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행
Baek Unhaeng / 白雲行 / 1906  ~ 
본명
방한준 (Bang Hanjun)
대표분야
감독
활동년대
19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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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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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병정님 (방한준, 1944)
거경전 (방한준, 1944)
풍년가 (방한준, 1942)
수업료 (최인규,방한준, 1940)
승리의 뜰 (방한준, 1940)
성황당 (방한준, 1939)
한강 (방한준, 1938)
살수차(포도의 이단자) (방한준, 1935)

주요경력

1935년 조선중앙영화주식회사 창립작품 <살수차>의 각본과 감독을 맡아 데뷔
1938년 반도영화사 창립작품 <한강>의 각본과 감독을 맡음
1940년 전후 조선영화주식회사 연출과 소속으로 국책 영화 연출
광복 후 조선영화동맹 중앙상임위원 역임
영화감독구락부 가입
미군정기 공보부 영화과장으로 재직
한국전쟁 중 납북, 자강도 만포시의 포로수용소에서 병사했다는 증언이 있음

기타정보

기타이름
자운행(自雲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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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일명 백운행(白雲行). 1906년 3월 6일 서울 출생.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송죽키네마 포전(浦田) 촬영소에 입사. 5개년간 근무한 후 귀국하자 조선영화사의 <살수차>(1935)로 감독 데뷔. 매일 아침마다 살수차를 몰고 거리를 청소하는 모범 운전수(김성춘)가 부랑자에게 농락 당하는 단골 국수집 딸을 구출해 준 것을 계기로 사랑하게 된다는 통속극. 그 자신이 각본을 쓰고 손용진이 촬영한 것으로, 주연을 맡은 김성춘이 일본에서 조명 기술을 익히고 돌아와 80KW 조명기를 사용, 제작한 것이다. 김일해의 첫 출연작이기도 하다. 그는 잇따라 <한강>(1938) <성황당>(1939) <승리의 뜰>(1940) <풍년가>(1942) <거경전(巨鯨傳)>(1944) <병정님>(1944) 등 6편을 일제 말기까지 내놓는다.
<한강>이 나룻터의 뱃사공으로 살아나가는 사나이(윤봉춘)의 가업 잇기 희망이 아들에 의해 외면 당하는 세태의 변화를, <성황당>이 숯을 팔러 나간 사이 아내(현순영)를 욕보이려는 산림간수(전택이)를 죽이고 순사에게 끌려가는 남편(최운봉)의 비극을 그렸다면, <승리의 뜰> 이후의 작품들은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에 영합하는 내용을 담았다. 즉 일제 말기 지원병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 청년들을 강제로 끌어 내어 중국 침략에 동원(승리의 뜰)하거나, 물자 고갈의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고래잡이로 수산을 증산(거경전)시키고 전쟁터로 나가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국민된 영광을 느낀다(병정님)는 따위다. 이 가운데 김학성이 촬영한 <성황당>에 대해서는 호평과 비판이 엇갈리는 반응이 나왔다. 서광제는 “근년에 봉절된 영화 가운데서 여러가지 의미로 보아 제일 위에 오를 것”(조선영화계 총평/ 조광·1939. 12월호)이라고 거들었으나 김태진은 “<성황당>이 금년도 가작이라고 추양(推楊)받은 작품인데 나는 그렇게 볼 수 없었다. 아무 감동도 별다른 볼거리도 없었다. 사실주의에 극치(極致)한 동양화 한 폭을 보고난 듯이 남는 인상도 여운도 느낄 수 없는 순수 양식 지상 영화였다”(기묘년 조선영화총관/ 영화연극·1940. 제 2집)고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방한준 감독은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된 후 소식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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