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용
Lee Doo-yong / 李斗鏞 / 1942  ~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시나리오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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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처용무 (이두용, 2011)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 (이장호,이두용,박철수,정지영, 2011)
아리랑 (이두용, 2002)
(이두용, 1999)
위대한 헌터 GJ (이두용, 1994)
연애는 프로, 결혼은 아마츄어 (김도경,이두용, 1993) 총감독
뽕 3 (이두용, 1992)
청송으로 가는 길 (이두용, 1990)
흑설 (이두용, 1990)
(이두용, 1988)

주요경력

1969년 극영화 <잃어버린 면사포>로 영화감독 데뷔
1973년 제12회 대종상 최우수작품상(대통령상)수상작 <홍의장군> 연출
1978년 제17회 대종상 최우수작품상(대통령상)수상작 <경찰관> 연출
1981년 제17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 <피막>으로 감독상 수상
1981년 제43회 베니스영화제 <피막>으로 ISDAP Prize(특별감독상)수상
1982년 제26회 런던영화제에서 <피막> 초대 시사전
1983년 제22회 대종상 <물레야 물레야> 작품상, 감독상 및 6개 부분 수상
1984년 제37회 깐느영화제 "UN CERTAIN REGARD(주목할만한 시선)'에 <물레야 물레야> 입선
1984년 제20회 시카고국제영화제 <물레야 물레야> Best Cinematograph상 수상
1985년 해방 후 한국영화 40년사에 10대 감독으로 선정(한국일보 주관)
1986년 제6회 한국영화평론가상 <뽕> 작품상 및 남녀주연상 수상
1986년 두성영화주식회사 설립(창립작품 <내시> 제작, 감독)
1986년 제31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뽕> 여우주연상, 음악상 수상
1987년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부문 <내시> 출품 선정시사
1987년 제11회 인도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및 <장남> 초대 시사전
1988년 영화관 경영(롯데월드시네마,롯데예술극장,영풍시네마,애경시네마)
1990년 제10회 한국영화평론가상 <청송으로 가는 길> 작품상, 감독상 수상
1991년 제17회 모스크바영화제 <청송으로 가는 길>본선 선정
1993년 제21회 La Rochelle 영화제에서 (이두용 감독 회고전(hommage))
1995년 제19대 한국영화감독협회 회장
1998년 명지전문대학 초빙교수
1998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대리) 및 대종상영화제 집행위원장
1999년 한국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 및 영화심의 의장
1999년 극영화 <애> 연출
2003년 극영화 <아리랑> 연출(평양국제영화관에서 초대시사)
2005년 제11회 부쥴(Vesoul)영화제에서 "이두용 감독 회고전" 및 예술공로상 수상
2007년 제3회 시네마테크친구들 영화제에서 "이두용 감독 특별전"
2007년 제44회 대종상영화제 단편영화부분 설치 및 심사위원장
2008년 동아방송예술대학 석좌교수 및 DIMA Entertainment 고문
2008년 한국영상자료원 선정(한국대표영화인 35인중 1인으로 영화박물관에 기록보존)
2008년 제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
2008년 부산 아시아단편영화제 심사위원장
2008년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장
2009년 제11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심사위원장
2009년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심사위원장
2009년 제3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2009년 제8회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이두용상 제정
2009년 하와이국제영화제 NATPAC상 심사위원장
2009년 미국 채프먼 대학 주최 "Pusan West Film Festival"에서 "이두용 감독 회고전"
2010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이두용 감독 회고전"

