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화
Lee Wol-hwa / 李月華 / 1904  ~  1933
본명
이정숙 (Lee Jeong-suk)
대표분야
배우, 시나리오
활동년대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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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지나가의 비밀,일명 흑진주 (유장안, 1928)
뿔빠진 황소 (김태진, 1927)
해의 비곡 (왕필렬, 1924)
월하의 맹서 (윤백남, 1923)

주요경력

1922년 민중극단 가입, 윤백남에게 "월화"라는 예명 받음
1923년 토월회 주연배우로 발탁
1925년 오양가극단(五洋歌劇團) 단장
1929년 오양극단 창립 운영

기타정보

기타이름
홍소회
주요기타작품
<영겁(永劫)의 처> 독부 올가 역,민중극단(1922)
<부활>의 카추사 역, 토월회(1923)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이월화의 출생에 관련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지만, 본적이 충청남도 예산이라는 설명이 있다(동아일보c). 이월화는 부산의 어느 병원에 간호사로 일하다가, 부산의 여명극단에 가입한 것이 배우로서의 첫무대라고 한다(동아일보a).
여명극단이 흐지부지되자 서울에 올라와서 민중극단에 가입하였다. 그 동안 이정숙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이때부터 이월화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영겁의 처>에서 올가로 출연하게 되면서 명성을 쌓아 나갔다. 이즈음 윤백남에 의해서 영화 <월하의 맹서>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동아일보a; 조선일보a). 민중극단이 해산하자 토월회로 옮겨갔으며, <부활>의 카츄사, <알트 하이델베르히>의 케티, <사랑과 죽음>의 포리야, <카르멘>의 카르멘 등의 역할을 맡으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눈물의 여왕’이기도 했던 그녀는 독부역할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이월화는 여러 남자들과의 추문에 휩쓸리다가 돌연 상해로 떠나버렸다(조선일보a; 조선일보d; 동아일보a).
1년여가 지난 후에 상해에서 다시 돌아온 이월화는 부산 조선키네마에서 활동하며 <해의 비극>(1924)에 출연하였다(동아일보a). 조선키네마의 다음 작품인 <운영전>(1925)에 출연하기로 했지만 배역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사퇴하였다(동아일보b). 이후 <뿔 빠진 황소>(1927), <지나 가의 비밀>(1928)에 출연하였지만, 늙은 어머니와의 생활을 지탱하기 어렵게 되자, 조선권번에 기적을 올리고 기생이 되었다(조선일보a).
1928년에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오양극단(五洋劇團)의 단장이 되어 지방순행을 다녔지만, 흥행에는 실패하였다. 실망한 이월화는 다시 상해로 갔고, 거기서 댄서 생활을 하던 중에 이춘래(李春來)라는 중국인 부호의 아들과 사귀었고, 이후 일본의 모지(門司)시에서 살았다고 한다. 1933년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조선일보c; 동아일보c).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25년 8월 26일 5면.
동아일보b 1925년 11월 21일 5면.
동아일보c 1933년 7월 19일 2면.
조선일보a 1928년 1월 5일 석간 2면.
조선일보b 1930년 8월 20일 석간 2면.
조선일보c 1933년 7월 19일 석간 2면.
조선일보d 1939년 6월 1일 조간 4면.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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