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Park Chul-soo / 朴哲洙 / 1948  ~  2013
대표분야
감독, 제작/기획
데뷔작품
골목대장 1978
활동년대
1970, 1980, 1990, 200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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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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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탈출명령 (박철수, )
녹색의자 2013 - 러브 컨셉츄얼리 (박철수, 2013)
생생활활 (박철수, 2013)
베드 (박철수, 2012)
미몽 (박철수, 2011)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 (박철수,김태식, 2011)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 (이장호,이두용,박철수,정지영, 2011)
녹색의자 (박철수, 2003)
봉자 (박철수, 2000)
가족시네마 (박철수, 1998)

주요경력

1970년 인헌무공훈장
1973년 대학 졸업 후 대구에서 교직 교직 종사
상경하여 재벌업체에 근무하다 퇴직
1975년 신필름 입사, 연출부로 영화계 입문
1979년 영화감독 데뷔
1980년 MBC TV 입사 후 드라마 PD
1981년 영화 <니르바나의 종> 연출
1994년 독립영화사 '박철수 필름 영화 아카데미' 설립
1998년 영화 <성철> 연출
1997년 화관문화훈장
1998년 제1회 한일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1999년 박철수 필름 영화 아카데미 교장
2010년 한독미디어대학원대학교(KGIT) 교수
2005년 대구한의대 문화과학대 디지털문화콘텐츠학부 부교수
2005년 제4회 예술발전상
홍콩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상하이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한겨레 영화연출학교 교수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심사위원
일본 교토예술대학교 교수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목원대학교 교수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영화가 있는곳에 내가 있으면 자유가 있을까? 또, 먹고 살 수 있는 방법도 있겠지? 또, 즐거움도 있겠지?'하는 생각들 때문에 1975년 신필름 조연출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주요 영화작품
골목대장(1978,박철수)
밤이면 내리는 비(1979,박철수)
아픈 성숙(1980,박철수)
이런 여자 없나요(1981,박철수)
들개(1982,박철수)
땜장이 아내(1983,박철수)
어미(1985,박철수)
안개기둥(1986,박철수)
박철수의 헬로 임꺽정(1987,박철수)
접시꽃 당신(1988,박철수)
오늘여자(1989,박철수)
오세암(1990,박철수)
물위를 걷는 여자(1990,박철수)
서울에비타(1991,박철수)
테레사의 연인(1991,박철수)
눈꽃(1992,박철수)
우리 시대의 사랑(1994,박철수)
301.302(1995,박철수)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1996, 강우석,박철수 등)
학생부군신위(1996,박철수)
산부인과(1997,박철수)
가족시네마(1998,박철수)
봉자(2000,박철수)
주요기타작품
■ 드라마
1985년 MBC베스트셀러 극장 <이혼파티, 애정의 꽃> 등
1986년 MBC <생인손>, 베스트셀러 극장- <도깨비 꿈>, <또 한번 그 봄날>, <청춘의 한낮> 등
1988년 MBC <만남>
1993년 MBC <여인의 굴레, 여자의 남자>
애착작품 및 사유
굳이 작품을 들라면 "오세암", "오늘여자"정도...? 그러나, 자기가 기(旣)만든 작품에 집착하는 감독이 있다면 바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연출자 의식의 배설'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은 비평가와 관객들에게 그 나머지를 맡기고자 한다. (작품에 애착을 갖는것)
영화속 명소
"방송드라마"와"성철스님", "임꺽정등의 촬영시에 가본 청주 "화양계곡", 동해의 "두타산계곡"과 암자, 포항의 "보경계곡", 폭포 그리고 변산반도의 "내소사"근처가 기억에 남는다. 자신은 산과 물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계곡을 즐겨찾는 편이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사실 처음 데뷔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른채(영화를 체계있게 공부해 본 바가 없는 상태에서) 입문했고, 방송연출을 하면서 비로소 두려움을 가졌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 사는 모습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비교적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고 있다.
저술내역
1987년 「헬로-박철수감독 작품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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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48년에 태어났다. 성균관 대학교 경영학과를 마치고, 교직생활과 대기업 등 직장 생활을 하다가 1975년 우연히 신상옥 감독과 인연이 닿아 회사를 그만두고, 신필름의 연출부로 들어가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다. 감독 데뷔작은 1978년 <골목대장>이며, 1980년부터 MBC에 입사해 PD로 일하며 <암행어사>와 ‘베스트셀러 극장’의 많은 에피소드들을 연출하는 한편, 틈틈이 영화 연출도 병행한다. 1988년 MBC를 퇴사하고, 감독으로 돌아와 <접시꽃 당신>(1988), <물위를 걷는 여자>(1990) 등의 히트작을 내놓는다. 그러나 1990년대 접어들며 대기업이 영화 제작, 배급에 뛰어들고, 신인 감독들이 대거 진출하며 스스로 '낡은 감각'이 되어버릴까 두려워 1992~1993년 뉴욕으로 건너가 많은 독립 영화인들과 만나고, 그들의 영화를 보고 돌아와 박철수 필름을 설립했다고 한다(시사저널). 그렇게 제작, 감독한 영화들이 <301, 302>(1995), <학생부군신위>(1996), <산부인과>(1997) 등이었으며, 이 영화들은 국내는 물론이고, 국내 이상으로 해외 영화제와 영화팬들의 관심을 모은다. 2000년대 들어와 <봉자>(2000), <녹색의자>(2003)를 연출하고서 한동안 후진 양성을 하며 휴지기를 가진 후, 2011년 <익스트림>, <미몽, 서울> 두 편의 영화를 내놓는다(티브이데일리).