기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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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학창시절 <원탁의 기사>(리차드 소프,1953), <쿼바디스>(머빈 르로이,1951), <십계>(시셀 B. 드밀,1956), <애수>(머빈 르로이,1940), <녹원의 천사>(클래런스 브라운,1944) 등 할리우드 영화에 빠져 지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조감독이었던 선배가 영화를 배우지 않겠냐는 제안에 영화판에 뛰어든다(씨네21). 그렇게 10년 약간 못 미치는 기간을 조감독으로 연출 수업을 쌓고서, 1970년 멜로드라마인 <잃어버린 면사포>로 감독 데뷔한다. 초기에는 데뷔작과 같은 멜로드라마를 몇 편 작업한 뒤,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해외에도 팔릴 수 있는 영화장르를 고민하다가, 액션 영화를 생각해내고 1974년 <용호대련>을 시작으로 일련의 태권도 영화들을 연출한다. 아직 스턴트 배우 기반이 취약하던 시절이라 전국의 태권도 유단자들을 불러모아 오디션을 거쳐 20~30명 정도의 인원을 뽑고, 그 가운데 주조연, 단역을 할 배우들을 골라내 영화에 출연시킨다(CBS라디오, 필름2.0). 그러한 액션 연기진에 미국에서 귀국한 찰리 셀(한용철)을 주역으로 삼아, 1974년 한해에만 <용호대련>, <죽엄의 다리>, <돌아온 외다리>, <분노의 왼발>, <속 돌아온 외다리>, <배신자> 등 6편의 태권도 영화를 만들어낸다. 당시 '으악새 영화'(조연 액션 배우들이 '으악'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지는 영화라며 당시의 액션 영화를 낮춰 부르는 말) 전문 감독이라는 시선이 부담이 되어 액션 영화를 접고서 <초분>(1977), <물도리동>(1979) 등의 토속적인 소재를 삼은 영화를 찍는다. 1978년에 촬영을 시작하여, 1년 동안을 촬영에 매달린 김성종 원작의 <최후의 증인>은 분단을 소재로 다룬 것 때문에 검열 당국과 마찰이 생겨, 3시간 가까운 편집본을 제작사에서 절반 정도를 자진 삭제하여 개봉하게 된다. 이후 검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소재를 찾아낸 것이 <피막>(1980),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3), <뽕>(1985), <업>(1988) 등 토속적 삶이나 동양적 생사관을 그려낸 사극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 <피막>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ISDAP상을 수상하고,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는 깐느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되기도 한다. 1990년대에는 <청송으로 가는 길>(1990), <흑설>(1990), <위대한 헌터 GJ>(1994), <애>(1999) 등을 연출하고, 2002년 나운규의 <아리랑>을 자신의 스타일로 리메이크한다.

* 참고문헌
‘나운규의 <아리랑> 리메이크한 이두용 감독’, 『씨네21』, 368호(2002년 9월 6일)
‘<뽕>의 감독 이두용을 만나다,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CBS 라디오 (2008년 1월 14일)
‘언제나 무시무시한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다-<최후의 증인> 이두용 감독 인터뷰’, 『필름2.0』 (2006년 1월 17일)

