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실
Gang Hyo-sil / 姜孝實 / 1932  ~  1996
대표분야
배우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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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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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결혼이야기 (김의석, 1992) 특별출연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임원식, 1977) 어머니
초분(草墳) (이두용, 1977) 검술(무당)
2박 3일 (이상언, 1974) 마여사(주섭의 처)
나를 깊이 묻어주오 (강찬우, 1964) 경옥
명동에 밤이 오면 (이형표, 1964) 소라
귀거래 (이용민, 1960) 덕례(종진의 처)
조춘 (유두연, 1959) 이혜심
오! 내고향 (김소동, 1959) 춘자
추억의 목걸이 (박상호, 1959) 현주(덕제의 장녀)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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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경력

1948년 평양국립극장에서 <맥베스>로 데뷔

기타정보

기타이름
전진희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2년 평양에서 배우 강홍식과 전옥의 딸로 태어났고, 평양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평양에서 연극인인 아버지 밑에서 국립극단 배우로 첫 경험을 쌓았고(경향신문a), 1950년 연극 <맥베스>로 배우로 데뷔하였다(경향신문b). 1955년 김기영 감독의 <죽엄의 상자>로 영화배우로 데뷔했으며, 이후 박상호 감독의 <추억의 목걸이>(1959), <오, 내 고향>(1959. 김소동), <명동에 밤이 오면>(이형표, 1964) 10편 정도의 작품에 출연했다. 강효실은 영화보다는 연극계나 방송계에 주로 몸담아왔다. 1973년 <키부츠의 처녀>에서 ‘마니아’ 역으로 동아연극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그녀는 당시 수상소감으로 “언제나 극이 무르익어갈 때면, 막이 내려버려 늘 아쉽게 끝난다”며 무대에 대한 강한 열정을 피력하기도 했다(동아일보). 연기인생 30주년을 기념으로 연극 <페드라>의 주역을 맡기도 했다(경향신문b). <죽엄의 상자>에서 만난 최무룡과 결혼했으나 이후 이혼했다. 최무룡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영화배우 최민수이다. 1996년 숙환으로 별세했다(한겨레).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80년 11월 29일 5면
경향신문b 1996년 11월 4일 23면
동아일보 1973년 3월 31일 7면
한겨레 1996년 11월 4일 25면

[작성: 김한상]
출처 : 여성영화인사전
강효실 姜孝實

-배우. 1932년 평양 출생. 평양제일고등학교졸업. 1996년 사망.

‘눈물의 여왕’ 전옥과 가수 강홍식의 딸로 태어나 신협 단원으로 연극을 시작하였고 <맥베드>(극예술연구회) 공연때 최무룡을 만나 결혼하였다. 둘다 55년 <주검의 상자>(김기영)로 영화계에 데뷔하였고 이때 강효실은 전진희라는 예명을 썼다. 어머니 전옥 밑에서 수많은 무대활동을 한 것이 연기훈련을 한 셈이 되었고 연극활동의 영향이 연기에도 강하게 남아 있어 ‘성격파’ 배우로 불렸다. 국제영화 60년 6월호에서는 강효실에 대해 “얼굴에서 보이는 인상이 번역극적일 정도로 강렬하며 양의 뾰족한 목소리와 함께 성격을 발산한다.…시각적인 톤을 죽이기 위해 동작이나 대사를 억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59년 <오! 내 고향>(김소동)의 출연 이후 영화보다는 연극과 TV에서 많이 활동하였고 국립극단과 드라마센터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일보 연극 여자연기상(<페드라>〔71〕), 동아연기상(<키부츠의 처녀>〔73〕)을 수상하였다. 64년 <명동에 밤이 오면>(이형표)에서는 억척스럽게 돈을 벌어 바를 냈지만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하고마는 마담으로 출연하여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나이가 들면서는 주로 이북사투리로 호령하는 엄한 시어머니같은 역학을 많이 맡았으며 그런 면에서 그는 석금성의 계보를 잇는, 선이 굵고 강한 이미지로 중요한 조역을 많이 했던 연기자이다. 92년 아들인 최민수가 주연을 한 <결혼이야기>로 모처럼 영화에 출연하였다.(김수미)

출연
-55 주검의 상자. -57 잃어버린 청춘. -59 오!내고향, 사랑 뒤에 오는 사랑, 조춘, 추억의 목걸이. -64 명동에 밤이 오면. -92 결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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