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기
Hong Seong-ki / 洪性麒 / 1924  ~  2001
대표분야
감독, 편집, 제작/기획, 촬영, 시나리오
데뷔작품
여성일기 1949
활동년대
1940, 1950, 1960, 1970,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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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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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내가 버린 여자 2 (홍성기, 1980)
너와 내가 아픔을 같이 했을 때 (홍성기, 1970)
비운의 열두고개 (홍성기, 1970)
별은 멀어도 (홍성기, 1969)
대석굴암 (홍성기, 1964)
젊음이 밤을 지날 때 (홍성기, 1964)
처녀성 (홍성기, 1964)
동경 비가 (홍성기, 1963)
대지의 성좌 (홍성기, 1962)
에밀레종 (홍성기, 1961)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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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경력

1943.4 만주국 영화협회 제작부 연출과 조감독 피명
1944.2 시나리오 "파문" 일본영화 현상모집에 입선(당시 19세), 우찌다도모 조감독
1945.9 해방으로 인하여 귀국. 고려영화사에 입사
1946.5 미국 공보원(D.C.I)위촉으로 문화영화 3편 감독
1946.9 홍성기 프로덕션 설립(대표이사)
1960.3 성민영화사 설립(대표이사 사장), "춘향전"(1961)- 최초의 천연색 시네마스코프, "비극은 없다"(1959)- 국산영화상(2회 최우수상), 아시아 영화제 (7회)출품.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중학교때 영화구경을 몰래 다니고 글을 너무 잘 쓴다는 이유로 엄하신 아버지에게 매를 맞은 적도 있는 소질이 다분히 있었던 나는 19세의 나이로 시나리오 "파문"이 당선 되고 만주에서 학교를 다니며 일본감독 우찌다도모에 사사. 해방후에 고려 영화사에 입사하여고, 이땅이 일제치하에서 해방되고 첫 번째 작품인 "자유만세"를 연출한 최인규 감독의 조감독 네명중 한명으로, 1948년도 "여성일기"는 감독 데뷔작이다.
주요 영화작품
여성일기(1949,홍성기감독)
출격명령(1954,홍성기감독)
열애(1955,홍성기감독)
애인(1956,홍성기감독)
애원의 고백(1957,홍성기감독)
실락원의 별(1957,홍성기감독)
실락원의 별 후편(1958,홍성기감독)
별아 내 가슴에(1958,홍성기감독)
산넘어 바다건너(1958,홍성기감독)
청춘극장(1959,홍성기감독)
별은 창넘어로(1959,홍성기감독)
비극은 없다(1959,홍성기감독)
재생(1960,홍성기감독,박 찬감독)
길은 멀어도(1960,홍성기감독)
금단의 문(1961,홍성기감독)
춘향전(1961,홍성기감독)
에밀레종(1961,홍성기감독)
격류(1961,홍성기감독)
대지의 성좌(1963,홍성기감독,박 찬감독)
동경 비가(1963,홍성기감독)
젊음이 밤을 지날 때(1964,홍성기감독)
처녀성(1964,홍성기감독)
대석굴암(1965,홍성기감독)
별은 멀어도(1969,홍성기감독)
너와 내가 아픔을 같이 했을 때(1970,홍성기감독)
내가 버린 여자 2부(1980,홍성기감독)
애착작품 및 사유
"에밀레종"(1961)- 대작이고 여름의 더위 속에서 작품을 만들어 너무 고생했던 기억. "열애"(1955)- 나의 고집으로 만든 작품. 소록도에서 고생. 그러나, 관객호응이 낮아 실패. "유정"(1960년대초)- 미완결된 작품이지만, 그당시 해외로케로 나가면서까지 열정을 다했다던 작품.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열애"와 같이 사회고발을 주축으로 러브스토리를 만들려고 했으나, 흥행실패로 관객의 호응과 맞추어 작품을 그 다음부터는 만들었다.
"열애"(1955)-매우 신경써서 만든 작품으로 소록도에서 문둥병환자와 의사와의 사랑을 그린 내용. 이 작품에서 '이집길'배우가 열연하다 안타깝게 사망하였음(영화관계쪽에서는 이 배우를 무척 아꼈다.)
