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래
Lee Bong-rae / 李奉來 / 1922  ~  1998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시나리오
활동년대
1950,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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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역전파출소 (이봉래, 1969)
잘못 보셨다구 (이봉래, 1969)
유정무정 (이봉래, 1969)
미녀온천 (이봉래, 1969)
장미의 성 (이봉래, 1968)
악마의 초대 (이봉래, 1968)
갈매기의 묘지 (이봉래, 1967)
돌지않는 풍차 (이봉래, 1966)
무정가 일번지 (이봉래, 1966)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이봉래, 1965)

주요경력

1967년 영화인협회 회장(1967~1971)
1967년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부회장
1969년 영화인협회 이사장
1973~81년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 (4회 연속 당선 후 사임)
1979년 한국펜클럽 부회장
1989~92년 현대시인협회회장

기타정보

저술내역
1982년 시선집 『역광의 신』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92년 4월 6일 함경북도 청진 생으로 일본 릿쿄 대학 문학부 시절 일본의 시 문학지 『시학』에 작품을 발표했으며(경향신문b), 귀국 후 박인환, 김규동, 조항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며 모더니즘 시 운동과 문학평론을 병행했다. 1950년대 영화평론가 협회의 회원으로서 신문 지면에 영화 평론을 쓰고, 협회가 주최하는 강좌에서 '한국영화는 반논리적인가'라는 강연을 하는 등의 평론가로서 활동을 하는데(경향신문a), 당시 평론에서 지속적으로 비판하는 바는 한국영화계가 너무 익숙한 설화나 역사적 소재에만 집착하거나, 새로운 유행만을 좇음으로써 새로운 시대와 그 도덕성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부족하다는 내용들이었다. 이렇게 평론 활동을 지속하다 1957년 장덕조의 소설 『다정도 병이련가』를 각색하며, 영화 제작 일선에 뛰어든다. 본인이 비판했던 당시 한국영화의 난점은 <삼등과장>(1961), <행주치마>(1964), <마포사는 황부자>(1965) 등 이른바 소시민 코미디 영화를 직접 감독하며 넘어서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후기작인 <장미의 성>(1969)에 이르러서는 동성애, 수간 등 파격적 소재를 통해 당시의 중산층 가정과 그 사회의 균열을 목도하기에 이른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57년 6월 1일 4면
경향신문b 1998년 6월 13일 9면

[작성: 황미요조]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22년 4월 16일 함경북도 청진 출생. 나남 중학교를 거쳐 부산수산전문학교 양식과 2년을 수료했다. 그후 일본 릿쿄대학 문학부를 중퇴하고, 도쿄 국제타임즈의 문화부장을 지내는 동안 유정과 함께 일본시 운동에 참가하여 일본시단의 유력지인 <시학>에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6.25 전쟁 후 귀국, 1951년 박인환,조향,김경린등과 후반기 동인으로 참여하였으며, 모더니즘 시운동을 전개하면서 평론활동도 활발히 벌였다. 1957년 <다정도 병이련가>,<오해마세요>의 각본으로 영화계에 입문. 1959년 <행복의 조건>(주연 이민자 윤일봉)으로 감독데뷔했다. 이 영화는 가짜 학생을 경제적으로 도와가며 사랑했으나 배반당하자 상처한 셋집 주인의 아들과 새출발하는 미망인의 이야기이다. 이후 후반기 프로덕션을 세워 제작 연출 및 시나리오까지 쓰는 활동을 한다. 이후 <백주의 암흑>,<견습부부>,<월급쟁이>(1962),<성난 코스모스>(1963),<육체의 문>,<주홍 스커트>,<마포 사는 황부자>,<하늘 보고 땅을 보고>,<삼등사장>(1965)등 그는 본격적인 교육영화는 아니더라도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끌어 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시골초등학교에 새로 부임해 온 여교사가 보수적인 학부모와 교감에 맞서 아이들과 인간적으로 교류하는 자유주의식 교육법을 실천하면서 겪게 되는 고난을 보여주는 <성난 코스모스>(1963),아내와 사별한 중학교 교장 가족의 문제가 갈등의 플롯을 형성하는 <행주치마>(1964),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교훈적으로 표현하기위해서 노랑이 황부자를 개과천선시키는 계기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는 <마포 사는 황부자>(1965)등과 대도시에서 월급쟁이 소시민으로 전락한 서민에 대한 애정을 <삼등과장>(1961)에서 잘 그려내고 있다. 영화의 내용은 회사의 승진에서부터 세무서 직원에 이르기까지 일상에 퍼진 뇌물주기이다. 그는 운수회사 송전무의 부탁으로 회사비용을 들여 댄스교습소를 운영한다. 어디까지나 상사와 여자와의 관계를 비밀로 하면서 사원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것으로 명분을 내세운다. 25년 만에 과장으로 승진하지만 현장을 급습한 부인의 오해를 받고 난처한 입장에 빠지는 아버지가 딸을 붙잡고 가족에게 비밀로 해달라는 궁색한 부탁을 통해서 인간적 고뇌를 풍자적으로 전달한다. 이후에도 <월급쟁이>(1962),<삼등사장>(1965)등에서 서민의 삶을 통해 혼란한 사회상을 풍자한다. 1970년 <유정무정>끝으로 31편의 작품을 남기고 현장을 떠난다. 그동안 영화인협회 회장(1967~1971)과 예총 부회장(1971),팬클럽한국본부 부회장을 거쳐 1973년 예총 회장을 역임했다. 건국 초기 농림부장관을 지낸 죽산 조봉암의 사위. 1998년 6월 76세의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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