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규
Yun Yong-gyu / 尹龍奎 / 1913  ~ 
대표분야
감독
활동년대
1940, 1950, 198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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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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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달매와 범다리 (윤용규, 1981)
춘향전(후편) (유원준,윤용규, 1980)
춘향전 (윤용규, 1959)
신혼부부 (윤용규, 1955)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 (윤용규, 1952)
마음의 고향 (윤용규, 1949)

주요경력

1946년 조선영화동맹 서울지부 집행위원
1952년 북한 국립영화촬영소 연출가
1955년 북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1961년 북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1964년 북한 조선영화인동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및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 국립영화촬영소 배우
북한 공훈예술가

기타정보

기타이름
윤룡규
수상내역(영화)
마음의 고향-서울시 문화상(1회) 영화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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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의 고향>(윤용규, 1949)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각색한 작품으로 <자유부인>의 한형모 감독이 촬영을 맡아 어린 중의 사모곡을 산사의 풍경 속에 아름답게 녹여냈다. 위 사진은 꿈에서 깬 소년이 새벽 공기를 뚫고 어머니를 찾아 절을 나서는 장면이다. 과연 소년은 꿈에도 그 ... by.박혜영(한국영상자료원 연구부) 2009-05-08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3년에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1939년 무렵 일본 도호(東寶)영화사 연출부에 입사하여 연출과 이론을 배웠다. 해방 후 1946년 조선영화동맹 서울지부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한국영화감독사전). 1949년 함세덕 원작의 『동승』을 영화화한 <마음의 고향>으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52년 북한의 국립영화촬영소에서 연출가로 일하기 시작했다(북한문화예술인명사전).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1953), <빨치산의 처녀>(1954), <신혼부부>(1955), <춘향전>(1980), <가야금에 깃든 사연>(1986) 등의 작품을 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친일인명사전, 북한문화예술인명사전). 1964년부터는 동 촬영소에서 배우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1955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발탁되었으며, 1964년에는 중앙위원이 되었다. 같은 해 조선영화인동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및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이 되었으며,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북한문화예술인명사전).

* 참고문헌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3』, 민족문제연구소, 2009.
북한문화예술인명사전 http://www.dbmedia.co.kr/

[작성: 김한상]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13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 6·25전쟁 직전 월북한 뒤로는 행방에 대해 알려진 바 없다. 1939년경 일본 동보영화사 연출부에 입사. 제 1조감독을 지내며 영화이론과 현장경험을 쌓았다. 이때의 제 2조감독이 뒷날 <여명(黎明)>(1948)을 연출한 안진상(安鎭相)이다. 그의 영화계 스승은 한국에서 군국주의 어용영화 <젊은 모습>(1943)을 만든 바 있는 도요타 시로(豊田四郞). 해방 후 조선영화 운동의 강력화와 대중화를 목표로 영화동맹 서울지부(지부장·이재명)가 1946년 12월 24일 결성되자 김소영, 최금동, 박누월 등과 함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고, 실제의 작품활동은 그보다 3년 가까이 늦은 1949년 <마음의 고향>으로 출발했다. 함세덕 원작 <동승>을 곽일병에 의해 각색되고 그가 종사했던 동보영화사 시절 촬영조수 한현모의 카메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불교를 모티브로 한 어린 중의 사모곡이라 할 수 있다. 어려서 절에 버려졌으나 주지 스님(변기종)의 보살핌으로 자라나 열 네 살이 된 도념(유민)은 불공 드리러 온 부자집 젊은 미망인(최은희)을 본 뒤부터 어릴 때 자기를 버린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미망인을 갈망한다. 도념은 뒷날을 기약했으나 찾아오지 않는 미망인의 절 밖 세상을 향해 절안의 계율을 버리고 산밑으로 내려간다.
모두 10개의 시퀀스로 짜여져 있는 <마음의 고향>은 경상북도 금천에 있는 충암사에서 절의 바깥장면을, 고려대 뒷쪽에 있는 개운사에선 내부장면을 각각 촬영했다. 카메라는 핸드 크랭크 시스템, 즉 손으로 돌리며 찍는 수동식 팔모를 사용했다. 당시 영화계 사정이 그러했듯이 필름 공급원이 일정치 않아 코닥, 후지, 아그파 등 쪼가리 네가 필름을 모아 사용하다보니 화질이 고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수도극장(현 스카라)에서 개봉돼 흥행에 크게 성공했을 뿐 아니라, 제 1회 서울시 문화상 영화부문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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