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Lee Tae-won / 李泰元 / 1938  ~ 
대표분야
제작/기획, 감독
데뷔작품
무릎과 무릎사이 1983
활동년대
1980, 1990, 200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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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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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아랑 (안상훈, 2006) 특별출연
제작자 :
우리는 썰매를 탄다 (김경만, 2014)
하류인생 (임권택, 2004)
취화선 (임권택, 2002)
춘향뎐 (임권택, 2000)
세기말 (송능한, 1999)
세븐틴 (정병각, 1998)
창(노는계집 창) (임권택, 1997)
축제 (임권택, 1996)
미지왕 (김용태, 1996)

주요경력

1978~79년 전국극장연합회 회장
1983년~ 태흥영화사 대표
1983~89년 전국극장연합회 회장
1984년 태창영화사 인수, 태흥영화사 설립
1988~89년 한국영화업협동조합 이사장
1993년 10월 문화의 달 옥관문화 훈장 포상
1994~97년 한국영화제작자협회 회장
2002년 은관문화훈장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59년도 한스물 네다섯 정도였다. 우연찮게 기회가 돼서 <유전천리>란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극장도 잘 안다니고 영화계에 아는 사람도 없었던 때였는데 어떤 분에게 넌 영화 하면 잘 할 것 같다란 말도 들었던 참에 계기가 닿아 아는 친구들을 이사람 저사람 모아 한편 끝냈다. 그 후 다른 일을 하다가 74년도에 지방에서 극장업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영화 배급에도 손을 대게 됐다. 십년 정도 그쪽 일을 하다가 태흥의 전신인 태창을 인수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니 젊었을 때 제작을 했던 경험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게 남아서 그때부터 영화를 관심있게 달리 보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내재되어 결국 영화 계통업을 계속 하게 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요 영화작품
무릎과 무릎사이(1984,이장호감독)
장남(1984,이두용감독)
어두동(1985,이장호감독)
뽕(1985,이두용감독)
기쁜 우리 젊은날(1987,배창호감독)
두 여자의 집(1987,곽지균감독)
업(1988,이두용감독)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임권택감독)
그후로도 오랫동안(1989,곽지균감독)
오세암(1990,박철수감독)
장군의 아들(1990,임권택감독)
꿈(1990,배창호감독)
젊은 날의 초상(1990,곽지균감독)
장군의 아들 2(1991,임권택감독)
경마장 가는 길(1991,장선우감독)
이혼하지 않은 여자(1992,곽지균감독)
장군의 아들 3(1992,임권택감독)
서편제(1993,임권택감독)
화엄경(1993,장선우감독)
장미빛 인생(1994,김홍준감독)
태백산맥(1994,임권택감독)
금홍아 금홍아(1995,김유진감독)
축제(1996,임권택감독)
미지왕(1996,김용태감독)
창(1997,임권택감독)
세븐틴(1998,정병각감독)
세기말(1999,송능한감독)
춘향뎐(2000,임권택감독)
취화선(2002,임권택감독)
애착작품 및 사유
영화제작자로서 손님이 많이 들어서 돈이 벌린 작품이 기억에 안 남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영화사의 흥행기록을 내가 만든 영화가 깰수 있었다는 것은 큰 보람이다. <장군의 아들>이 그랬었고 그 기록을 <서편제>로 내가 또 깼고 그것이 일단 제작자로서 인정을 받는 것 아니겠나. 또 흥행이 잘 되지 않았더라도 작품적으로 인정을 받아서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을 탄다거나 배우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나름대로 기쁨이 있다. <서편제>,<화엄경>,<태백산맥>이 작품적으로 인정받은 대표적인 작품이고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장미빛 인생>은 각각 모스크바, 낭뜨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과거 한 10년 기간 동안 화려했던 편에 속하고 좋은 감독들을 만나 운이 좋았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들을 만들고 칸느 영화제에 진출, 수상하고 싶은 생각은 늘 갖고 있다.
영화속 명소
서편제 찍을때 소리재를 세워 놓고 촬영했는데 그 장소가 대흥사다. 눈이 왔을때 오정해가 산을 보면서 노래 연습하는 장소로 대흥사 경내 높은 언덕이었다. 외에도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절정이 많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내가 생각하는건 평범하다. 일에 들어가려면 즐겁고, 신나야 한다. 일단 시작하고 난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그래야 실제 작품이 만들어져 나온다. 관객들은 바보가 아니다. 어영부영 나온 작품은 작품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한 컷트 한 컷트 감독이 추구하고 요구하는 것을 가급적 다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제작현장을 활기차게 만들어 주는 것이 내가 맡은 일이다. 영화하는 이들은 굿판의 굿하는 사람들 같아서 신바람이 나야 한다. 하나가 돼서 작품에 전력을 다해도 모자란 상황에 스텝들이 얼굴을 찌푸려대며 현장에서 티격태격하면 영화가 잘 돼겠나.촬영과정 이야기 같은 것들은 모르는 사이에 다 소문이 난다. 80명 100명 되는 스텝들이 집에가서 와이프나 남편에게 재미없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런 말 안 하겠나.재미없게 찍었는데 재미있었다고 거짓말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런 얘기들을 또 자식이 듣고 있다. 그 얘기가 내일 모레면 벌써 제주도까지 가 있다. 과정 좋은 작품 치고 관객들로부터 외면받는 영화가 없다. 스크린에 다 드러나이까.
수상내역(영화)
제1회 한국영화문화상
1993년 한국능률협회선정 10대 히트상품 (서편제)
1993년 제7회 싱가폴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서편제_
1996년 제18회 낭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본선진출 (축제)
2000년 제20회 하와이 국제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춘향뎐)
2000년 제53회 칸느국제영화제 본선진출 (춘향뎐)
2003년 제55회 칸느국제영화제 감독상 (취화선)
2003년 제38회 백상예술대상 특별상 (취화선)
2014년 제1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공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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