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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Kim Soo-yong / 金洙容 / 1928 ~ 2023
대표분야
감독
데뷔작품
공처가 1958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2010
DB 수정요청
소장자료
기본정보
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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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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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임
화려한 외출
화려한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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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약속
(김수용, )
전쟁의 얼굴들
(김수용, )
침향
(김수용, 1999)
사랑의 묵시록
(김수용, 1995)
보금자리
(김수용, 1989)
TV문학관 : 냄새
(김수용, 1987)
허튼소리
(김수용, 1986)
MBC 베스트셀러극장 : 알 수 없는 일들
(김수용, 1985)
약속
(김수용, 1984)
저 하늘에도 슬픔이
(김수용, 1984)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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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청룡영화상(1965)
:
감독상(
저 하늘에도 슬픔이
)
제 2회 백상예술대상 (구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1966)
:
영화부문 감독상(
)
제 9회 부일영화상(1966)
:
감독상(
갯마을
)
주요경력
1950년 11월 28일 6·25 종군, 국방부 정훈국 근무 (육군대위 예편)
1955년 4월 30일 국방부 군영화촬영소
1958년 12월 10일 <공처가>로 극영화 감독 데뷔
1973년 서울예대, 중앙대, 동국대, 단국대, 경희대 강사
1981년 6월 30일 청주대 예술대 교수
1983년 마닐라국제영화제, 하와이 국제영화제 한국대표
1984년 이태리 페사로영화제 한국대표
1989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1년 몬트리올세계영화제 심사위원
1993년 도쿄국제영화제심사위원
1995년 한국영화감독 거장2人전 도쿄 개최
1999년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
2003년 7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
2005~07년 대한민국예술원 연극·영화·무용분과 회장
2007년 12월 20일~2009년 12월 19일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2010년 6월 제9회 미장센 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전' 특별심사위원
2010년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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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정보
기타이름
Chin Chu Yung
영화계 입문배경
1951년 군에 입대(육군중위 통역장교)하고, 54년국방부 영화과에 배속되어 군홍보, 교육영화를 감독하게 되었으며 20여편의 단편을 통해 연출 수업을 끝내고 58년 극영화 "공처가"를 감독 데뷔.
주요 영화작품
공처가(1958,김수용)
버림받은 천사(1960,김수용)
일편단심(1961,김수용)
사춘기여 안녕(1962,김수용)
혈맥(1963,김수용)
월급봉투(1964,김수용)
갯마을(1965,김수용)
유정(1966,김수용)
산불(1967,김수용)
안개(1967,김수용)
사격장의 아이들(1967,김수용)
춘향(1968,김수용)
봄봄(1969,김수용)
무영탑(1970,김수용)
위자료(1971,김수용)
작은 꿈이 꽃필 때(1972,김수용)
딸부자집(1973,김수용)
토지(1974,김수용)
황토(1975,김수용)
발가락이 닮았다(1976,김수용)
야행(1977,김수용)
여수(1978,김수용)
달려라 만석아(1979,김수용)
하얀 미소(1980,김수용)
도시로 간 처녀(1981,김수용)
만추(1981,김수용)
저녁에 우는 새(1982,김수용)
저 하늘에도 슬픔이(1984,김수용)
중광의 허튼소리(1986,김수용)
침향(1999,김수용)
영화속 명소
"갯마을" ...경남 일광 목선이 출어하는 장면에서 어부들은 가족들의 배웅을 받지만 영영 이별도 된다. 경남 일광, 달빛아래 모래사장, 농익은 아낙네들의 에로시티즘이 발산된다.
"안개" 서해안, 안개가 흐르는 광활한 갯벌, 고독한 주인공들의 심상이 적절하게 묘사됨
"만추" 청주진입도, 라스트씬, 단풍이 절정이고 낙엽을 밟으며 불행한 연인들이 걷는 장면.
