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승
Shin Bong-seung / 辛奉承 / 1933  ~  2016
대표분야
시나리오
데뷔작품
두고온 산하 1961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DB 수정요청

필모그래피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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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해변의 정사 (신봉승, 1970)
원작 :
친구야! 친구야! (최인현, 1990)
칠삭동이의 설중매 (권영순, 1988)
이방인 (이원세, 1984)
연화 (임권택, 1974)
은사를 찾아서 (권영순, 1974)
어머님 용서하세요 (최인현, 1973)
신영균씨의 어느날 (, 1972)
오빠 (이상언, 1971)
남의 속도 모르고(남에 속도 모르고) (김기덕, 1969)

주요경력

1940년 강릉국민학교 입학
1947년 강릉농업중학교 입학
1952년 강릉사범학교 2학년 편입
1953년 강릉사범학교 졸업. 옥계국민학교 부임
1954년 강릉국민학교로 전근. 성덕국민학교, 강릉사범부속국민학교 등 근무
1957년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입학. 문예지 『현대문학』에 청마 유치환의 추천으로 시 「이슬」 발표
1959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편입
1961년 경희대학교 졸업. 시나리오 「두고온 산하」로 국방부 시나리오 현상모집 당선. 문학평론 「현대시의 생성과 이해」가 『현대문학』에 발표. 강릉방송국 전속작가
1962년 <두고온 산하> 영화화. 중앙국립극장 기획과 근무
1963년 문화공보부 영화과로 전근. 한양영화사 작가실장으로 근무
1965년 한양대학교 출강
1967년 동국대학교 출강
1968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입학, 자퇴
1970년 <해변의 정사>로 감독 데뷔
1972년 영화인협회 시나리오위원회 위원장. 경희대학교 출강
1978년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1979년 한국방송작가협회 부이사장
1980년 한국방송작가협회 부이사장, 대종상심사위원회 위원장,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재입학
1982년 경희대학교 문화상 학술부문 수상
1983년 집필실 "한국역사문학연구소" 설립.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5년 장영실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 제5회 한국펜문학상 (머나먼 해협)
1986년 제35회 서울시문화상 (조선왕조 오백년)
1987년 임경업장군기념사업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1988년 제20회 대한민국 문회예술상, 일본 극영화 <왕조
1989년 한일합작 영화 <망향> 나카지마 사타오(中島貞夫)와 공동 집필

1990년 제11회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장
1992년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
1994년 공연윤리위원회 부위원장. 제5회 위암 장지연상
199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7년 제2회 민족문학상, 제42회 대한민국예술원상
1998년 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관동대학교 대학원 객원교수로 초빙. 보관문화훈장 추서
1999년 99 동계아시안게임 문화예술행사 총감독. 동해대학교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초빙. 서울시문화상 영상부문 심사
2001년 추계예술대학 영상문예대학원 대우교수 초빙. 희곡 <파몽기> 국립극단에서 공연
2001년 한국영상자료원 이사
2001년 한국역사문학연구소 대표
2003년 전국문화원연합회 이사. 효령대상 문화예술부문
2004년 강릉시립중앙도서관에 '초당 신봉승 예술기념관' 개관
2004년~ 대한민국예술원 연극영화무용분과 회장
2005년 제3기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
2008년 추계예술대학교 석좌교수

