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미
Hwang hye-mi / 黃蕙美 / 1936  ~ 
대표분야
시나리오, 감독, 제작/기획
활동년대
1960, 1970, 200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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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관계 (황혜미, 1972)
슬픈 꽃잎이 질 때 (황혜미, 1971)
첫경험 (황혜미,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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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소설 쓰는데 관심이 있었으나 후배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 소설가의 꿈은 접고, 그 소설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여성영화인 사전).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김수용 감독의 <안개>(1967)이고, 두 번째 작품은 김동인의 원작을 김승옥이 직접 각색하고 연출한 <감자>(1968)이다. 이후 제작사인 보한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직접 시나리오, 제작, 연출, 주제가 작사, 작곡까지 맡은(매일경제) 감독 데뷔작 <첫경험>(1970)을 제작하여, 박남옥, 홍은원, 최은희에 이어 한국영화사의 네 번째 여성 감독이 되었으며, 이 영화로 1971년 제7회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다. 이어 <슬픈 꽃잎이 질 때>(1971), <관계>(1972) 등의 영화를 연이어 연출하는데, 이 작품들 모두 연출에 있어 좋은 평가를 받지만, 흥행면에서는 성공적이지 못 했으며, 필름 또한 사라진 상태이다.

* 참고문헌
매일경제 1970년 10월 29일 6면
주진숙 외, 『여성영화인사전』, 도서출판 소도, 2001

[작성: 전민성]
출처 : 여성영화인사전
황혜미 黃蕙美

-감독, 1936년 10월 29일 만주 출생. 서울대 불문과 졸업.

50년대 박남옥, 60년대의 홍은원, 최은희에 이어 70년대에 여성감독의 명맥을 이었던 황혜미는 누구보다도 여성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이 강했고 데뷔 초부터 많은 주목을 끌었던 여성감독이었다.
그는 미국식 제도교육의 세례를 받고 성장했으며 청년기에 4.19를 체험했고 50, 60년대 서구 청년문화의 영향력 속에서 감수성을 키워 온 바로 그 세대에 속해 있었다. ‘영상시대’와 동시대인이었고 여성실험집단 카이두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지만 그들과 어떤 식으로든 교류를 했던 기억은 없다고 한다. 이는 매우 의외인데 왜냐하면 그보다 앞선 여성감독인 박남옥과 홍은원은 서로 매우 친하게 지냈었고 카이두 클럽과도 교류가 있었음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그의 영화계 입문이 여타 여성영화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반증일 터이다.
황혜미는 감독 이전에 기확자, 제작자였다. “너무 잘 써서” 소설을 써볼까 하던 자신의 생각을 접게 만든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화하는 것이 기획 및 제작자로서 그의 첫 프로젝트였다. 당시 메이저 영화사 중 하나였던 태창흥업의 명의를 빌리고 김수용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긴 이 작품이 바로 <안개>(67)인데 그는 이 작품을 할 때 “처음이라 재미있어서 일일이 쫓아다녔”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의 두 번째 기획, 제작 작품은 <감자>(68)이다. <안개>에서 각본을 썼던 김승옥이 이번에는 각본과 함께 감독도 맡았고 로카르노 영화제에까지 출품했다. 두 작품 모두 당시 유행했던 문예영화 계열에 속하지만 문학적 소양과 영화적 감수성이 충분한 제작자, 각본가, 감독이 만난 덕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두 작품의 대명제작 이후에 황혜미는 당시 남편이었던 김동수와 함께 직접 영화사(보한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그의 첫 감독작품 <첫경험>(70)을 만들었다. <안개>하면서 “일일이 쫓아다녔던” 경험이 “문외한으로 쑥 들어가서” 영화를 시작했던 그가 연출을 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 <첫경험>의 원제는 ‘일부일처제’였는데 “그거는 안먹힌다”고 주변에서 말려서 제목을 바꿨다. 실제로 이 영화는 “일부일처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원제가 영화를 더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할 것이다. “성모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것이 <첫경험>에 대한 당대의 일반적 평가였고 황혜미 자신도 섹슈얼리티가 이 영화의 주요한 주제라고 설명했다.
황혜미가 <첫경험>을 발표한 후에 평론가 변인식은 하길종, 조문진과 함께 그를 70년대를 이끌어갈 3인의 감독 중 하나로 꼽기도 했으며 이는 그가 ‘여성’ 감독이라는 희소성으로서가 아니라 영화적 능력으로 인정받은 여성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시 언론의 과대선전처럼 소르본느대 영화과 졸업, 조지타운대 졸업은 아니었지만(황혜미 감독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생으로 뽑혔지만 결혼 때문에 그때는 유학을 가지 않았고 나중에 파리에서 6개월간 언어연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카뮈와 사르트르, 헤르만 헤세에 심취하고 <무도회의 수첩>이나 <태양은 가득히> 같은 프랑스 영화를 좋아했으며 푸도프킨의 책으로 영화공부를 했던 당대의 엘리트였다. 황혜미의 그런 면모에다 여성이라는 사실까지 얹어서 미디어는 그의 데뷔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되 막상 황혜미 자신은 “그런게 싫어서” <첫경험> 개봉 무렵에 미국으로 도망가 있었을 만큼 미디어의 과장과 과대선전에 싫증을 내던 사람이었다.
섹슈얼리티, 섹스의 권태와 현대인의 불안 같은 주제는 <첫경험>에 이어 후속작인 <관계>(72)와 <슬픈 꽃잎이 질 때>(72)까지도 이어지는 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당시는 “섹스를 익스플로이트”하는 풍조가 점점 더 확산되던 70년대 초였고 뚜렷한 주제의식과 모던한 감각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았던 <첫경험>의 성공은 후속작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사회 전체가 포르노그래피화하던 70년대 한국에서 작품의 차별성으로 어필할 수 없었던 것은 ‘보기드문 학력과 지성의 소유자’ 였던 여성감독에게 있어서는 피할 수 없었던 일인지 모른다. 그의 작품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특히 아쉽게 여겨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이순진)

감독
-70 첫경험. -72 관계, 슬픈 꽃잎이 질 때.
기획
-67 안개. -68 감자. -70 첫경험.
각본
-70 첫경험. -71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72 관계, 슬픈 꽃잎이 질 때.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소르본느 대학에서 수학했다. 귀국 후 황혜미 감독은 남편 김동수와 함께 보한산업이라는 영화제작사를 설립해서 몇 편의 영화를 기획했다. <안개>(김수용, 1967), <감자>(김승옥, 1968) 등의 영화는 황혜미 감독이 기획하여 태창흥업에서 대명(代名)으로 제작되었고, <나를 더이상 괴롭히지 마라>(임권택, 1971)는 황혜미 감독의 각본이었다.
황 감독의 데뷔작은 멜로드라마 <첫 경험>(1970)이었다. 우연히 비행기에서 동승하게 된 중년 신사와 여대생이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중년 신사의 부인은 굴욕감에 젖어 자신도 탈선하게 된다. 결국 여대생이 중년 신사를 떠남으로써 그의 가정은 구출된다. 황혜미 감독이 각본, 감독, 기획의 1인 3역을 한 이 영화는 그해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황 감독은 멜로드라마 <슬픈 꽃잎이 질 때>(1971), <관계> (1972) 등을 연출했다.
기획,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연출을 시작한 황혜미 그녀는 개성 있는 자의식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한국영화의 전반적인 경향과 통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던 1970년대에 활동했기 때문에 이후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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