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환
Do Dong-hwan / 都東換 / 1938  ~ 
대표분야
제작/기획
데뷔작품
저하늘에도 슬픔이 1963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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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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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
환희 (엄종선, 1996)
오디션 (이경민, 1996)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박종원, 1992)
수탉 (신승수, 1990)
못먹어도 고 (고응호, 1989)
소녀 (김기현, 1988)
청춘시대 (고응호, 1988)
제2의 사춘기 (박호태, 1987)
삼색스캔들 (박호태, 1986)
서울손자병법 (김현명, 1986)

주요경력

1998년 <상해 임시정부와 김구선생> 비디오 테잎 23,400개 무료 배포
1995년 영화업협동조합 이사장
1996년 한국민족문화협회 회장
2006년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상임고문
2010년 제14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대학시절 연극을 2편 기획했던 것을 인연으로 영화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연극연출을 최현민씨가 했는데, 그것을 인연으로 연극인 장민호씨를 알게 됐고, '저하늘의 슬픔이'를 공동제작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주요 영화작품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김수용감독)
정동대감(1965,이규웅감독)
시장(1965,이만희감독)
오복문(1966,최인현감독)
계모(1967,최무룡감독)
정두고 가지마(1968,최무룡감독)
오월생(1968,최인현감독)
이상의 날개(1968,최인현감독)
아무리 미워도(1969,김수용감독)
상해 임시정부(1969,조긍하감독)
돌아온 사형수(1970,강민호감독)
미행자(1970,전우열감독)
삼색스캔들(1986,박호태감독)
서울손자병법(1986,김현명감독)
제2의 사춘기(1987,박호태감독)
서울은 여자를 좋아해(1987,남기남감독)
소녀(1988,김기현감독)
청춘시대(1988,고응호감독)
못먹어도 고(1989,윤정건감독)
수탉(1990,신승수감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박종원감독)
환희(1996,엄종선감독)
오디션(1997,이경민감독)
애착작품 및 사유
69년 '상해임시 정부와 김구선생'...왜냐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애국애족이란 이런것이란걸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물론 수준있는 작품으로는 '수탉','이상의 날개','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꼽을 수 있겠다.
영화속 명소
69년 '상해 임시정부와 김구선생'을 찍었던 창동에 있는 open set. 당시 상해도시를 만들어서 찍었으며, 열차씬은 미아리 촬영소에 객차를 만들어서 찍었다.(아쉬운것은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작품성이 있는 작품으로 관객들의 뇌리에 남는 수준작을 위주로 또한 영상을 통해 민족사에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것이다.69년에 했던'상해임시정부와 김구선생'이란 작품은 영상으로 된 민족의 족보라고 생각하고, 이런 작품을 통해 후손들에게 애국,애족을 다시 깨우쳐주길 바란다. 영상을 통해 국가관,민족관을 뚜렷이 심을 수 있는 작품을 후손에게 심어주려 한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고, 계속해서 이런일을 해나길 것이다.
저술내역
2006년 하늘이 내린 다섯 효자 이야기 (엮음)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8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대구대학교 연극반에서 기획을 하며, 당시 연극 연출가 최현민과 알게 된다. 그것을 인연으로 연극인 장민호를 알게 되었고, 1963년 당시 인기를 끌던 수기 <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주인공 이윤복이 다니던 대구 명덕초등학교로 찾아가 담임교사를 설득해 판권을 확보하라는 부탁을 받아(매일신문), 신필름과 공동제작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이후 대동흥업을 차리고 <정두고 가지마>(1968), <이상의 날개>(1968), <5월생>(1968) 등의 영화를 기획하고, 1969년 서울 상하이 거리를 오픈 세트로 짓고, 미아리 촬영소에 객차를 만들어 열차 신을 찍는 등 9천만 원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 <상해 임시정부>를 제작한다(중앙일보). 1972년에는 1929년에 일어났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영화화를 기획하면서 당시의 여학생들의 길게 땋은 머리를 위해 가발 값으로 1500만원을 투자하고, 광주역에서의 투석전을 위해 엑스트라 3만명, 야구경기 투석전에 5만명을 동원하여 설계하는 등(동아일보) 대규모의 제작을 시도하나 무산된다. 1985년 영화법이 개정으로 영화사가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전환되자 대동흥업을 정식 등록하고 <수탉>(1990),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 등을 제작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사회사업으로 중심을 옮겨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 금모으기 운동을 제창하고,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지역 재래시장 장보기 운동을 벌인다(일요저널).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72년 2월 10일 7면
중앙일보 2007년 12월 27일
매일신문 2008년 8월 27일
일요저널 2009년 3월 24일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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