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식
Lim Won-sick / 林元植
출생·사망
1935 ~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시나리오
데뷔작품
청일 전쟁과 여걸민비 1962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2010

필모그래피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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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불행한 아이의 행복 (임원식, 1992)
엄마의 기도 나의 기도 (임원식, 1989)
소림사 물장수 (임원식, 1982)
통천노호 (임원식,고 보슈, 1980)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임원식, 1977)
내마음 나도 몰라 (임원식, 1976)
어머니 (임원식, 1976)
박수무당 (임원식, 1974)
아리랑 (임원식, 1974)
분노의 세얼굴 (임원식, 1972)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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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경력

1955년 9월 창조 실험극회 대표
1956년 4월 극단 신협 연출부
1957년 9월 주식회사 신필름 조감독
1962년 1월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로 감독 데뷔
1976년 8월 합동 영화 주식회사 전무 이사 겸 기획실장
1980년 4월 태창 영화 주식회사 사장
1981년 태창흥업 대표이사
1982년 태창흥업 부회장
1990년 8월 한국 기독교 영화제작소 대표이사
1994년 10월 기독교 TV방송 전무이사 겸 방송 본부장
1998년 3월 동화 초등학교 운영위원장 피선
1998년 8월 동화 새마을 문고회(청소년
여성 생활문화 교실)회장 피선
1999년 1월 사단법인 한국영화인 협회 한국영화 감독협회 회장 피선
1999년 7월 30일 사단법인 한국영화감독협회 초대 이사장 피선
2001년 10월 21일 문화관광부 보관훈장 서훈
2001년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 회장
2003년 사단법인 제주영상위원회 부위원장 겸 운영위원장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고등학교 때부터 문예보 활동했음, 대학에 들어와서도 실험극을 많이 하게 됨(원방각이라는 극단) 졸업후 극단 신협에 들어가 많은 공부를 하게 되고, 그리고 나서 극단 조직 하게 됨(기독교 방송) 유진식이라는 교포 영화 감독 밑에서 조감독 일함(불멸의 성좌: 한국 시네마 스코프 시초)또 김수영감독 밑에서 조감독하다, 신상옥 감독 신필름 밑에서 일하게 됐다.
애착작품 및 사유
청일 전쟁과 여걸 민비, 아리랑,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도시로 간처녀 등, 시대적 고발, 리얼리티, 휴머니즘이 많이 배어있다.
영화속 명소
청일 전쟁과 여걸 민비를 찍었던 안동의 '하회마을' 한국적 정서가 많이 배어있고 풍경또한 아름답다. 또한 아리랑 마지막 장면 찍던 배경이 된 고갯길(아리랑고개)- 소나무가 있는 남양 해변가 염전, 광릉내 수목림이 울창했다. 비원, 경복궁도 좋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젊은 사람들의 생각하는 사고를 추구하려 했다. '불의를 불의라 해야되고 부정을 부정이라 말할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겠다는 의식과 생각이 배어나는 역사적 작품 경향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미래 지향적인 작품에도 많은 관심이 있다.
수상내역(영화)
1962년 5월 대통령 최우수작품상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1976년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수상내역(기타)
■ 수상내역(연극)
1956년 9월 대학 연극 경연대회 연출상/
2001년 문화관광부 보관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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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임원식은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해방이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정착했다. 서울 휘문중학교를 졸업한지 몇 달 후 한국전쟁이 발발해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이후 전쟁을 피해 부모와 함께 제주도로 피난하여, 거기서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생이 된 후 고등학생 시절 교제한 제주도 출신 여고생과 결혼했다.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였고, 후일 촬영기사가 된 장석준, 전조명이 동기생이었다. 임원식은 대학 시절 교내 연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올린 극단 ‘청협(靑協)’의 창립공연 「통곡」(1954)에서 주연을 맡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독교방송에 입사해 연출 겸 성우로 일했다. 이후 선민영화사에 입사해 <불멸의 성좌>(1959), <대원군과 민비>, <연애전선>(1960), <돌아온 사나이>(1960) 등에서 연출부로 일했다.
신필름의 연출부로 옮긴 후 신상옥 감독 밑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열녀문>(1962), <강화도령>(1963) 등에 참여하며 연출수업을 받았다(한국영화감독사전). 1965년 나윤규의 아들이자 친구였던 나봉한과 공동으로 컬러시네마스코프 영화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를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를 했다(경향신문a). 이 영화는 명보극장에서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고 그 해 대종상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그는 30여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 태창흥업의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관속의 드라큐라>(1982) 등의 영화를 제작했다(경향신문b). 1999년에는 한국영화감독협회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힘썼다. 임원식의 두 아들인 임종호, 임종재 모두 영화감독이다(한국영화감독사전).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67년 2월 25일자 8면.
경향신문b 1982년 6월 30일자 12면.
