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학
Bea Sung-hak / 裵聖學 / 1923  ~  2004
대표분야
촬영
데뷔작품
벼락감투 1956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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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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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
바람불면 일어서는 숲 (임정수, 1991)
못먹어도 고 (고응호, 1989)
청춘시대 (고응호, 1988)
대남 (김시현, 1988)
대야망 (배화민, 1987)
율곡과 신사임당 (정진우, 1978)
호반의 메아리 (박남수, 1978)
검은 띠의 후계자 (최영철, 1976)
여신탐 (최훈,파오시에리, 1976)
바보 용칠이 (강대선, 1975)

주요경력

한국 영화 촬영 감독 협회 83년∼87년 사무장 및 감사 역임,
6.25 직후 공보처 대한뉴스 USIS 종군기자 리버티 뉴스 제1회부터 48회까지 촬영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22세 때 외삼촌 댁인 강원도에 살다가 생활이 어려워 서울로 상경. 찹살떡 장사를 함. 마포에서 우연히 전창근 감독이 떡을 사주며 같이 일을 하자며 권유. 중앙청 앞 '이'프로덕션에 들어가 전창근 감독 밑에서 영화를 시작. 48년도 영화계 첫 입문하여 5년여 조수 생활을 거쳐 59년 '벼락감투'로 입봉함.
주요 영화작품
벼락감투(1956,홍일명감독)
풍운의 궁전(1957,정창화감독)
시집살이(1958,장황연감독)
칠일간의 애정(1959,장황연감독)
청춘일번지(1960,정일택감독)
상록수(1961,신상옥감독)
연산군(1961,신상옥감독)
가족회의(1962,박상호감독)
재회(1963,김용덕감독)
님은 가시고 노래만 남아(1964,양명식)
유부녀(1965,정창화감독)
순간을 영원히(1966,정창화감독)
애하(1967,이형표감독)
돌무지(1967,정창화감독)
잊으려해도(1968,전우열감독)
남정임 여군에 가다(1968,김화랑감독)
필살의 검(1969,김시현감독)
내일있는 우정(1970,김시현감독)
황금독수리(1971,유 열감독)
흑야괴객(1973,정창화감독)
바보 용칠이(1975,강대선감독)
여신탐(1976,최 훈감독)
호반의 메아리(1978,박남수감독)
율곡과 신사임당(1978,정진우감독)
대야망(1987,김시현감독)
청춘시대(1988,고응호감독)
애착작품 및 사유
전응주 감독-'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신상옥 감독-'연산군'. 초창기 시절의 영화로 문희, 남정임, 허장강 등 배우들의 열연, 열심히 영화에 임했던 배우들이 기억이 많이 난다.
영화속 명소
남원-노들 강변-문경에서 조금 들어감. 강물도 흐르고 경치가 좋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멜로를 많이 함. ※정창화 감독과 16편을 하면서 액션 영화도 다수 촬영.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3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났으며 양정중학교를 다녔다(정연구). 서울로 거처를 옮긴 후 우연히 알게 된 전창근 감독을 통해 1948년 조수생활로 영화계에 입문했다(한국영상자료원). 전쟁이 발발하자 진해로 거점을 옮긴 주한미국공보원에서 카메라맨으로 활동하며 <리버티뉴스>를 1회부터 48회까지 촬영했다(이영일, 한국영상자료원). 1956년 홍일명 감독의 <벼락감투>를 통해 촬영감독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신상옥의 <상록수>, <연산군(장한사모편)>(1961), 박상호의 <산색시>(1962), 전응주의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1962), 정창화의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1965), <예라이샹>, <광야의 결사대>(1966) 등 많은 작품의 촬영을 담당했다. <연산군>으로 1962년 제1회 대종상영화제 촬영상을 받았다(경향신문). 2004년 1월 별세했다(매일경제).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2년 3월 31일자 3면
매일경제 2004년 1월 28일자
이영일, 『한국영화전사』, 소도, 2004, 227쪽.
정연구 편, 『한국영화촬영기사: 극영화 촬영작품 총목록 1920년-1985년』, 영화진흥공사, 1986, 63-64쪽.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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