기타정보

기타이름
초당(草堂), 취영(璻影)
영화계 입문배경
1975년 청마 유치환선생의 <현대문학>에 '이슬'이라는 시가 발표되어 문단에 데뷔했는데 시와 시나리오 사이에는 이미지가 있다는 유사점을 느끼고 영상예술과 멀티미디어 시대가 장차 올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시나리오를 쓸 것을 결심 신춘문예등에 여러번 투고하였으나 당선되지 못하였고 결국 국방부에서 현상모집한데에 <두고온 산하>(1961)가 당선되어 당시 300만환의상금을 탔고 영화계에 데뷔했다.
주요 영화작품
두고온 산하(1962,이강천감독)
청춘교실(1963,김수용감독)
월급봉투(1964,김수용감독)
적자인생(1965,김수용감독)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김수용감독)
갯마을(1965,김수용감독)
하숙생(1966,정진우감독)
산불(1967,김수용감독)
고향(1967,강대진감독)
백야(1968,최인현감독)
창공에 산다(1968,이만희감독)
이상의 날개(1968,최인현감독)
독짓는 늙은이(1969,최하원감독)
봄봄(1969,김수용감독)
추격자(1969,김수용감독)
천사여 옷을 입어라(1970,김 기감독)
기러기 남매(1971,최인현감독)
항구의 등불(1972,이상언감독)
수선화(1973,최 훈감독)
꽃상여(1974,김기덕감독)
홍길동(1976,최인현감독)
너의 창에 불이 꺼지고(1978,변장호감독)
을화(1979,변장호감독)
불새의 늪(1983,고응호감독)
칠삭동이의 설중매(1988,김수용감독)
마유미(1990,신상옥감독)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1992,이은수감독)
주요기타작품
1964년 MBC 라디오 「월급봉투」, TBC 「동서생활」, 「위자료」, 「차가운 양지」
1965년 MBC 라디오 「별들의 연가」, 「심술각하」, 「회전의자」, TBC 「석양을 향한 애정」, 한양대 출강
1966년 TBC 「사랑」, 「잔소리 마라」
1967년 MBC 라디오「불청객」,「타인들」, KBS 라디오 「대전차지뢰」, DBS 라디오 「사나운 말괄량이」, TBC 「독짓는 늙은이」, 「무녀도」, 「장씨일가」, 「이성계」, 동국대 출강
1968년 MBC 라디오 「지금 그 사람」
1969년 MBC 라디오 「이대로 간다 해도」
1971년 TBC 「상감마마 미워요」, 「양반전」
1972년 TBC 「사모곡」, 「아리랑 고개」, 「홍도야 울지마라」, 「육혈포 강도」, 「검사와 여선생」,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
1973년 TBC 「연화」
1974년 TBC 「삼국지」,「윤지경」, 「인목대비」
1975년 TBC 「푸른 날개」, 「옥피리」, 「임금님의 첫사랑」
1976년 TBC 라디오 「이성계」
1977년 TBC 「허부인전」, KBS 「왕도」, MBC 「꽃사슴」, 「타국」, 「옥녀」
1978년 MBC 「정부인」, 「연지」, 「꺼삐딴 리」,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위원
1979년 MBC [대한문」,「안국동 아씨」, 「하얀 민들레」, 한국방송작가협회 부이사장
1980년 MBC「간양록」, 「고독한 영웅」, 「고운 님 여의옵고」, 「교동마님」, 「노병」, 「석유」, 「승자와 패자」, 「이심의 비련기」, 「옛날 옛적에」, KBS 「유미의 일기」, 한일합작드라마 「여인들의 타국」 일본 N·TV에서만 방영
1983년 MBC 「조선왕조 500년」 제 1화 '추동궁마마', 제 2화 '뿌리깊은 나무',
1984년 MBC 「조선왕조 500년」 제 3화 '설중매', 「동토의 왕국」
1985년 MBC 「조선왕조 500년」 제4화 '풍란', 제 5화 '임진왜란', 특집극 「영웅시대」
1986년 MBC 「조선왕조 500년」 제6화 '회천문', 제 7화 '남한산성'
1987년 일본 동경방송(TBS)의 「세월이여 왕조여」
1990년 KBS 「왕조의 세월」
1991년 SBS 「유심초」
2001년 희곡 「파몽기」 국립극단에서 공연
2002년 MBC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
애착작품 및 사유
<갯마을>(65):1960년대에 만연한 우리영화의 '청춘물 시대'에서 '문예영화 시대'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 작품이 되었고, 김수용 감독의 연출력, 전조명의 촬영 감각, 신영균, 고은아 주인공의 연기력이 잘 조화된 작품이라 생각한다.이작품이 호평받은 이후,단편각색붐이 일어날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한 작품이며 흑백영화로서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영화속 명소
<갯마을>(65):경상도 동래근처에서 '이천면'의 갯마을에 직접 답사하며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썼고 고현찬 제작자가 그 마을에 가서보고 시나리오 주인공들이 실제로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던 마을이다. 바다에 빠져 죽은 어부들의 죽은영혼을 달래는 장례식의 재현장면를 배우 이민자가 중심이 되어 모인 과부여인들 신세타령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순수 문학과 영화시나리오의 구분이 뚜렸했던 60년대의 사회풍조 속에서 문예성 짙은 시나리오를 많이 썼고 70년대 이후부터는 正史만을 고집한 역사만을일관되게쓰며 정확한 역사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주는 것을 영화예술의 한역할로 생각하여 TV대하드라마를 통한 正史의 대중화, 영화화,현대화에 힘쓰면서 '역사는 지나간 과거만의 기록이 아니라,미래로 이어지는 맥락이라는 일관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저술내역
1966년 시나리오의 기법
1972년 영상적 사고(영화평론집)
1979년 바보상자
1981년 TV드라마, 시나리오 작법
1984년 머나먼 해협(시나리오 선집)
1990년 초당동 소나무 떼(시집)
1992년 한명회(대하소설)
1995년 찬란한 여명(대하소설)
1998년 인수대비(대하소설)
1999년 왕건(대하소설)
2006년 난세의 칼(대하역사소설)
2006년 마음을 비추는 거울(에세이)
2006년 나라를 세웠으면 역사를 고쳐야지(역사에세이)