한국영화감독사전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1824&keyword=임종재)
[작성: 김성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35년 1월 22일 황해도 평산에서 유교적 가풍에 강한 천도교도인 임수동(林壽東)의 3남 2녀 중 3남으로 출생. 고향에서 누천(漏川) 초등학교를 마치고 해방이 되던 해 성탄절 월남한 아버지를 다라 서울에 정착하자 4년제 휘문중학을 졸업했다. 몇 달 만에 6·25전쟁을 만나 학도병으로 나갔으나 피난한 부모들과 제주에서 합류. 그후 제 2의 고향처럼 여기게 되는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이곳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뿐 아니라, 학생회장 시절 사귄 토박이 여고생과 얼마 후 대학생 신분으로 결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시절이다. 동기생 가운데는 뒷날 촬영기사가 된 장석준, 전조명이 있었다. 그는 이무렵 교내 연극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서울 명동 시공관 무대에 올린 청협(靑協)의 창립공연 <통곡>(1954·김규대 연출) 때는 주연을 맡기도 했다. 학업을 마치자 기독교 방송의 공개모집에 합격. 연출 겸 성우로 활약하는 한편, 선민 영화사에 입사한 것을 계기로 재일교포 영화감독 유진식(유진식)의 제 3조감독으로 배정돼 <불멸의 성좌>(1959. 최형·이빈화 주연)의 제작에 참여했다. 잇따라 그의 두 번째 작품 <대원군과 민비>(1959)의 제 1조감독에 이어 김수용 감독의 <연애전선>(1960), <돌아온 사나이>(1960)의 퍼스트로 기용되었다.
그에게 처음 메가폰을 잡게 되는 기회가 온 것은 신필름의 연출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터였다. 신상옥 감독 밑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열녀문>(1962) <강화도령>(1963) 등 제 1조감독으로 연출수업을 쌓은지 4년 만인 1962년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김승호·최은희 주연)를 통해서였다. 고종을 선정하던 대원군이 궁녀 이씨의 소생인 완화궁을 세자로 책봉하려들자 이에 반발한 며느리 민비가 민승호 일파와 손잡고 대원군을 물러나게 한 후 개방주의를 표방, 수호조약을 하기에 이른다는 내용. 이서구·임희재 각본을 160분량으로 담아낸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대작이었다. 흥행(명보극장)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그해 대종상 여우주연상(최은희)과 남우조연산(박노식), 미술상(송백규)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숙부인> <서유기> <대폭군> <나는 매국노>(이상 1966년)를 비롯하여 <영(影)> <밀명> <풍랑객> <풍운아>(1968) <석양에 떠나가다> <항구 8번가> <마인> <심야의 대결> <팔없는 검객> <의적 홍길동> <맹수>(1969) <민비와 마감> <벌거벗은 태양>(1970) <대감신랑> <춘색한녀>(1971) <분노의 새얼굴> <설야의 여곡성>91972) <박수무당> <아리랑>(1974) <<어머니> <내마음 나도 몰라>(1976)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77) <소림사 물장수> 등 30여 편을 연출하였다.
임원식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은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외에 함동영화사가 제작한 <어머니>(1976. 윤연경·이순재 주연)와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77. 신영균·고은아 주연)가 꼽힌다. <어머니>는 생활의 대책이 없는 상이 군인에게 시집을 가 전처소생의 오남매까지 돌보며 헌신적인 사랑으로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 마을도 새롭게 변모시키는 젊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는 일본 제국주의의 신사참배 정책에 맞서 싸우다 형무소에서 순교한 주기철 목사를 내세워 한국인이 살아온 시대상을 부각시켰다. 전자가 6. 25전쟁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사업으로 추진해 온 새마을 운동을 배경에 깔았다면, 후자는 한일합방 이후 속박받는 식민지 백성의 비애를 한 종교인의 체험을 빌어 그려 내었다. 특히 임감독이 아끼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는 개봉 첫날 상영이 중단되는 돌발적인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유신헌법 철폐운동을 벌이다가 투옥된 문익환 목사 등의 일을 상기시켜 일반인들에게 종교탄압의 인상을 심어줄까 우려한 관계당국이 압력을 가해 왔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현대물보다 사극, 통속시대극이 많은 편이다. 정적인 작품이 적은 대신 <밀명>(1968) <항구 8번지> <석양에 떠나가다>(1969)의 경우처럼 액션이 강한 역동적인 화면을 선호한다. <발가벗은 태양>(1970) <내마음 나도 몰라>(1976) 등을 제외하고는 멜로드라마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또하나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 명쾌한 것을 좋아하는 그의 기질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데뷔작인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2)로 대종상에서 성과를 거둔 것 외에 <어머니>로 1976년도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2001년에는 문화관광부로부터 보관훈장을 받았다. 그동안 한국기독교영화제작소 대표이사(1990), 기독교TV방송 전무이사 겸 방송본부장(1995), 한국영화감독협회 제20대 회장(1999), 사단법인 한국영화감독협회 초대이사장(2000),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 회장(2001),사단법인 제주영상위원회 부위원장 겸 운영위원장(2003)직을 맡고 있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두 아들은 모두 영화 감독이다. 장남 종호는 애니메이션 출신으로 극영화를 연출했고, 차남 종재는 <그들만의 세상>(1996)을 통해 감독이 되었다.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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