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천
Lee Kang-cheon / 李康天 / 1921  ~  1993
대표분야
감독, 편집
활동년대
1940,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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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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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발전하는 한국의 철도 (이강천, 1975)
대지에 땀을 심어서 (이강천, 1974)
타인이 된 당신 (이강천, 1971)
여름을 즐겁게 (이강천, 1968)
공산성의 혈투 (이강천, 1968)
어떤 눈망울 (이강천, 1968)
가정의 날 (이강천, 1968)
대좌의 아들 (이강천, 1968)
유성의 검 (이강천, 1968)
계룡산 (이강천, 1966)

주요경력

1971년 2월 10일 한국영화인협회 감독분위 위원장 취임
공연윤리위원회 영화심의위원

기타정보

수상내역(영화)
1955년 제1회 금룡영화상 작품상, 감독상 <피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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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1년 충청남도 서천에서 출생하여 동경 미술학교에서 유학했다. 졸업 후 미술계에서 종사하다가 이만흥의 <끊어진 항로>(1948)에서 미술을 담당한 것을 계기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한국영화감독사전). 그의 감독 데뷔작은 1954년 <아리랑>으로, 한국 최초로 한미합작으로 제작되었으며 양국의 배우들이 출연한 반공영화였다. 그가 연출자로서 두각을 드러낸 작품은 이듬해 제작한 <피아골>(1955)이었다. 전후 지리산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는 빨치산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이데올로기와 휴머니즘 사이에서 갈등하는 빨치산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당시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반공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1955년 제1회 금룡영화상 작품상 및 감독상을 수상한다. <피아골>과 이듬해 연출한 <백치 아다다>(1956)로 이강천은 인간 내면 의식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경향신문a). 이후 한국 최초의 시네마스코프영화 <생명>(1958)을 연출했으며, <두고 온 산하>(1962),<죽은 자와 산 자>(1966),<대좌의 아들>, <어떤 눈망울>(1968)과 같은 일련의 전쟁영화들을 잇따라 감독하였다. 1971년 <타인이 된 당신>이 마지막 연출작이다. 감독 은퇴 후에는 본연의 장기인 미술에 몰두하여 1981년에는 동양화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경향신문b). 한국영화인협회 감독분위 위원장, 공연윤리위원회 영화 심의위원 등을 맡은바 있으며, 1993년 9월 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동아일보).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56년 11월 26일자 4면
경향신문b 1981년 4월 15일자 12면
동아일보 1993년 9월 4일자 22면.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21년 12월 10일 충청남도 서천 출생. 동경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미술계에서 종사하다가 이만흥감독의 <끊어진 항로>(1948)의 미술을 담당한 것을 계기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그가 처음 <아리랑>(1954,허장강,김재선 주연)을 연출하게 된 것도 전주문화극장의 경영주인 친구 김영창의 제안으로 미술적인 감각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이 작품은 악덕 지주의 만행을 빌어 일제의 탄압을 상징하는 나운규의 <아리랑>과는 달리 무대를 공산치하로 설정하여 미군을 숨겨준 영진 일가의 고난을 그리고 있다. 뒷날 영화계의 보물로 한몫을 해난 허장강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는 <아리랑>의 흥행이 촉진시킨 <피아골>(1955, 김진규,노경희,이예춘,허장강 출연)에 이르러 피상적이고 관념적이기 쉬운 분단영화에 대한 설득력있는 사실성을 부여함으로써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 작품은 지리산의 협곡인 피아골에서 암약하는 빨치산을 중심으로 이데올로기와 휴머니즘의 갈등을 그린 것.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분단의 비극을 끌어낸 그의 대표작이다. 신인 김진규를 발굴해낸 것도 또 하나의 수확이다. 이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1955년 제 1회 금룡영화상 작품,감독,연기(노경희),녹음(이경순)등 주요부문을 수상함으로써 입증되었다. 이로써 1950년대를 정점으로 그의 전성시대가 펼쳐진다. 봉건적 인습을 배경으로 태어나면서 말을 못해 사회로부터 천시를 받아온 벙어리 처녀가 겪는 설움을 그린<백치 아다다>(1956, 나애심,한림 주연), 김만술 육군소령의 6.25 참전 실화물인 <격퇴>(1956,황남,최봉 주연), 그림의 모델이 되어준 창녀에 대한 화가의 연정과 그 구애가 부담스러워진 창녀의 물러남을 소재로 삼은 <아름다운 악녀>(1958,조항,최지희,허장강 공연)등이 선보인다. 여기서 최지희가 주연으로 발탁되어 데뷔했다. 잇따라 1.4후퇴때 남하하다가 헤어진 아내가 병석에 누운 애를 위해 여급생활을 하는 가운데 남편과 재회하게 되면서, 오해로 갈등을 빚는 <종말 없는 비극>(1958,박암,한미나 주연)등 여러 작품을 감독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시도한 <생명>(1958,최성진,문정숙 주연)을 비롯 <청춘화원>(1960,김진규,도금봉 주연),<사랑의 역사>(1960,최은희,김진규 주연),<두고온 산하>(1961,김진규, 모니카 유 주연),<미녀와 도적>(1965),<죽은자와 산자>(1968,남궁원,박노식 주연),<타인이 된 당신>(1971)등이 바로 그것. 이 가운데 <두고온 산하>,<죽은자와 산자>,<대좌의 아들>,<어떤 눈망울>은 그가 주력한 분단 전쟁영화로 게릴라,첩보,전투,전향 등 국군이나 민간인들의 반공 이념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17년 남짓 영화생활을 통해 멜로드라마 12편, 분단의 비극과 6.25전쟁을 소재로 한 반공영화 9편,시대극 7편 등 모두 28편을 감독하였다. 더불어 유능한 신인을 배출하는 탁월한 안목을 보여 주었다. 그동안 영화계로 진출시킨 정상급 배우만도 허장강(아리랑),김진규(피아골),최지희(아름다운 악녀),전영선(종말없는 비극,아역)등이 꼽힌다. 1971년 <타인이 된 당신>이후 사실상 연출 활동을 중단한 상태로 공연윤리위원회 영화 심의위원 등을 지내다가 1993년 9월 2일 일흔 세 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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