2008년 조선왕조 500년(대하소설)
2009년 조선도 몰랐던 조선(역사에세이)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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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신봉승은 1957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 데뷔했고, 1961년에는 국방부 정훈국 시나리오 공모에 <두고온 산하>(1962)가 당선되면서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다.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으나 영화사의 시나리오 의뢰가 없자 1961년부터 KBS 강릉방송국의 전속작가로 일했고, 이후 명동 국립극장 기획과의 말단 공무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보부 영화과에서 시나리오와 영화 검열을 하게 되면서 다시 시나리오 공부를 하여, 일본 소설을 각색한 <청춘교실>(1963)의 시나리오를 썼다. 이 영화가 크게 흥행하면서 영화의 제작사인 한양영화사 전속 작가실장이 되었다.
<청춘교실>에 이어 그가 각본을 맡은 <말띠여대생>(1963)까지 연달아 흥행하면서 신봉승은 청춘물 시나리오를 잘 쓰는 인기 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한양영화사를 떠나 프리랜서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1965년에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를 각색했는데, 국제극장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29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이 영화의 흥행으로 신봉승은 일급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는 청춘물뿐만 아니라, 오영수의 「갯마을」, 차범석의 「산불」, 황순원의 「독짓는 늙은이」, 김유정의 「봄봄」등 문예물 각색에서도 성과를 보였다. 신봉승의 대표작은 주로 각색 작품들이지만, 그는 오리지널 시나리오 창작에도 열의를 보였다. 그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인 <여자가 더 좋아>(1965)는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36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영화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TV드라마 작가로도 많은 활동을 했다. 1980년대 9년에 걸쳐 방영된 MBC의 역사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1982~1990)이 그의 TV 드라마 대표작이다.
그는 자작 시나리오인 <해변의 정사>(1970)를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를 했으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이후에는 시나리오 집필에만 전념했다. 최인현 감독의 <친구야 친구야>(1990)에 이르기까지 140여 편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 참고문헌

한국영화사연구소, 『한국영화를 말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2』,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이채, 2006, 94~139쪽.

* 출생지, 본적, 주요경력, 수상내역, 주요작품-KMDB, 한국영화를 말한다, 신봉승 홈페이지(http://www.shinb33.pe.kr/) 참조.
* <청춘교실>은 본인 구술에서 일본소설을 각색했다고 했으나 표절이 횡횡하던 당시 상황 상 이것을 각본으로 할지, 각색으로 할지는 애매한 문제임.
* <갯마을>이 필모에 각본으로 되어 있는데 소설원작을 각색한 것이므로 각색으로 수정필요.
* 『한국영화를 말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2』 112쪽에 신봉승이 <무녀도>를 각색했다고 구술했지만 (KMDB에는 <무녀도>가 누락되어 있음) <무녀도> 광고(동아일보 1972년 5월 12일자 8면)를 찾아보니 <무녀도>(최하원, 1973)의 각색은 이영일, 최하원으로 되어있음. 구술자의 오류인 듯함. 최하원의 필모에는 무녀도의 각색이 빠져있으나 영화의 감독이라 상관없을 듯함. 이영일의 필모에는 <무영도>가 각본으로 되어있음. 이를 각색으로 수정요망.
* 초당(艸堂), 취영(翠影), 한월당(閑月堂) 은 호.

[작성: 김성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33년 5월 23일 강원도 강릉 태생. 강릉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다가 상경.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중앙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7년부터 1961년 사이에 <<현대문학>.지에 시와 문학평론이 각각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장했으나 1961년 국방부 현상모집에 시나리오「두고 온 산하」가 당선된 것을 계기로 영화계에 진출했다. 이 작품은 같은 해 이강천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자유를 갈망하는 한국 청년과 소련 주둔군 사령관의 딸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과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그린 것이다. 이후 그는 한양영화사 작가실장으로 재직하는 한편 시나리오 집필에 전념하였다. 1960년대 청춘영화 붐을 일으키는 한 용인이 된 <청춘교실>(1963)을 비롯하여 <갯마을>(1965)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산불>(1967) <봄봄>(1969) <독짓는 늙은이>(1969) <을화>(1979) 등 주목을 끈 문예영화의 각색, <월급봉투>(1964) <회전의자>(1966) <타인들>(1967) 등 자신이 쓴 라디오 원작의 시나리오 등 모두 1백 20여 편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정동대감>(1965) <홍살문>(1972) <연화>(1973) 등 역사극 각본도 포함된다. 마지막이 된 그의 첫 감독작품은 송병수 원작을 자신의 각색과 남성우, 윤정희, 남궁원 출연으로 필름에 담은 <해변의 정사>(1970)이다. 20년이라는 나이 차 때문에 젊은 아내를 의심해 온 한 교수가 심한 의처증에 빠져 변태 성욕자로 변하면서 겪게 되는 가정의 파탄을 그린 것.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무대 연출가인 청년을 사랑하게 된 아내는 삶의 보람을 느낀 것도 잠시, 이를 눈치 챈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자결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1972) 등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역사문학연구소 대표, 예술원 회원이며 추계예술대학 영상문예대학원 대우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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