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월영
Seo Wol-yeong / 徐月影 / 1904  ~  1973
본명
서영관 (Seo Young-kwan)
대표분야
배우
활동년대
1920, 1930, 1940, 1950,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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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추정(秋情) (유열, 1968) 숙부
무숙자 (신상옥, 1968) 당노인
효자문 (문상훈, 1968) 노인
수라문의 혈투 (김시현, 1967) 나진사(향이 부)
(신상옥, 1967) 용선화상
잃어버린 사람들 (전조명, 1967) 최장의(오봉산 명의)
공주님의 짝사랑 (최은희, 1967) 장대감(숙경의 외조부)
다정불심 (신상옥, 1967) 이제현
서울머슴아 (고영남, 1966) 당징스님
송화강의 삼악당 (김묵, 1965) 윤진사

주요경력

1920년 극단 토월회를 통해 배우로 연극계 입문
조선배우학교 졸업 제1기생
동양극장 전속극단 청춘좌 소속으로 활동
1937년 청춘좌 탈퇴 이후 중앙무대 창설
1939년 극단 고협 활동
1939년 조선영화인협회 상무이사
1942년 조선영화주식회사
광복 후 극단 청탑 창설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조선배우학교 제1기생으로 토월회, 태양극장, 청춘좌의 회원이었다. 영화데뷔작은 1927년 토성회가 제작한 이규설 감독의 <불망곡>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주연 공철 역을 맡았고 각본까지 썼다(대중예술인 사전; 동아일보a). 같은 해 <금붕어>, <홍련비련>, <운명>에도 출연하였다. 1928년에는 <나의 친구여>, <지나가의 비밀>에 출연하였다(조선일보; 동아일보b). 이후 <아름다운 희생>, <밝아가는 인생>, <바다여 말하라>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며 호평을 받았다(대중예술인 사전). 이 영화들에서 그는 주로 품위 있는 용모와 중후한 연기로 신사 혹은 아버지역을 맡았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40년 5월에는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전속배우로 계약을 맺었다. 1942년 이후 <새출발>, <반도의 봄>, <흙에 산다>, <젊은 모습>, <조선해협> 등 일본 전시체제를 옹호하는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친인활동으로 지목받았다(친일인명사전). 전쟁이후 주로 영화계에서 활동하였으며, <단종애사>, <고향의 노래>, <열애>, <사도세자>, <대장화홍련전>, <춘희>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였다. 1973년 2월 26일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27년 1월 6일 7면.
동아일보b 1928년 5월 24일 3면.
조선일보 1928년 2월 22일 석간 3면.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소도, 200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

[작성: 김영진]
[감수: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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