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태호
Sul Tai-ho / 薛泰湖 / 1923  ~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시나리오
데뷔작품
살아야 할 땅은 어디냐 1963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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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위험한 표정 (설태호, )
부활의 땅 (설태호, 1994)
에미의 들 (설태호, 1992)
거제도 포로수용소 (설태호, 1992)
잃어버린 시간들 (설봉, 1991)
햄버거 쟈니 (설태호, 1988)
스잔나의 체험 (설태호, 1986)
엘에이(LA) 용팔이 (설태호, 1986)
깊고 깊은 그곳에 (설태호, 1984)
복수는 내게 맡겨라 (설태호, 1981)

주요경력

감독협회 이사 역임
국방부 홍보영화 13편 연출
MBC 반공드라마 공모 당선 '살아야 할 땅은 어디냐'
1986년 장인필름 대표
2009년 인천 유스필름페스티벌 예산심사위원장
감독협회 이사

기타정보

기타이름
Seol Bong, 薛峰, 설봉
영화계 입문배경
어릴때부터 예술계통쪽 일에 재능도 있었고 좋아했던 것 같다. 이북에 있을때 단막극 연기도 한 적이 있다. 처음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연출쪽이 아니라 시나리오를 썼는데 송북 감독이 연출한 '첫사랑'이 처녀작이며 '살아야 할 땅은 어디냐'가 MBC 드라마 공모에 당선되고 이 작품으로 감독에 데뷔하게 된것이 영화계 입문배경이다.
주요 영화작품
영호작전(1967,설태호감독)
남대문출신 용팔이(1970,설태호감독)
운전수 용팔이(1971,설태호감독)
위기일발 용팔이(1971,설태호감독)
혈보산천(1972,설태호감독)
특별수사본부와 기생 김소산(1973,설태호감독)
특별수사본부 여대생 이난희사건(1973,설태호감독)
어둠속의 목격자(1974,설태호감독)
사랑이 있는 곳에(1974,설태호감독)
암살지령(1974,설태호감독)
십년만의 외출(1975,설태호감독)
원산공작(1976,설태호감독)
캐논청진공작(1977,설태호감독)
둘도 없는 너(1977,설태호감독)
도솔산 최후의 날(1977,설태호감독)
수병과 제독(1978,설태호감독)
슬픔은 저별들에게도(1978,설태호감독)
누가 이 아픔을(1979,설태호감독)
땅울림(1980,설태호감독)
복수는 내게 맡겨라(1981,설태호감독)
깊고 깊은 그곳에(1984,설태호감독)
스잔나의 체험(1986,설태호감독)
엘에이 용팔이(1986,설태호감독)
햄버거 쟈니(1988,설태호감독)
에미의 들(1992,설태호감독)
위험한 표정(설태호감독)
애착작품 및 사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1984년 '깊고 깊은 그 곳에'(원제 '위험한 표적')이란 작품을 좋아한다. 비록 흥행에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동시 녹음된 작품이며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외국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또한 수사물인 '기생 김소산' 전투영화인 '도솔산 최후의 날'이란 작품도 좋아하는데 이 작품들은 대작으로 지금도 다시 제작하기 힘든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고싶은 말
영화의 모든 장르를 초월하여 영화 그 자체는 예술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관객들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생각하고 배울점이 있다고 믿는데 그러기에 영화를 만들고 그 속에서 연기하는 연기자는 그 만큼에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만 한국영화가 조금이나마 발전 할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영화속 명소
개인적으로 주로 군사 영화를 많이 찍어서 63년 '신화를 남긴 해병'과 그 외 여러 작품에서 촬영했던 백령도와 전곡 두군데가 생각난다. 특히 전곡의 자살바위 주위는 만주 벌판을 무대로 전투신을 찍던 곳인데 내 영화 이후 많이 알려져 다른 군사 영화의 드라마를 찍을때도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영화는 그 자체가 예술이기 때문에 사회나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영화를 만드는 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재미있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전달 할 수 있다는 보람도 있는 것이 영화인데 이렇듯 작지만 보탬이 되는 영화, 웃음 뒤에도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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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설태호는 함경남도 단천 출신으로 6·25가 발발하자 19세의 나이에 홀로 남한으로 피난을 왔다. 북한에 있을 때는 단막극 연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는 <첫사랑>(1958)의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계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살아야 할 땅은 어디냐」가 MBC 드라마 공모에 당선되었고 이것을 1963년 직접 연출을 맡으면서 감독으로 데뷔하였다(한국영상자료원).
(1963)을 이만희 감독과 공동 연출하기도 했는데(인터뷰365), 해병대에서 복무한 경험을 살려 (1963)을 시작으로 <신화를 남긴 해병>(1965), <영호 작전>(1967), <특공대와 돌아오지 않는 해병>(1970), <원산공작>(1976), <캐논청진공작>(1977) 등을 통해 탁월한 전쟁영화 연출력을 보여주었다.
그를 흥행 감독으로 만들어 준 것은 ‘용팔이 시리즈’였다. 박노식이 주연한 <남대문 출신 용팔이>(1970년)가 크게 흥행하면서 설태호는 흥행 감독의 대열에 올랐다. <역전출신 용팔이>(1970), <운전수 용팔이>(1971), <신입사원 용팔이>(1971), <위기일발 용팔이>(1971) 등이 흥행하면서 주인공 용팔이(박노식)가 사용하는 전라도 사투리가 유행하기도 했다(경향신문b).
그는 반공액션물인 <원산 공작>(1976년)으로 1976년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원산 공작>은 아시아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면서 해외수출에도 성공했다. <원산 공작>은 당시 최고 수출가인 2~3만 달러에 대만과 일본에 수출되었다(경향신문a). 그는 첩보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1973), <특별수사본부 제2탄 여대생 이난희사건>(1973) 등을 연출했다. 1986년에는 장안필름을 설립해 창립작으로 미국 올로케이션 작품인 <엘에이(LA) 용팔이>(1986)를 제작·연출했다.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http://www.kmdb.or.kr/actor/mm_basic.asp?person_id=00001391&keyword=설태호)
경향신문a 1976년 11월 24일자 8면.
경향신문b 1995년 4월 4일 23면.
“독특한 영상 언어 작가 이만희가 남긴 것”, 인터뷰365, 2008/06/17.
(http://interview365.com/client/news/view.asp?sidx=1915)

