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세
Lee Won-se / 李元世 / 1940  ~ 
대표분야
감독
활동년대
1960, 1970,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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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여왕벌 (이원세, 1985)
그 여름의 마지막 날 (이원세, 1984)
이방인 (이원세, 1984)
삼일낮 삼일밤 (이원세, 1983)
하와의 행방 (이원세, 1982)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이원세, 1982)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이원세, 1981)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 (이원세, 1981)
매일 죽는 남자 (이원세, 1980)
하늘이 부를 때까지 (이원세, 1980)

기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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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이원세는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김수용 감독의 조감독으로 10년간 일했다(영화백과).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입선작인 자신의 시나리오 <수전지대>(1968)가 김수용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면서 시나리오 집필능력을 인정받았다(경향신문a). 김수용 감독의 조감독으로 <안개>(1967), <산불>(1967) 등의 작품에 참여한 뒤 자작 시나리오 <잃어버린 계절>(1971)로 감독 데뷔하였고, 이 작품으로 “신선한 카메라 터치와 연출에서의 노력이 돋보인다”는 언론의 평을 받았다(경향신문a).
이원세는 실제 간첩사건을 영화화한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1973)을 연출하였는데, 이 영화로 각종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휩쓸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1974), <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1975) 등 ‘특별수사본부 시리즈’로 만들어졌다(한국영화감독사전).
1975년에는 김호선, 변인식, 이장호, 하길종, 홍파 등과 함께 젊은 영화인 모임인 ‘영상시대’를 만들어, 새로운 영화미학과 가치관을 모색하는 영상운동을 펼쳤다(동아일보a). 이원세는 평단의 주목을 받는 감독이었지만 흥행에는 신통치 못했다. 그러던 중 <엄마없는 하늘아래>(1977)와 <엄마없는 하늘아래(속)>(1977)가 연달아 흥행하면서 흥행감독의 반열에 오르는 듯 했다. 그러나 이후 연출한 영화들의 흥행부진과 국내영화산업의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는 영화 제작비 확보와 생계를 위해 양말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동아일보b).
이원세의 대표작은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이다. 산업화에 희생당하는 판자촌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조세희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회고발적 내용으로 인해 대종상 수상결정이 되었다가 수상발표 직전에 취소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재기를 노린 <여왕벌>(1985) 역시 반미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당시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일련의 고초를 겪은 그는 <여왕벌>을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한국영화감독사전).

* 참고문헌

영화백과 편집위원회, 『영화백과』, 정치평론사, 1975, 168쪽.
경향신문a 1968년 10월 12일자 5면.
경향신문b 1971년 8월 24일자 5면.
동아일보a 1975년 7월 22일자 5면.
동아일보b 1981년 2월 6일자 12면.

[작성: 김성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40년 11월 16일 평양 출생.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국학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이후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하다가 김수용감독에게 사사를 받고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이원세가 쓴 시나리오로는 <수전지대>(김수용,1968)가 있고, 조감독작으로는 김수용 감독이 가장 뛰어난 작품을 내놓던 1965년부터 1970년까지의 영화들, 가령 <안개>(1967),<산불>(1967)같은 작품들이 있다. 감독 데뷔작은 자작 시나리오 <잃어버린 계절>(1971)이었다. 신성일,문희가 주연한 이 영화는 여성의 성욕에 관한 영화이다. 결혼식을 올리고 목장으로 온 소라는 남편이 집을 비우게 되면서 치미는 성욕을 느끼게 된다. 마침 양봉을 하는 청년이 목장으로 오자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 사실을 안 시아버지가 소라를 청년에게 보내려 한다. 그러나 전부터 소라를 연모해오던 하인의 아들이 청년을 살해하면서, 결국 소라도 목장을 떠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성욕과 치정의 살인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다룬 이 영화는 그해 8월에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9만여 명을 모았다. 이후 그는 1985년 <여왕벌>을 끝으로 충무로를 떠날 때까지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영화를 연출했다. 1972년에는 <기로>,<나와 나>를 연출했는데 <나와 나>는 그에게 청룡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안겨주었다. 최무룡,하명중,우연정이 출연한 이 영화는 일본에 있는 외삼촌이 사준 승용차때문에 성공한 재일동포로 오해받게 된 청년이 계속 재일동포행색을 하면서 사기를 치다가 결국 그렇게 범죄자가 되어 죽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의 영화 가운데에는 시리즈물의 성격을 가진 영화들도 있다. <특별수사본두 배태옥 사건>(1973),<특별수사본두 김수임의 일생>(1974),<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1975)등의 일련의 특별수사본부 시리즈와, 이원세의 영화 가운데 가장 흥행한 영화인 <엄마없는 하늘아래>(1977),<엄마없는 하늘아래(속)>(1977),<엄마없는 하늘아래(병아리들의 잔칫날)>(1978)등의 시리즈이다. 전자의 시리즈는 반공의 성격을 띈 것이고, 후자의 시리지는 신파적 요소의 영화인데,특히 후자의 경우 엄마가 죽고 아버지마저 정신병으로 고통받는 상황에 빠진 어린이들의 환경은 엄청난 흥행흐로 이어져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는 대부분 에로틱한 성격의 멜로드라마를 연출했으며, 가끔 <전우가 남긴 한마디>(1979)같은 전쟁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원세의 대표작은 역시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을 들 수 있다. 너무도 유명한 조세희의 원작을 토대로 만든 이 영화는 배경을 염전으로 옮겼을 뿐 원작과 큰 변화는 없이 소시민들의 박해받는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가 난쟁이고, 집안 삶도 넉넉지 못해 고통받는 가족에게 철거가 닥치면서 아버지는 결국 자살하게 되고 막내딸이 몸을 팔아 입주권을 가져온다는 이야기인데, 이 영화는 부동산 투기로 엄청난 이득을 챙기던 박정희식 경제개발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짙은 사회성때문에 대종상 심사 두 시간전에 다른 작품으로 바뀌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여왕벌>(1985) 역시 반미적 내용을 담고있다는 이유로서 정보부의 탄압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집안의 일과 정부의 탄압때문에 이원세는 <여왕벌>을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이민가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다. <전우가 남긴 한마디>(1981)로 백상대상 감독을, <그 여름의 마지막 날>(1984)로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이원세 감독은 하길종,이장호 등과 함께 1970년대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영상시대'의 동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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