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Kim Seong-min / 金聖珉 / 1915  ~  1969
본명
김만익 (Kim Man-ik)
대표분야
시나리오, 감독
활동년대
1940, 1950,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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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검은 장갑 (김성민, 1963)
격정가 (김성민, 1961)
지상에서 맺지못할 사랑 (김성민, 1960)
어디로 갈까 (김성민, 1958)
형제 (김성민, 1958)
처와 애인 (김성민, 1957)
인생역마차 (김성민, 1956)
막난이비사 (망나니비사) (김성민, 1955)
애원의 향토 (김성민, 1954)
북위 41도 (김성민, 1954)

주요경력

1936년 8월 일본 주간지『선데이 마이니치』가 주관한 1천만원 현상 대중문예소설에 <반도의 예술가들>로 당선
1937년 1월 『삼천리』에 소설 "봄소낙비" 발표
1940년 6월 장편소설 <녹기연맹> 발표
1941년 3~10월 『녹기』에 소설 "천상이야기" 연재
1941년 8월 장편소설 <혜련 이야기> 발표
1941년 12월 『녹기』에 수필 "거절" 발표
1942년 7월 『녹기』에 소설 "날새기 서사" 발표
1942년 11월 『녹기』에 평론 "제일의 적이라는 것" 발표
1969년 대만에서 사망

기타정보

저술내역
1940년 장편소설 『녹기연맹』

1941년 장편소설 『혜련이야기』
수상내역(기타)
1936년 일본 『선데이 마이니치』 대중문예소설 현상공모 당선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5년 5월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한 김성민은 영화계 입문에 앞서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36년 8월 일본 주간지 『선데이 마이니치』가 주관한 대중문예소설 현상공모에 「반도의 예술가들」로 당선하여 문단에 데뷔했으며, 『녹기연맹』(1940)과 『혜련이야기』(1941)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문단 데뷔작 「반도의 예술가들」은 1941년 이병일 감독의 <반도의 봄>으로 영화화되었다(친일인명사전). 해방 후 1948년 <사랑의 교실>로 감독 및 제작자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그는 1950년대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였고, <망나니비사>(1955), <인생역마차>(1956), <처와 애인>(1957) 등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한국영화감독사전).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1954), 이용민 감독의 <포화 속의 십자가>(1956) 등 다수의 반공적 색채의 영화에서 각본을 맡았다. <포화 속의 십자가>는 “전쟁영화라고 하여 지루하거나 건조한 장면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사람의 긴장케 하리만큼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경향신문). 식민지 시기부터 통속적인 이야기와 시국적 소재를 결합해온 그의 작품 스타일은 해방 이후 반공 영화들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969년 대만에서 사망했다(친일인명사전).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56년 5월 21일자 4면
김종원 외,『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편,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 423-424쪽.

[작성: 김한상]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15년 5월 15일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50년대의 대표적인 흥행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며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이다. 감독 데뷔작은 멜로드라마 <사랑의 교실>(1948)이었다. 그가 감독, 제작, 각본의 3역을 한 이 영화는 화가가 시골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우연히 한 어린이를 알게되고, 그 어린이의 어머니인 과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둘은 사랑방에 어린이들을 위한 '사랑의 교실'을 꾸며 그들이 착하게 자라도록 선도한다는 내용이다. 통속적인 소재에 계몽적인 성격을 가미한 이 영화에는 김웅,남해연,이향이 출연했다. 데뷔작의 영향때문인지 이후 영화들은 대개 멜로드라마였다. 그가 1950년대의 흥행 감독으로 자리잡은 것도 그가 연출한 일련의 멜로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이듬해 내놓은 <심판자>,<애원의 향도>(1954) 역시 멜로드라마였다. 특이한 것은 전쟁이 끝난 1954년에 내놓은 <북위 41도>는 전쟁 액션 영화라는 점이다. 북위 41도선에 위치한 원산만 앞바다 위도에 있는 해병대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대부분의 당시 영화가 그런 것처럼 납치된 북한 장교가 남한 대원들의 인간성에 감동되어 정보를 주고, 그 정보에 힘입어 북한국의 요새를 격파한다는, 반공적인 색채의 영화였다. 그가 흥행감독으로 자리를 굳힌 것은 1955년부터 1957년까지 매년 내놓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부터였다. <망나니비사>(1955),<인생역마차>(1956),<처와 애인>(1957),이 그 영화로서 세 편 모두 멜로드라마이다. <망나니비사>는 통속 사극으로서, 모함을 받고 도망친 진사의 딸이 망나니 집으로 와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관가에 잡히게 되고, 결국 망나니는 사랑하는 그녀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한 운명에 처한 것이다. 전택이, 노경희, 이민, 이경희, 복혜숙이 출연한 이 영화는 제1회 금룡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인생역마차>는 한 여자를 중심으로 암흑가의 보스와 신문기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대결을 다룬 영화로서, 주증녀,노경희,이향이 출연했다. 특히 이향은 신문기자와 두목으로 1인 2역을 했다. 당시 KBS 라디오 드라마였던 이 영화는 신문광고에 키스신을 클로즈업시켜 인기를 부채질했는데, 노경희가 완전히 이향의 입술을 포갠 키스신이 나와 이 영화를 보기위해 국도극장은 10일 이상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노경희의 남편 전택이가 자신의 양해 없이 키스신을 연기하게 했다는 이유로 김성민 감독을 혼내주겠다며 단골다방은 물론 집까지 찾아나섰다는 뒷말을 남겼다. <처와 애인>은 한국전쟁 때 헤어지게 된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하지만 결국 부인에게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이후 그는 마지막 작품이 된 반공영화 <검은 장갑>(1963)을 제외하고 네 편의 멜로드라마를 더 연출했다. <형제>(1958),<어디로 갈까>(1958),<지상에서 맺지 못할 사랑>(1960)등의 영화가 그렇다. 그가 연출한 12편의 영화 가운데 10편이 멜로드라마라는 점을 상기하면 멜로드라마에 대한 그의 애정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영화에서 특이한 것은 그는 실제 부부 스타를 영화에 많이 기용했다는 것이다. <망나니비사>에서는 전택이와 조경희를, <처와 애인>에서는 이택균과 강숙희를, <어디로 갈까>에서는 김석훈과 김의향을 기용했는데 이들은 모두 실제 부부였다. 연기 호흡을 맞추기도 편했고, 아무래도 언론의 조명도 받기 쉬운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감독으로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 못지 않게 많은 흥행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도 유명하다.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1954),<자유부인>(1956)을 비롯하여 <포화 속의 십자가>(이용민,1956),<장화홍련전>(정창화,1956),<구원의 정화>(이만흥,1956),<사랑과 죽음의 해협><노필,1962)등이 김성민의 대표적 시나리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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