1981.10.21. 7면 광고.
2)  “영화 <무릎과 무릎 사이> 외설 시비”, 《경향신문》, 198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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