"침향" 양수리, 물안개 피는 호수, 자연과 인간, 죽음과 삶이 동화되는 유연한 분위기 연출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인간은 어떤 경우나 종말에도 반듯이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이 전반적인 주제이며, 영화는 영상의 특징이 아름답게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특히 촬영 몽타쥬에 있어서)
저술내역
2005년 나의 사랑 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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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5-07-01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9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안성공립농업학교를 다니던 시절 문학과 예술이 관심이 많았고, 3학년 되던 때 해방이 되자 안성의 극장 무대를 빌려 3.1 운동에 관한 연극인 <대지의 노을>의 희곡을 쓰고, 주연, 연출하기도 한다. 졸업 후, 서울사범학교를 다니며 연극부 활동을 한다. 한국 전쟁 당시 통역 장교로 근무하고, 휴전 이후 국방부 정훈국에 배치되어 전사 편찬 작업을 하다가 그 즈음 신설된 영화과로 옮기며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영화과의 과장이던 선우휘의 지휘 아래 30여 편의 기록 영화와 극영화를 만들며 영화에 대해 배운다. 당시 문관으로 있던 양주남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 조감독으로 지목하면서 파견학습의 형식으로 <배뱅이굿>의 조감독 일을 수행하며 연출 수업을 시작한다. 감독 데뷔는 그 <배뱅이굿>의 제작자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공처가>. 당시 아직 군인 신분이었던 탓에 토요일 오후 퇴근하여 월요일 새벽 귀대할 때까지 촬영을 강행하는 스케줄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연출한 영화가 <삼인의 신부>(1959), <구혼 결사대>(1959)이며 그 이후로는 군대를 전역하고 본격적인 영화 연출의 길로 나선다(한국영화감독사전, 인터뷰365). 데뷔 초기작은 <구봉서의 벼락부자>(1961), <청춘교실>(1963), <내 아내가 최고야>(1963) 등 '일련의 업치락 뒤치락 코미디'를 만드는 '코미디 감독이란 딱지가 붙다시피'(경향신문) 했는데, <굴비>(1963)부터 연출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장르로서 보자면 역시 코미디 영화에 속하는 <굴비>는 이후 평자들에 의해 <혈맥>(1963), <갯마을>(1965) 등과 함께 리얼리즘 영화로 다시 분류되기도 했다(동아일보). 이후의 작품들은 <안개>(1967), <만선>(1967), <토지>(1974), <산불>(1977), <화려한 외출>(1977), <만추>(1981) 등을 거쳐 1999년의 <침향>에 이르기까지 총 109편에 이르는 방대한 필모그래피를 보여준다. 초기의 코미디 연출 시절을 지난 이후의 작품들은 주로 문예영화라 할 수 있는 작품들로 적지 않은 작품 수에도 높으면서도 고른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연출작 가운데 <안개>(1967), <야행>(1977), <화려한 외출>(1977), <만추>(1981) 등은 1960, 1970년대 한국 영화사 속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영화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한 40여 년 동안의 영화 인생은 2005년 『나의 사랑 씨네마』라는 제목의 회고록으로 묶여 출간되기도 했다.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3년 5월 18일 8면
동아일보 1982년 11월 30일 12면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인터뷰 365-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김수용 감독
(http://interview365.com/client/news/view.asp?sidx=1840&ctcd=32)
[작성: 황미요조 ]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29년 9월 23일 경기도 안성에서 부농인 김준옥과 이금선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 심상소학교와 안성공립농업학교를 나와 1950년 서울사범학교(서울사범대학 전신)를 졸업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여러 작가들의 소설을 섭렵했다. 그중에도 '설국'을 쓴 일본의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작품을 좋아했다. 실제로 여러 편의 소설을 쓰기도 하여 이 습작 가운데 하나인 'K선생의 초상'은 1950년대 초 유일한 문단등용 잡지였던 '문예'에 응모하여 심사위원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서 극장을 빌어 '대지의 노을'이라는 자작 희곡의 연출과 주연을 맡게 되면서 연극에도 눈을 떴다. 서울 사범학교 본과에 들어가서는 연극부를 맡아 세익스피어, 몰리에르, 입센의 희곡과 유치진 작 <춘향전>, <조국> 등을 무대에 올리는가 하면, <춘향전>에서는 주인공 이도령 역으로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다. 그의 영화를 향한 열망은 1951년 서울사범학교 재학 중 군에 들어가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로 배속된 것이 동기가 되어 열매 맺기 시작한다. 통역장교로 출발한 그의 제작 체험은 군교육용 영화를 만다는 일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대위 계급장을 달고 당시 박정희 소장이 있던 사단을 배경으로 한 <10분간의 휴식>외에 <잊지 말자 6.25>, 무명시절 엄앵란을 내세운 <윤중사의 수기>등 30여편을 만들었다. 이때 그의 상사가 작가 선우휘였다. 그에게 본격적인 영화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해 준 것은 문관으로 있던 양주남 감독이었다. 해방전 <미몽>(1936)으로 첫 선을 보인 양 감독이 그를 조감독으로 지목, 파견학습형식으로 <배뱅이굿>(1957) 촬영현장에 뛰어들면서 부터였다. 