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춘
Lee Seong-chun / 李成春 / 1930  ~  2003
본명
이규용 (Lee Kyu-yong)
대표분야
촬영, 편집
데뷔작품
아리랑 1957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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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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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아름다운 인간 유영길 (, 1998)
촬영 :
미워도 다시 한번 2002 (정소영, 2001)
(이두용, 1999)
애니깽 (김호선, 1996)
빛은 내가슴에 (이기원, 1995)
아담이 눈뜰때 (김호선, 1993)
아들과 연인 (조문진, 1992)
뽕 3 (이두용, 1992)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 (김혁, 1991)
사의 찬미 (김호선, 1991)

주요경력

1974년 3대 4대 촬영감독 협회 위원장
1978년 5대 촬영감독협회 위원장
1979년 영화인협회 감사
1985년 제8대 촬영감독협회 자문위원 영화인 협회 부이사장
1987년 제9대 촬영감독 협회 자문위원
1990년 제10대 촬영감독 협회 회장
1993년 제11대촬영감독 협회 자문위원
1995년 제12대 촬영감독 협회 자문위원
1997년 제13대 촬영감독협회 자문위원
1956년 대한민국 무성화랑 무공훈장 수상(국방부)
1996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성격이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당시 6.25이후 내가 가야할 토목공학과는 지금처럼 활기를 띠고 공사에 착수할수 없는 상황이었다.아무래도 산업화가 멀었기 때문에 그래서 영화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특히 촬영을 선택한 것은 내 자신이 화면을 창조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길을 아직도 걷고 있는 것 같다. 제일 처음 고려 영화사에 최인규 님의 조수로 들어갔다가 6.25가 터지고 촬영대라는 그룹이 생겨 군사 촬영을 하도록 차출되었다. 그러다가 김학성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6.25때 같이 참전을 했고 촬영중 폭격을 당해 둘다 죽을고비를 넘겨서 살아났다. 그 후 제대해서 다시 영화로 돌아왔다.
주요 영화작품
아리랑(1957,김소동감독)
마도의 향불(1958,신경균감독)
흙(1960,권영순감독)
현해탄의 구름다리(1963,장일호감독)
내몫까지 살아주(1967,정소영감독)
규방(1968,정소영감독)
결사대작전(1969,고영남감독)
필녀(1970,정소영감독)
망나니(1974,변장호감독)
탈출(1975,고영남감독)
소나기(1978,고영남감독)
가시를 삼킨 장미(1979,정진우감독)
너는 내 운명(1979,정소영감독)
메아리(1980,최하원감독)
유혹(1982,김 기감독)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3,이두용감독)
자녀목(1984,정진우감독)
오싱(1985,이상언감독)
여왕벌(1985,이원세감독)
토요일은 밤이 없다(1986,송영수감독)
연산군(1987,이혁수감독)
청송으로 가는 길(1990,이두용감독)
사의 찬미(1991,김호선감독)
빛은 내가슴에(1995,이기원감독)
애니깽(1996,김호선감독)
애(1999,이두용감독)
애착작품 및 사유
내가 상을 받은 작품들과 그렇지 못한 작품들 모두를 다 좋아한다.특히 [애니깽]은 8개월간 멕시코 생활을 하며 병까지 얻었다. 하지만 그런속에 촬영하기 위해 이겨낸 조수들과 스텝들에게 감사해 한다. 그리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내가 촬영을 하진 못했지만 너무나 제작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힘들어지는 조수들에게도 내 자신에게도 불만이 되었다. 좋은 작품을 하더라도 모든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영화판이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난 문예적인 면이 강한 작품을 추구한다. 다시말해 예술적인 영화를 많이 선호한다는 것이다.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기억하는 영화가 옛날 49년에 개봉된 [마음의 고향]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요즘 찍어내는 영화는 기술적으로 매우 발전했고 현상기술도 발전했지만 그당시 영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지금보다 더 강렬했다고 본다. 그래서 더욱 [마음의 고향]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나보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클로즈업이 매우 타이트하게 다가가는데 이런것들도 관객이나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매우 타당해야만 할 때 상요한다. 그런 것이 영상문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0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이규용(李奎鎔)이다(국제영화, 경향신문). 해방 후 최인규, 최완규 형제가 운영하던 고려영화사에 조수로 들어갔다가, 전쟁이 나자 국방부 정훈국 촬영대에 차출되어 활동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당시에 김학성 등과 함께 촬영하여 만든 작품으로 <정의의 진격>(1951)이 있다. 이후 1950년대 말까지 국방부 영화과에 적을 두고 촬영을 했으며(국제영화), 김소동의 <아리랑>(1957)을 시작으로 정소영의 <미워도 다시한번 2002>(2001)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87년 제26회와 1992년 제30회 대종상영화제에서 각각 <연산군>(1987)과 <사의 찬미>(1991)로 촬영상을 수상했으며(동아일보, 매일경제), 그 외에도 다수의 촬영상, 기술상으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1996년에는 제28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공연예술 부문 수상자로도 선정되었다(경향신문).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에서 이사장, 회장 및 자문위원직을 역임한 바 있다. 2003년 별세했다(한국경제).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96년 10월 16일자 19면
동아일보 1987년 12월 22일자 12면
매일경제 1992년 4월 4일자 10면
한국경제 2003년 8월 4일자
韓國映畵人百人選, 『국제영화』 제5권 제2호(1959년 1월 발행).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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