[작성: 전민성]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42년 12월 24일 서울 출생. 용산고, 동국대 졸업, 1960년대 이만희 감독을 비롯해 유명 감독들 밑에서 연출수업을 받았던 이두용은 1969년 문희, 신성일 주연의 멜로드라마 <잃어버린 면사포>로 감독 데뷔를 한다. 정숙은 나이트클럽의 댄서로 일하면서 생활비와 두 동생의 학비를 마련하고 있는데, 어느 날 대학 강사인 영식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의 차이로 괴로워한다. 결국 영식의 어머니에게 국민학교 교사로 신분을 속이고 결혼한 그녀는 사실이 밝혀지자 시어머니의 학대로 쫓겨나고 만다. 그러나 착한 정숙은 시어머니를 감동시키고 시집으로 돌아와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줄거리. 성공적인 데뷔작으로 고무된 이두용은 <미워도 다시 한번>의 정소영 감독에게 연출수업을 받았던 영향으로 데뷔 초기에는 <아낌없이 바치리>(1972) 등 멜로의 성격이 강했지만 곧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영화세계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장 곽재우의 무용담을 그린 시대극 <홍의 장군>(1973)은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곧 잇따라 <돌아온 외다리>(1974)라는 액션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한용철, 배수천 주연으로 일련의 권격 액션 시리즈인 <무장해제>, <용호대련>, <해결사>, <배신자> 등은 이두용의 액션영화 스타일에 대한 연구와 노력의 흔적이 영화 곳곳에 나타나는 영화들로 한국영화에서 권격 액션을 ‘주류’로 끌어올렸다. 이두용의 권격 액션물들은 1970년대 한국영화의 해외수출 가능성을 입증시키는 역할을 해내기도 했지만 당시 액션영화에 대한 평가는 폭력이 난무하는 저급한 영화쯤으로 치부되어 이두용에게는 상당한 갈등이었다고 한다.
1979년도 영화 <선배>는 현금수송차를 터는 범죄조직의 이야기로 추리물과 범죄물의 장르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며, <선배>로 보여줬던 추리 수사물의 가능성은 김성종의 추리소설을 영화화한 <최후의 증인>에서 꽃피운다. 2001년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던 <최후의 증인>은 개봉 당시 40분 분량이 삭제되면서 검열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02년 전주영화제에서 잘려나간 부분을 복원한 158분짜리 감독판이 상영되기도 했다.
그는 액션영화와 더불어 에로틱한 분위기의 시대극에서도 재능을 발휘해 <뽕>(1985), <피막>(1980), <물레야 물레야>(1983)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한국적인 정서와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추구한 이들 작품은 흥행에서도 성공적이었지만 해외영화제와 비평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80년대 한국영화의 침체기 속에서 이두용의 이와 같은 선전은 한국영화의 위상을 한껏 고무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나도향의 해학적인 향토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뽕>은 이미숙과 이대근의 농염한 성적 연기가 돋보였던 작품으로 일제치하의 용담골에 투전꾼을 남편으로 둔 안협이란 여인이 살고 있는데, 남편은 몇 달씩 집을 비우기 일쑤다. 안협은 그런 남편을 기다리며 동네 남자들에게 몸을 허락하고는 그 대가로 쌀이나 금품을 받아 생활한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동네 머슴인 삼돌에게만 몸을 허락하지 않자 삼돌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돌아온 남편에게 고자질한다. 그러나 남편은 오히려 삼돌을 두들겨 패고는 다시 집을 떠나고 안협은 다시 남편을 기다린다. 빠른 템포와 박진감 넘치는 전개, 아름다운 한국의 전통적 영상을 통해 한국 서민들의 세속적인 성을 해학적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흥행에도 큰 성공을 거둬 시리즈(이미숙, 강문영, 유연실)로 제작되는 인기를 누렸다.
<피막>은 과부인 며느리가 피막지기와 관계를 맺자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자결을 강요하고 피막지기는 살해하여 호리병에 그 혼을 가두어 버린다는 이야기로 성적 억압이 극심해 개인의 자유와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비인간적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피막>은 1981년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와 함께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됐는데, 그 중에서 <피막>이 경쟁부문에 진출해 이두용은 감독 특별상인 ISDAP상을 수상하면서 임권택 감독보다 한 발 먼저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감독으로 성장한 것이다.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은 1961년 신상옥 감독의 <춘향전> 이후 20년만의 쾌거였다.
외딴 섬을 배경으로 사악한 무당이 초분을 이용해 섬을 지배하려한다는 내용의 공포스럽고 기묘한 소재를 다룬 <초분>(1977)은 이전의 오락적 성향에서 탈피, 영화적 예술성을 강조한 이두용 감독의 또 다른 영화세계를 보여준다.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3)는 조선의 씨받이 제도에 대한 비판을 보여준 작품으로 역시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을 끌었는데,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었다.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담은 <장남>(1984)은 자본주의 산업사회화로 핵가족화와 노인의 소외문제를 전통가족제도의 붕괴를 통해 표현한 수작이다. 1985년 <돌아이> 시리즈는 당시 신세대 인기 가수였던 전영록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의 사나이로 출연하면서 88년 <돌아이 4편-둔버거> 4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끈 코믹한 액션물이 되었으며 이 영화로 이두용은 흥행감독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이두용은 그 중 1,2편의 감독을 맡았다)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이두용은 1989년에는 할리우드에서 B급 액션물인 <침묵의 암살자>란 '테스트 작품'을 연출하게 되는데, 아쉽게도 더이상 할리우드의 연출제의는 받지 못한다. 멜로로 데뷔해 액션물,향토 에로물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데뷔 이후 60여편의 영화를 쉬지 않고 만들어 온 그는 1990년 걸레스님 중광을 캐스팅하여 화제를 일으킨 한국판 레미제라블 <청송으로 가는 길>에서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낸 리얼리즘 영화에서 또다른 면모를 과시했다. 실제 교도소에서 죽어간 이형철 노인의 일생을 그린 실화. 이 영화는 조명의 콘트라스트로 감옥에서 인생을 보내는 이들의 모습을 디테일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백상예술대상'감독상과 영평상,작품상을 수상했으며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깐느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에 걸쳐 이두용이 이룬 일련의 영화적 성과는 1993년 프랑스 라로셀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어 '이두용 헌정 시사회'를 가졌고, 1994년에는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초청 '이두용 감독 작품전'을 갖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 그는 여성액션을 내세운 <흑설>, 로맨틱코미디<연애는 프로 결혼은 아마추어>(1994),시베리아 로케이션의 <위대한 헌터 G,J>,자식들로부터 외면당한 노부부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반추해낸 <애>(1999)등 다양한 장르영화를 내놓지만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한동안 현장을 떠나 영화사(두성영화사)와 극장(롯데월드 시네마2관,애경시네마4관,영풍시네마)운영에 전념하다가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은 전설적인 나운규의 동명영화를 리메이크한 <아리랑>(2003). 13억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진 <아리랑>은 지금까지 6편의 리메이크가 있었지만 그의 손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새로운 미학을 지닌 <아리랑>으로 거듭났다. 무성영화시절 극장에서 영화의 해설과 진행을 도왔던 변사를 등장시켜 구수하면서도 정겨운 향수를 살리고 출연진 모두 한국적인 외모의 신인을 과감히 기용했다. 예스러운 연기와,검은 학도복,흑백화면,1초당 18프레임으로 촬영한 투박한 질감 등 옛 무성영화 스타일을 그대로 복원하는 듯 하면서 오히려 현대 관객들에게 색다른 느낌을 주는 연출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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