온양에서 크랭크인 된 이 영화에서는 배뱅이굿을 열창한 이은관과 정애란이 공연했는데 그에게 이은관이 타고온 당나귀의 마부까지 돼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런 그에게 마침내 정식 데뷔의 길이 열린다. 1957년 <배뱅이굿>을 제작한 프로듀서 김보철로부터 <공처가>(1958)의 감독 의뢰가 온 것이다. 딸의 혼사를 둘러싸고 아내(백금녀)와 불화중인 가운데 자기네 식당 맞은편에 신장개업한 경쟁자의 출현까지 겹쳐 골치가 아픈 곰탕집 대성관 주인(장소필)이 역전의 기회를 잡아 매사를 잘 풀어 나간다는 해피엔드의 코미디. 그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토요일 오후 퇴근하여 월요일 새벽 귀대할 때까지 촬영을 강행했다. 그는 이듬해 군에서 전역하자 5년 동안 <3인의 신부>,<구혼 결시대>(1959),<연애전선>(1960),<부부독본>(1961),<후라이보이 무전여행>(1963) 등 주로 15편의 희극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1963년 결혼한 자식들을 찾아 상경한 노부부의 애환을 통해 효도문제를 제기한 김승호, 황정순 주연의 <굴비>를 전환점으로 작품세계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사고의 경쾌함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의식의 두께에 무게를 두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실향민의 아픔을 그린 <혈맥>(1963), 생활전선에 뛰어든 소년 가장의 시선으로 본 사회현실의 단면도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풍어의 꿈을 남편의 실종으로 무산시킨 <갯마을>(1965), 어부들의 가난을 자연환경 탓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파악한 <만선> 소탕작전이 전개되는 갇힌 극한 상황속에서 본능적 욕망에 의해 사육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산불>, 탄피를 줍는 동심에 아로새긴 분단 전쟁의 상처 <사격장의 아이들>(이상 1967), 그리고 버스 안내양의 '삥땅'과 인권의 사각지대를 파고 들어간 <도시로 간 처녀>(1981)등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이들은 그의 작품 계보 가운데서도 가작에 속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단순한 사건의 나열보다 주인공들의 처한 상황과 심층에 비중을 둔 신성일,윤정희 주연의 <안개>(1967), 불교의 윤회사상을 바탕에 깔고 인간의 사랑과 미움, 삶과 죽음을 용해시킨 김동리 원작 <까치소리>(1967)와 진행되는 봄의 변화에 비중을 두고 이기주의적 인간의 모습을 그 자연과 인습의 굴레로 녹여낸 김유정 원작의 해학극 <봄봄>(1969)까지 추가하면 1960년대는 그야말로 김수용의 전성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연도별 연출 편수로 보더라도 67편의 <길 잃은 철새> 등 10편을 정점으로, 무려 63편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 부분 최다 기록을 세웠다. 이는 양적인 우위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고른 수준을 유지하는 보기 드문 성과였다. 김수용은 일정한 테두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변신을 거듭해 온 기교파라 할 수 있다. 상업주의적 감각을 유지하면서 <혈맥>,<저 하늘에도 슬픔이>,<도시로 간 처녀>등 시대상황과 현실에 파고드는 리얼리즘의 전형을 제시하는가 하면, <안개>,<야행>,<화려한 외출>(1977),<웃음소리>(1978)등과 같이 실험적인 신감각의 세계를 열어 보였으며, <갯마을>(1965),<분녀>(1967),<봄봄>(1969),<토지>(1974),<물보라>(1980)등이 말해주듯이 유교적인 전통인습과 로컬리즘을 추구하는 또다른 일면을 보여 주었다. 김승호, 황정순, 김지미 등 골든 캐스트로 짜인 <혈맥>은 월남 동포들이 모여 사는 해방촌을 무대로 품팔이 따위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하루살이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실향민의 비애와 배금사상을, 고은아, 신영균 주연의 <갯마을>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않는 고기잡이 남편 때문에 청상과부가 된 여자(해순)의 개가와 귀향을, 초등학교 4학년 생인 이윤복의 일기를 원작으로 한 김천만 주연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도박에 빠진 아버지와 가출한 어머니를 대신하여 세 남매의 가장이 된 소년의 삶을 각각 심도있게 그려 공감을 샀다. 신성일, 윤정희 주연의 <야행>은 월남전에서 전사한 여고시절 은사를 잊지 못한 채 동료 은행원과 동거하며 남자헌팅에 나서는 노처녀 은행원의 방황을 의식의 흐름으로 포착했고, 역시 윤정희, 이대근 주연의 <화려한 외출>은 첨단을 걷는 30대 후반의 여류 기업가가 괴한에게 납치된 후 도망간 여자를 대신하여 아내 노릇을 하다가 탈출했으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자 투신자살하고 마는 내용을 한 여성의 잠재의식을 빌어 투영시켰으며, 남정임, 이영하 주연의 <웃음소리>는 남성 혐오증이 있는 호스테스의 진실한 사랑의 희구와 배신을 환각적인 의식 표출의 방식으로 달구어 내었다. 이 밖에 과장되고 뒤틀린 웃음의 세계에서 스스로 리얼리즘이라는 계보를 향해 걸어 들어온 시기에 점화된 신성일, 엄앵란 콤비의 <청춘교실>(1963)을 비롯하여 <위험한 육체>(1964),<길 잃은 철새>(1967) 등 청춘물과 <아편전쟁>(1964),<춘향>(1968),<무영탑>(1978)등 사극, 그리고 <월급봉투>(1964),<날개부인>(1965),<순애보>(1967),<옥합을 깨트릴 때>(1971),<내 마음의 풍차>(1976),<가위바위보>(1976),<망명의 늪>(1978),<만추>(1981),<허튼소리>(1986),<사랑의 묵시록>(1995),<침향>(1999) 등 40여년 간 모두 1백 5편의 감독작품을 내놓았다. 최고의 흥행작은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로 서울인구 5백만 명일 때 29만명을 동원했다.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역임. 현재 예술원 회원이며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중이다.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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