수상내역(영화)
국제영화사, 영화세계사 최우수상 (1951, 1953)/영화세계사 최우상)1954)/한국영화 면세운동에 앞장서서 한국영화면세 혜택(1955)/ 미국무성 우수문화 영화제작상(1956)/국제영화사 최우수 감독상(1961)/영화세계사 최우수 감독상(1962,1964)/국제영화사 최우수 감독상(1963)/영화유공자 문화부 장관상(1975)/영화인 공로상(1987)/

1958년 문교부 선정 우수국산영화 작품상(<실락원의 별>)/
1959년 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 작품상 수상(<별아 내가슴에>)/
1959년 제2회 국산영화상 최우수상 (<비극은 없다>)/
1986년 제25회 대종상 영화제 공로상/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4년 충청북도 중원에서 출생했다. 중국 안동의 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만주 국립 영화학교 연출과를 졸업했다. 19세에 일본영화 시나리오 현상모집에 당선된 「파문」으로 등단했으며, 일본 시대극으로 유명한 우치다 도무(內田吐夢)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해방 뒤 귀국해 고려영화사에 입사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최인규의 <자유만세>의 조감독으로 연출부 활동을 시작해 국내 최초의 컬러영화 <여성일기>로 1949년 감독 데뷔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애인>(1956), <애원의 고백>(1957), <실락원의 별>(1957), <별아 내 가슴에>(1958) 등 다수의 멜로드라마를 연출하였다. 그 중 십만 명의 관객을 모은 흥행작인 <실락원의 별>은 기혼의 소설가가 여대생과 불륜에 빠진다는 내용으로,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아내 역의 주증녀의 호연이 돋보이던 작품이었다. 이듬해 연출한 <별아 내가슴에>(1958) 역시 1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하였고, 홍성기는 이 작품에서 만난 17세 연하의 김지미와 결혼하였다. 호소력 있는 멜로드라마로 “1959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약 8년간 가장 잘 나가는 대표적인 흥행감독”(한국영화감독사전)으로 승승장구하던 홍성기는, 히로인 김지미를 ‘춘향’으로 내세운 야심작 <춘향전>을 내놓았지만 신상옥의 <성춘향>(1961)년에 밀려 흥행에 실패하게 된다. 이 두 작품은 모두 8천환이라는 당대의 거대 제작비와 컬러 시네마스코프를 경쟁적으로 사용했고, 그 시기를 대표하던 감독들인 홍성기와 신상옥, 그리고 대표적인 여배우인 김지미와 최은희의 대결이라는 구도를 낳으면서 영화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심지어는 영화제작협회는 이 두 작품을 지지하는 세력인 구파와 신파로 나뉘면서 대립하기도 하였다(경향신문). 1962년 김지미와의 이혼 후 <대석굴암>(1965), <별은 멀어도>(1969) 등 몇 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전성기만큼의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그의 마지막 연출작은 <내가 버린 여자2>(1980)이다. 1986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오랜 와병 끝에 2001년 2월 3일 수원의 자택에서 78세의 생을 마감했다(씨네21).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1년 1월 18일자 4면.
한국멜로의 황금시대, 별이지다, <춘향전>의 홍성기 감독, 『씨네21』제289호(2001년 2월 발행)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24년 5월 25일 충청북도 중원 출생. 부친 홍한표와 모친 이기련 사이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관공서 토목과 설계부문의 고위간부였다. 모친이 일찍 죽어 계모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를 따라 서울, 부산을 거쳐 만주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중국 안동의 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신경 건국대학교 정경학과 2년을 수료한 뒤 한국인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만주 국립 영화학교 연출과를 졸업. 19세에 일본영화 시나리오 현상모집에 당선된 <파문>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글솜씨와 어학에 두각을 드러냈다. 만주에서 시작된 영화인생은 졸업 후 일본 시대극으로 유명한 우찌다 도무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해방 뒤 귀국해 고려영화사에 들어간다. 당시 <자유만세>를 찍고 있던 최인규 감독의 연출부로 일하게 되는데 미술부에서 일하던 신상옥 감독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영화 테크닉을 지닌 인력이 드물었던 환경에서 그는 25세의 나이로 국내 최초의 컬러영화로 기록되는 16mm 작품 <여성일기>(1949, 염매리 주연)를 연출하여 감독으로 데뷔했다. 사랑의 길을 포기하고 사회사업에 전념하는 한국보육원 설립자 홍은순의 일대기를 소재로 빌려왔다. 두 번째 작품으로 공군 파일럿의 사랑과 전우애를 그린 대작 <출격명령>(1954)을 제외하면 그의 영화는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센병에 걸린 한하운 시인의 사랑을 모티브로 한 <열애>(1955), 불륜의 도피행각을 벌이지만 결국 가정으로 돌아오는 소설가의 이야기인 <실락원의 별>(1957, 주증녀 주연), TV가 없던 당시 인기 라디오 드라마를 첫 영화화 한 <산 넘어 바다 건너>(1958), 인기 신문 연재소설을 각색한 1958년 작으로 외아들을 키우며 독립운동을 하러 떠난 남편을 20년 간 기다리는 여인의 눈물겨운 사연인 <별아, 내 가슴에>. 이 작품을 찍을 무렵 김기영 감독이 신인배우 김지미를 추천했고, 그는 흔쾌히 그녀를 배우로 기용. 이런 인연으로 만나 열 일곱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의 인연을 맺게 된다. 이어서 미모의 여가수와 장래가 촉망되는 가난한 청년 작곡가의 운명적인 엇갈림을 다룬 파리 로케이션 영화 <길은 멀어도>(1960), 신라 성덕왕 때 주조된 봉덕사의 신종에 얽힌 전설을 다룬 <에밀레종>(196,최무룡,김지미 주연)등을 내놓았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약 8년 간 가장 잘 나가는 대표적인 흥행감독'이었으며 '당시 멜로 드라마의 상징적인 존재'(고인의 장례식 <추도사>에서, 김종원)였다. 또한 카메라의 메카니즘을 잘 알아 앵글각도까지 꼼꼼이 그린 콘티를 갖고 촬영현장에 임했고 배우의 연기조절에도 능한 감독이었다. 당대 대중의 감수성에 충실한 상업적 멜로 드라마로 전후의 혼란 속에서 위안거리를 찾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였지만 신상옥 감독 <성춘향>과 맞붙어 화제를 모았던 <춘향전>이 흥행에 참패, 이후 이렇다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김지미와의 결혼도 파경을 맞는 등. 1970년 <너와 내가 아픔을 같이 했을 때>를 만든 뒤 10년의 침묵 끝에 다시 메가폰을 잡았지만, <내가 버린 여자2>(1980)라는 속편 기획을 마지막으로 영화를 접었다. 감독 데뷔 이후 30년 동안 만들어 낸 27편의 작품을 남기고. 그는 1986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오랜 와병 끝에 2001년 2월 3일 타계.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루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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