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선
Lee Bong-seon / 李奉先 / 1916  ~ 
대표분야
미술, 제작/기획
활동년대
1940, 1950, 1960, 1970,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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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언니는 말괄량이 (한형모, 1961)
인생 갑을병 (박성복, 1961)

주요경력

1946년 조선산업미술가협회(朝鮮産業美術家協會) 회원
1956년 삼성영화사 미술부장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서울 용산 출신으로, 만주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와 백화점 미술부에서 이벤트 행사를 담당했다(한국영상자료원). 해방 직후에는 조선산업미술가협회(朝鮮産業美術家協會) 소속으로 작품 발표전에 참가하는 등 산업미술가로 활동을 이어나갔으며(경향신문a), 계몽문화협회(啓蒙文化協會)가 1947년에 제작한 두 편의 영화 <윤봉길 의사>와 <삼일혁명기>로 영화미술에도 뛰어들었다. 전쟁 당시에는 대구 키네마극장에서 미술부 담당으로 일하면서 국극과 악극의 무대미술을 맡았다고 한다. 서울로 복귀 후 소공동의 미도파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등의 인테리어 복구를 맡는 한편, 만주에서부터 친분을 쌓아온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1954)에서 미술을 담당했다(한국영상자료원). 삼성영화사에서 미술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만든 영화들로는 한형모의 <자유부인>(1956), <나 혼자만이>(1958), 권영순의 <오해마세요>(1957), 유현목의 <인생차압>, <그대와 영원히>(1958) 등이다(경향신문b). 1960년대 초에 그는 제작자로도 변신하는데, 2프로덕션이라는 회사의 대표로 있으면서 박성복의 <인생 갑을병>(1961), 한형모의 <언니는 말괄량이>(1961)를 제작, 기획한 것이다(김기제). 이후 1980년까지 260편이 넘는 작품에서 미술을 담당했다. 1963년 장일호 감독의 <석가모니>(1964) 제작 당시에는 “방화사상 최대의 오픈 세트” 설립을 주도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으며(경향신문c), 1965년 유현목의 <순교자>(1965) 촬영 때는 2천5백 평 대지 위에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평양 시가를 재현하기도 했다(동아일보). 1963년 제2회부터 제3회, 5회, 12회, 13회까지 다섯 번에 걸쳐 대종상영화제에서 미술상을 받는 등 비평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대종상영화제). 말년에는 미국으로 이주해 살았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46년 12월 15일자 4면
경향신문b 1958년 4월 13일자 3면
경향신문c 1963년 10월 26일자 5면
동아일보 1965년 5월 25일자 6면
김기제 편, 『한국연예대감』, 성영문화사, 1962, 231쪽, 237쪽.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를 말한다: 1950년대의 한국영화』, 이채, 2004, 99-111쪽.
대종상영화제 역대수상작 http://www.daejongsang.com/awarded/awarded.asp?sub_num=1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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