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수
Kim Tai-soo / 金泰洙 / 1939  ~ 
대표분야
제작/기획
데뷔작품
법창을 울린옥이 1966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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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파도의 고향 (박민길, 1969)
배우 :
[원로영화인 구술인터뷰] 김태수 (, 2000)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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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경력

1967년 <산불>제17회 베를린영화제출품
1968년 <젊은느티나무>제18회 베를린영화제출품
1968년<맨발의 영광> 제28회 베니스영화제출품
1968년 <장군의수염>제16회시드니영화제출품
1969년 <지하실의7인>제30회 베니스영화제출품
1971년<옥합을 깨뜨릴때>제21회베를린영화제출품
1977년<산불>베를린출품
1972년 한국영화제작자협회장
1973년 한국영화배급협회 이사장
1983년 제11대 국회의원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1966년 우연히 친구들하고 영화를 제작하게되었고,임권택감독의<법창을울린옥이>라는 작품이었다.
주요 영화작품
요화 배정자(1966,이규웅감독)
산불(1967,김수용감독)
안개(1967,김수용감독)
까치소리(1967,김수용감독)
젊은 느티나무(1968,이성구감독)
맨발의 영광(1968,김수용감독)
장군의 수염(1968,이성구감독)
이층집 새댁(1968,이성구감독)
봄봄(1969,김수용감독)
지하실의 7인(1969,이성구감독)
밤(1970,최 훈감독)
방에 불을 꺼주오(1970,이형표감독)
누가 그 여인을 모르시나요((1970,이상언감독)
옥합을 깨뜨릴 때(1971,김수용감독)
춘향전(1971,이성구감독)
분례기(1971,유현목감독)
무녀도(1972,최하원감독)
일본해적(1972,이만희감독)
어머님 생전에(1973,이혁수감독)
위험한 사이(1974,이성구감독)
삼각의 함정(1974,이만희감독)
영자의 전성시대(1975,김호선감독)
탈출(1975,고영남감독)
청춘극장(1975,변장호감독)
국제경찰(1976,고영남감독)
마지막 밤의 탱고(1976,이성구감독)
산불(1977,김수용감독)
화려한 외출(1977,김수용감독)
죽음의 다섯손가락(1978,김정용감독)
꽃순이를 아시나요(1978,이혁수감독)
달려라 만석아(1979,김수용감독)
밤의 찬가(1979,김호선감독)
그 사랑 한이 되어(1980,이형표감독)
애착작품 및 사유
<요화배정자>라는 작품은 총천연색으로 스케일이 큰 대작이었다.1972년 국내최초의70mm장편의<춘향전>은 세계에서 다섯번째, 그리고 국내에서는 최초로 태창만의 기술과자본으로 개발한 70mm촬영기에 의해 촬영된작품이다.그리고 이어령씨의 <장군의수염>과 <영자의 전성시대>의 작품은 꼽을수 있는데 <영자의 전성시대>는 사회분위기를 반영한작품으로 젊은이의 아픔을 그린작품이다
영화속 명소
<화이트발렌타이>의 작품을 촬영할때의 촬영지인 천수만을 꼽을수있는데,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아름아움을 연출하고,철새가 날아다니는 장면은 장관이라 할 수있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문예영화와 예술성있는 영화를 추구하고,당시의사회 분위기를 많이 반영한다
저술내역
1980년 잡초 밭에 누워서(수필집)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김태수는 1966년 태창흥업(泰昌興業)을 설립하고 <법창을 울린 옥이>(1966)를 제작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태창흥업의 대표작품으로는 <장군의 수염>(1968), <춘향전>(1971), <영자의 전성시대>(1975) 등이다(한국영화배급사연구). 태창흥업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70mm촬영기로 촬영된 <춘향전>(1971)은 국내 최초의 70mm 영화였다. <춘향전>으로 인해 한국은 세계에서 5번째로 70mm 영화를 제작한 국가가 되었다(경향신문).
1967년 개정영화법에 따라 65개의 제작사와 28개의 수입업자가 두 차례의 통폐합을 거쳐 12개사로 압축되었는데 이때 태창영화주식회사도 살아남았다. 이 과정에서 한양영화사와 신상옥(신필름)이 쇠퇴하고 김태수, 주동진(연방영화사), 곽정환이 부상했다(씨네21).
태창흥업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이뤘다. 한 해 12편에서 18편까지 제작했으며 태창흥업에서 영화를 제작한다고 하면 지방에서 제작비 전액이 충당될 정도로 제작과 배급에서 흥행력을 인정받는 영화사였다(네이버지식사전). 김태수가 1983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태창영화사는 이태원이 인수하였고 태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동아닷컴). 김태수는 1995년 태창흥업주식회사를 재창업하였고 2000년 태창엔터테인먼트로 상호를 변경하였다(네이버지식사전).

* 참고문헌
네이버지식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0280)
경향신문 1981년 3월 10일자 12면.
새마을시절, 반공영화
“67년 반공영화 '고발'을 찍으며”, 씨네21, 1998년 04월 28일 제148호.
(http://www.hani.co.kr/c21/data/L980413/1q1e4d0e.html)
“애니깽 곽정환· 서편제 이태원 구속 파문”, 동아닷컴.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9701/nd_420.html)
김미현, 『한국영화 배급사 연구』, 영화진흥위원회, 2003, 91~97쪽.

[작성: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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