[작성: 김성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본명 설태호(薛峰浩). 1929년 함경남도 단천 출생. 의과대학 중퇴. 정창화 감독과 이만회 감독의 수련을 거쳐 <살아야 할 땅은 어디냐>(1968년)로 데뷔했다. 그는 19세의 나이에 혈혈 단신 함경도에서 피난왔다. 이산 가족 얘기만 나오면 누구보다 감상적이 된다. 해병 문관 출신으로서 그는 해병대 복무 중에 겪은 경험과 지식이 뒷날 영화 연출에 큰 도움을 주었다. <신화를 남긴 해병>(1965년) <영호 작전>(1967년) <특공대와 돌아오지 않는 해병>(1973년) <암살지령>(1974년) <원산공작>(1976년) <케논 청진공작 77년> <도솔산 최후의 날>(1977년) 등의 작품에서 그의 장기는 십분 발휘되어 그 방면의 전문 감독처럼 군림했다.
<원산 공작>(1976년)은 본인이 내세우는 대표작 중의 하나. 1. 4 후퇴 당시 원산에서 후퇴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연합군 사령부에 비밀 정보가 접수된다. 원산의 병원에서 페스트로 보이는 질병으로 하루에도 수백명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참모실은 당황한다. 이 정보로 작전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일조의 6. 25 전쟁 대작. 그는 이 작품으로 1976년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한다.
<운수대통 일보작전>(1970년) <남대문 출신 용팔이>(1970년) 등으로 그는 연이어 대박을 터트린다. 뒤 이은 용팔이 시리즈 <역전 용팔이>(1970년) <운전수 용팔이 71년>(1970년) <신입 사원 용팔이>(1971년) (1972년)까지 지속되어 제작사로 하여금 입이 쫙 벌어지는 수입을 보장시켜 준다. 이 <용팔이>는 박노식이 주연을 맡아 열연했는데 박노식은 코믹 연기는 구수하고 인간미 넘치는 성격을 창출했다.
반면에 그는 <특별 수사본부와 기생 김소산>(1973년) <특별 수사본부와 여대상 이난희 사건>(1973년) 등 첩보물에도 수완을 보였다.
그가 아끼는 또 하나의 영화가 있다. <에미의 뜰>(1973년). 의혈단의 일원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익상은 일본 경찰에게 쫓겨다니다가 동생 용철의 결혼식장에서 그만 체포된다. 6. 25 전쟁이 난 후 익상 용철 형제는 운명의 재회를 한다. 형 익상은 북측 고위 빨치산, 동생 용철은 남측 토벌 대장, 극과 극의 신분으로 맞딱드린다. 그러나 서로 죽이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었다. 이 영화는 민족의 비극사를 그렸다고 하겠다. 그의 후기작 가운데서 관심을 끈 것은 안성기,김무생 주연의 <깊고 깊은 그곳에>(1984)이다. 갱생을 설득하는 단골 형사오아 냉소적인 전과자의 특수한 관계를 그린 범죄 영화로 설감독의 체취가 화면에 배어있다.
그는 일견 낙천주의자로 뽑힌다. 그의 끊임없는 재담이나 경험담은 술자리를 사로잡을 정도이다. '아바이 감독'은 동료들이 애칭으로 붙여 준 그의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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