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란
Yang Seong-ran / 梁聖蘭 / 1942  ~ 
본명
양소자 (Yang So-ja)
대표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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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년대
1950,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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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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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자유결혼 (이병일, 1958) 간호원
편집 :
석양에 떠나가다 (임원식, 1969)
풍랑객 (임원식, 1968)
학사며느리 (박종호, 1967)
서유기 (임원식,하몽화, 1966)
사랑아 기적을 다오 (박영환, 1966)
추풍령 (전범성, 1965)
외동딸 (노진섭, 1965)
살아야 한다(일명 배꼽 대감) (이강천, 1965)
연락선은 떠난다 (김진섭,김화랑, 1964)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김영희 기사님이 이모분으로 19살 무렵에 입문. 고등학교 재학시절 미국 공보부에 놀러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를 접함. 정릉촬영소 2층에 있는 편집실에서부터 편집일을 시작.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내 최초의 조선인 촬영기사로 활동했던 양세웅이 아버지이며, 이모는 여성 편집기사 김영희이다. 고등학교 시절 미국 공보부에 놀러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와 가까워졌고, 이모인 김영희 기사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영화 편집일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연산군(장한사모편)>(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쌀>(1963), <빨간 마후라>(1964), <서유기>(1966), <풍랑객>(1968) 등 1960년대 초반부터 후반의 작품들에서 편집기사로 활동하였으며, 조명감독 박창호와 결혼하며 은퇴한다(여성영화인사전).

* 참고문헌
주진식 외, 『여성영화인 사전』, 도서출판 소도 (2001)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황미요조]
출처 : 여성영화인사전
양성란

-1942년 서울 출생. 본명 양소자. 편집기사. 진해여고 졸업.

아버지 양세훈이 촬영기사였고 이모 김영희가 편집기사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인 가정 출신으로서, 고교 시절부터 <어느 여대생의 고백>(58, 신상옥)과 같은 작품에서 이모의 편집일을 돕곤 하였다. 고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편집기사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신필름 전속기사였던 이모 김영희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61, 신상옥), <빨간마후라>(64, 신상옥) 등 신필름이 정부지원을 받으면서 제작했던 작품들이 있으며, 68년 조명감독 박창호와 결혼할 때까지 약 7년간 활동하였다. 편집 부문에 있어서 여성의 활동은 영화제작의 다른 부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매우 활발했다고 할 수 있는데, 김영희, 이경자, 박곡지 등과 함께 양성란도 그러한 전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스크립터로 일한 적도 있었는데 신성일의 데뷔작인 <백사부인>(60, 신상옥)이 바로 그 작품이다.(이호걸)

편집
-60 백사부인. -61 상록수, 서울의 지붕밑, 성춘향. -62 가족회의, 검풍연풍. 대심청전, 마음대로 사랑하고,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사랑과 죽음의 해협, 아름다운 수의, 연산군, 열녀문, 와룡선생 상경기, 원한의 일월도, 이 세상 어딘가에, 폭군연산. -63 강화도령, 공범자, 나는 비밀이 있다, 로맨스 그레이, 며느리의 비밀, 무정, 보은의 구름다리, 쌀,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 연락선은 떠난다, 연애주식회사, 유쾌한 삼형제와 40인의 처녀, 재회, 중년부인, 철종과 복녀, 횃불. -64 검은 상처의 부르스, 빗나간 청춘, 빨간마후라, 치마바위, 황금벌판의 혈투. -65 세 번째 남편(살아야 한다), 추풍령. -66 사랑아 기적을 다오, 산유화, 외동딸, 하루살이 인생. -67 관광열차, 구인의 귀순병, 학사며느리. -68 영, 풍랑객.
스크립터
-60 백사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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