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
Lee Seong-gu / 李星究 / 1928  ~ 
본명
이범룡 (Lee Beom-ryong)
대표분야
감독
활동년대
1950, 196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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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만조 (이성구, )
(이성구, 1978)
무상 (이성구, 1978)
마지막 잎새 (이성구, 1977)
소라 (이성구, 1977)
벽속의 두사람 (이성구, 1977)
영노 (이성구, 1976)
마지막 밤의 탱고 (이성구, 1976)
빨간 구두 (이성구, 1975)
토요일밤에 (이성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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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8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이병일 감독의 친척으로 1947년 동아영화사에 입사하여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한국영화감독사전). 이즈음 동국대학교에 들어가 유현목 감독이 주축이 되어 만든 '영화예술연구회'에서 활동하며, 1949년에는 영화예술연구회에서 제작하고, 유현목이 감독한 45분 분량의 영화 <해풍>에 배우로도 참여한다(동국연극80년사). 영화예술연구회에서의 활동과 이병일 감독의 조감독 경험을 거쳐 1960년 <젊은 표정>으로 감독 데뷔한다. <젊은 표정>은 당시 뉴웨이브를 표방하며 재일교포 제작자 전홍식과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 감독 이강원 등과 함께 결성한 제작사 '신예 프로덕션'의 첫 번째 작품으로 1960년대 이어질 청춘영화의 효시격이 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흥행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지만, '국산영화계에 보기 드문 역작'(서울신문)이라는 평을 듣는다. 이어 연출한 <사랑이 문을 두드릴 때>(1961)로는 "간혹 지나치게 '카메라'만을 염두에 둔 의식적인 쇼트"(경향신문a)라는 평을 듣거나, <하늘과 땅 사이에>(1962)에서는 "묘사가 유려한 카메라 워크"(경향신문b)라는 평을 듣는 등 영화의 시각적, 형식적 측면을 중요시하는 연출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러한 스타일이 1960년대 중후반의 문예영화 붐과 조화를 이룬 <메밀꽃 필 무렵>(1967)을 지나, 그 이듬 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장군의 수염>(1968)에서는 "감독술과 조화된 색채의 영상미술, 그리고 촬영술이 이 영화만큼 고도로 앙상블을 이루어준 예는 그리 흔하지 않다"(경향신문c)라는 평가를 들으며 후일 한국영화사에 있어 유현목의 <오발탄>(1961)과 함께 대표적인 모더니즘 영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70년대에는 한국 최초의 70mm 영화인 <춘향전>(1971)을 연출하고, 포항제철 건설 당시의 역경과 그 극복 과정을 그린 <해벽>(1972), 남한 기독교 내에 침투한 간첩의 이야기인 <악마의 제자들>(1974)과 같은 국책, 프로파간다 영화들을 연출하는 한편, 여러 편의 멜로드라마를 만들어낸다. 1979년부터 할리우드와 합작하여 만든 <오 인천>의 한국 측 감독으로 테렌스 영 감독과 함께 공동연출을 시작하는데, 제작비 초과, 추가, 보충 촬영 등 여러 난관을 거치다가 1981년에는 테렌스 영 감독이 해고되며 남겨진 영화의 완성을 떠맡는다(경향신문d). 이즈음 한국에서 연출을 중지하고 브라질로 이민 갔으며, 2005년 별세한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61년 8월 12일 4면
경향신문b 1962년 5월 28일 4면
경향신문c 1968년 9월 14일 5면
경향신문d 1981년 2월 28일 12면
서울신문 1960년 2월 28일 석간 4면

김흥우, 동국연극 80년사 3
(http://www.donggukin.org/news/articleView.html?idxno=240696)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황미요조]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본명 이범룡. 1928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 1942년 함흥 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동국대학문과로 진학, 졸업했다. 이병일 감독의 사촌으로서 1947년 동아영화사에 입사하는 것으로 영화계에 첫 발을 디뎠다. 초보 시절 전쟁 기간을 감안한다면 칠팔 년의 조감독 생활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1960년 벽두를 장식한 <젊은 표정>(신성일,엄앵란,남영일 출연)으로 감독에 데뷔한다. 재일교포인 전홍식이 귀국하여 시나리오 작가 김지현과 이성구가 의기투합,한국의 누벨바그(새물결)운동을 표방하며 신예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영화로 당시 화제를 모았다. 같은 대학의 여학생을 사랑하는 두 학우가 여학생의 도움으로 병을 모아 파는 장사를 한다. 많은 돈을 벌었으나 한 브로커의 농간으로 하루 아침에 파산하게 되자 한 남학생은 울분을 억제치못해 죽고 남은 친구와 여학생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재기를 다짐한다. 이 작품은 <장군의 수염>(1968)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후 미국 이민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되는 1978년 <무상>까지 <사랑이 문을 두드릴때>(1962),<젊은 느티나무>(1968),<거북이>(1970),<춘향전>(1971.우리나라 최초로 70밀리 영화로 제작,문희,신성일 주연)등 총 49편의 영화를 연출. 그는 문화적 향기가 높은 원작을 취한 경우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현대사회에 공존하는 봉건적 계급의식을 부각한 황순원 원작 <일월>(1967)을 비롯,고유의 풍물을 배경으로 떠돌이 장꾼들의 애환을 담은 이효석 원작 <메밀꽃 필 무렵>(1968),서술구조보다 에피소드의 모자이크 사건을 풀어나간 이어령 원작 <장군의 수염>(1968),인간들의 이념갈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사랑의 운명에 순응해야 하는 정비석 원작의 <고원>,절망적 상황에 빠진 인간의 갈등과 구원을 희구하는 성직자의 의지를 그린<지하실의 7인>(1969)등 주로 196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깊은 인상을 심어준 역작이었다. 특히 <장군의 수염>(신성일,윤정희,김승호,김성옥 출연)은 이성구의 앞선 작품들과는 격을 달리해 한차원 높인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주인공인 사진기자 김철훈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두 형사가 추적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사는 김철훈의 주변 인물들을 어두었던 과거의 원인을 좌익인 형이 가정을 파괴한데서 찾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서술상의 생략 내지 불명확한 서술을 통하여 통속적인 영화적 전개와 괘를 달리하고 있다. 김종원(영화평론집 <영상시대의 우화.1985)에 의하면 "한 마디로 이 영화는 한국 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린 가작이다. 우리 영화의 고질이었던 스토리텔링에서 영화문법의 차원으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호감이 간다. 기하학적인 치밀한 구성과 영상의 구축,조형적인 세트,그리고 애니메이션의 활용 등 매커니즘의 조화로 <장군의 수염>을 탄생시키고 있다."로 평하였다. 그는 1978년 <길>을 마지막으로 이후 1980년대 초에 미국으로 이민,정착해서 살고 있다. 아내는 <조춘>(1959),<하녀>(1960)에 출연한 바 있는 이은심이다. 제 5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장군의 수염)과 제 6회 한국연극영화예쑬상(지하실의 7인) 작품상을 각각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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