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주
Jeong Yoon-joo / 鄭潤柱 / 1918  ~  1997
대표분야
음악
데뷔작품
까치의 죽음 1957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DB 수정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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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내시 (이두용, 1986)
소명 (최인현, 1984)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이두용, 1983)
삐에로와 국화 (김수용, 1982)
물보라 (김수용, 1980)
무상 (이성구, 1978)
(이성구, 1978)
과부 (조문진, 1978)
비련의 홍살문 (변장호, 1978)
야행 (김수용, 1977)

주요경력

1937년 경성전기학교 토목과 수석 졸업 후 경상남도 도청 토목과 취직
1939년 10월 임동혁(任東爀)에게 작곡 사사
1945년 통영 중학교 음악교사
1952년 극작가 유치진의 아동극을 무용곡으로 바꾼 <까치의 죽음> 전주곡 작곡. 5월에 부산 광복동 부산극장에서 초연
1953년 주한 미국문화원 리버티 프로덕션(Liberty Production) 음악담당직
1958년 문화공보부 국립영화제작소 녹음 및 음악담당
1957년 제1회 한국음악협회 작곡가상 수상
1977년 제4회 한국작곡상
1978년 제5회 한국작곡상
1986년 충무시 문화상
1988년 화관문화훈장
1990년 사단법인 한국 작곡가 협회 이사장

기타정보

주요 영화작품
사랑의 십자가(1959,유두연감독)
이 생명 다하도록(1960,신상옥감독)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신상옥감독)
상록수(1961,신상옥감독)
연산군(1961,신상옥감독)
로맨스그레이(1963,신상옥감독)
혈맥(1963,김수용감독)
쌀(1963,신상옥감독)
잉여인간(1964,유현목감독)
월급봉투(1964,김수용감독)벙어리 삼룡이(1964,신상옥감독)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임원식감독)
추풍령(1965,전범성감독)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김수용감독)
민며느리(1965,최은희감독)
갯마을(1965,김수용감독)
유정(1966,김수용감독)
만선(1967,김수용감독)
팔도강산(1967,배석인감독)
산불(1967,김수용감독)
애하(1967,이형표감독)
안개(1967,김수용감독)
대원군(1968,신상옥감독)
분녀(1968,김수용감독)
시발점(1969,김수용감독)
새색시(1969,조문진감독)
이조 여인잔혹사(1969,신상옥감독)
봄봄(1969,김수용감독)
악마와 미녀(1969,이용민감독)
비전(1970,이형표감독)
홍살문(1972,변장호감독)
토지(1974,김수용감독)
과부(1978,조문진감독)
삐에로와 국화(1982,김수용감독)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3,이두용감독)
소명(1984,최인현감독)
내시(1986,이두용감독)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8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37년 경성전기학교 토목과를 졸업했으며 한강수력발전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이승학, 임동혁에게 성악과 작곡을 사사했다. 해방 후 통영으로 돌아가서 통영문화협회를 창립했으며, 1946년부터 통영중학교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고향 통영으로 피난 온 유치진을 만나 그의 아동극 <까치의 죽음>을 바탕으로 한 전주곡을 1952년에 완성했다. 이 작품의 음악회를 계기로 1953년부터 주한미국공보원 리버티프로덕션의 음악 담당으로 근무하게 되었으며, 이때 김기영의 <죽엄의 상자>(1955)를 비롯하여 여러 편의 문화영화에서 음악을 맡았다. 1958년부터는 국립영화제작소의 영화음악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영화음악가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부터 유두연의 <사랑의 십자가>(1959), 한형모의 <여사장>(1959) 등 상업영화의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하였으며,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연산군>(1961), <폭군연산>(1962), <쌀>(1963), <벙어리 삼룡>(1964) 등으로 이어지는 신상옥 감독의 영화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63년 국립영화제작소를 떠나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음악 작곡가로 전념했다. 1962년 제1회(<연산군>)부터 1963년 제2회(<지옥문>), 1965년 제4회(<벙어리 삼룡>), 1982년 제21회(<삐에로와 국화>)까지 네 번에 걸쳐 대종상영화제 음악상을 받았으며,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부일영화제 등에서도 음악상, 주제가상 등을 받았다. 영화음악 외에 순수음악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다수의 창작활동을 통해 1977, 78년 제4회, 5회 한국작곡상을 연이어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979년부터 한국작곡가협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했으며, 1997년 별세했다.

* 참고문헌
오희숙, 「특집: 한국음악 20세기 - 정윤주(鄭潤柱)」, 『음악과 민족』제26호(2003), 125-161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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