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남
Pak Soonam / 朴壽南 / 1935  ~ 
대표분야
감독
활동년대
1980, 1990, 20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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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경력

1935년 일본 미에현(三重県) 출생, 재일조선인 2세.
1963년 통칭 ‘고마쓰가와(小松川) 사건’의 범인 재일교포 2세 이진우(李鎮字, 당시 18세)와 주고받은 서간을 엮어 『죄와 죽음과 사랑과(罪と死と愛と)』 발간, 베스트셀러가 되어 작가 활동 시작.
1965년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의 코리안 원폭 피해자 실태 조사 착수.
1973년 코리안 원폭 피해자 증언집 『조선·히로시마·반일본인: 내 여행의 기록(朝鮮·ヒロシマ·半日本人: わたしの旅の記録)』 간행.
1982년 『또 하나의 히로시마: 조선인·한국인 피폭자들의 증언(もうひとつのヒロシマ: 朝鮮人韓国人被爆者の証言)』 간행.
1986년 다큐멘터리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 완성, 일본 내 자주상영 운동 개시.
1987년 원자수소폭탄금지세계대회에서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 상영, ‘일본 정부에 대한 코리안 원폭 피해자 보상 요구’가 대회 결의로 채택.
1989년 오키나와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실태 조사 착수.
1990년 ‘아리랑의 노래를 만드는 모임(アリランのうたを創る会)’ 발족.
처음으로 한국 방문, 오키나와 생환 강제징용 피해자 및 학도병, 원폭 피해자 등의 증언을 16mm로 촬영.
한국의 태평양전쟁 피해자 및 유족을 오키나와로 초빙하여 오키나와·한국합동위령제 개최하고 영화 제작 활동과 병행하여 오키나와전투와 관련된 강제징용 피해자 및 위안부 생존자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
1991년 다큐멘터리 <아리랑의 노래: 오키나와에서의 증언> 완성, 일본 내 자주상영으로 20만 명 동원.
1994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15명을 지원하는 ‘할머니들을 지지하는 모임(ハルモニたちを支える会)’ 발족.
1997년 오키나와전투의 코리언 희생자를 기리는 ‘아리랑위령비(アリラン慰霊のモニュメント)’ 건립, 합동위령제 개최.
2012년 다큐멘터리 <누치가후-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 연출.
2013년 일본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누치가후-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 초청 상영.
2014년 다큐멘터리 <누치가후-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 추가편으로 부산평화영화제 ‘꿈꾸는 평화상’ 수상.
2016년 다큐멘터리 <침묵>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청,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용감한 기러기상’ 수상.
제19회 KBS해외동포상 문화예술부문 수상.
2017년 다큐멘터리 <침묵> 일본 공개.

기타정보

저술내역
저서
1963년 『죄와 죽음과 사랑과(罪と死と愛と)』, 三一書房
1973년 『조선·히로시마·반일본인: 내 여행의 기록(朝鮮·ヒロシマ·半日本人: わたしの旅の記録)』, 三省堂
1979년 『이진우 전 서간집(李珍字全書簡集)』, 新人物往来社
1982년 『또 하나의 히로시마: 조선인·한국인 피폭자들의 증언(もうひとつのヒロシマ: 朝鮮人韓国人被爆者の証言)』, アリランのうた製作委員会
1991년 『아리랑의 노래: 오키나와로부터의 증언』, 青木書店

편저
1991년 『어느 한국인의 오키나와 생존기(或る韓国人の沖縄生存手記)』, 김원영 저, アリランのうた製作委員会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5년 일본 미에현(三重県)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요코하마에서 자라났다. 민족 차별에 반대하는 재일조선인 작가로서, 한일 위안부 생존자들을 취재하며 그들과 함께하는 활동가로서 애써왔다. 또한 강제징용 피해자, 원폭 피해자 등 한일 양국 역사의 틈새에서 망각되곤 했던 존재들을 오랜 기간 다큐멘터리로 기록해 왔다.
1958년 발생한 이른바 ‘고마쓰가와(小松川)사건’은 그녀의 인생에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범인으로 18세 소년 가네코 시즈오(金子鎮宇), 즉 재일조선인 2세 이진우가 특정되면서 일본 사회는 여러 층위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본 역사에서 부정되지만 그 틈새에 실존하는 재일조선인의 위치에 대해 질문하고, 그에 공감하는 사회운동 인사들이 구명운동에 나섰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박수남은 수감 중이던 이진우와 서신을 교환하며 그의 생각을 일본 사회에 알렸다. 사형이 집행된 1962년까지 오간 서신들은 『죄와 죽음과 사랑과』(1963), 『이진우 전 서간집』(1979) 등 책으로 묶여 나왔고, 오시마 나기사는 이를 바탕으로 영화 <교사형(絞死刑)>(1968)을 연출하기도 했다.
피해자 유족 및 일본의 지식인들과 구명운동을 벌이던 중, 박수남은 조총련으로부터 ‘살인마는 재외공화국 공민이 아니’라며 사건에 관여하지 말라는 통고를 받는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며 구명활동을 이어간 탓에 조총련으로부터 ‘반국가인물’이라 낙인찍히며 배척당한다. 1964년 남한 유학을 타진하지만 당시 군사주의 정권이 요구한 충성 맹세 역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박수남은, 일본과 북한과 남한 어디에서도 ‘장소’를 허락받지 못한 채 자신처럼 국가 경계와 역사의 틈새로 내몰리고 은폐된 존재들을 취재하여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박수남이 망각으로부터 불러일으킨 존재들이 원폭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생존자, 학도병, 오키나와전투 생존자 등이었다. 이들과 대화하고, 공부하고, 이들의 운동에 연대하며 기록한 작업들이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1986),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에서의 증언>(1991), <누치가후-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2012), <침묵>(2016) 등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다.
박수남의 기록을, 그리고 그의 인생을 채워나간 것은 식민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군사주의, 전쟁, 차별, 빈곤 등에 의해 여러 ‘장소’에서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험과 기억은 물론 존재마저 부정당하던 이들이다. 박수남은 민족, 젠더, 지역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영화와 더불어 이들과 함께 자리한다.


* 참고문헌
박수남 감독 홈페이지(https://nutigafu.wixsite.com/park-soonam/history)

[작성: 황미요조, 이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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