* 참고문헌
티브이데일리 2011년 7월 2일
[영화]<산부인과> 박철수 감독론, 『시사저널』 309호(1997년 6월 19일)

[작성: 전민성]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48년 대구 출생. 성균관대학교 경상대 졸업. 어려운 집안환경이었으나 대학교까지 장학금을 받고 다닌 모범생이었던 박철수는 성균관대 경상대학 졸업 후 고향인 대구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교육의 한계를 느끼고 서울로 상경, 대기업 회사원으로 일하다 우연히 신상옥 감독과의 만남이 인연이 되어 1975년 신필름 연출부에 들어가 본격적인 감독수업을 받게 된다. 이경태, 설태호, 신상옥의 조감독을 거쳐 1979년 <골목대장>으로 영화감독이 되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2년 MBC PD로 <세화의 성>, <말하는 눈>, <개>, <고깔>, <무서운 아이들>, <혜미의 서울> 등의 베스트셀러 극장과 <암행어사>시리즈, 텔레비전 마지막 연출작인 8.15 특집극 <생인손> 등 인기 TV드라마를 기획, 연출하며 대사를 절제하고 화면위주의 영상미를 추구하는 연출력이 크게 각광받았다. 매체를 가리지 않고 연출가로 활동하기를 희망하던 그는 방송국 PD로 일하면서 약 3개월의 휴가기간을 통해 연출한 <어미>(1985)로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방송국을 그만둔 후 황기성 사단으로 다시 영화계에 복귀하여 희곡작가이며 연출가인 김상수 각본의 <안개기둥>으로 본격적인 영화감독으로 첫 작품을 완성한 후 일년에 한편씩 영화를 내놓는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했다.
인기 드라마 작가 김수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어미>는 인신매매와 성폭행을 당한 어린 딸의 어머니가 세상을 향해 분노에 찬 복수를 감행한다는 내용으로 감각적인 화면과 충격적인 성매매의 사회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1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윤여정이 냉철한 어머니를 맡아 좋은 연기를 보였고,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드라마와 빠른 전개, 디테일한 심리묘사까지 정교하고 세련된 연출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안개기둥>(1986)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여성의 자아 찾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현대여성에게 결혼이 가지는 의미를 되짚어 보고 남성중심의 가정, 사회 속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를 세련된 영상을 통해 풀어냈다.
<어미>, <안개기둥>으로 연속 대종상 작품상을 거머쥔 박철수는 남편의 외도로 상처를 받은 여자가 결국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오늘 여자>(1985), 80년대 군부통치시절의 암울한 사회를 배경으로 성악가의 고난에 찬 삶을 그린 <서울 에비타>(1988), 고아남매인 철부지 소년 길손과 맹인 소녀 감이의 여정을 따라 추악하고 타락한 세계와 희망과 구원의 세계를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는 종교영화로 불교설화에서 전래된 암자의 이름을 뜻하는 <오세암>(1988), 신달자의 베스트셀러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신분이 다른 두 여자의 우정과 사랑, 성공의 양면을 보여준 <물위를 걷는 여자>(1989), 실화를 영화로 옮긴 진실한 사랑의 신화 <테레사의 연인>(1991) 등을 발표했다.
상당수의 작품에 ’‥여자‘라는 제목이 붙은 것으로 짐작되듯이 그의 영화세계는 여성의 사랑과 삶에 유달리 집착했다.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연출하며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페미니즘 영화는 결코 아니며 남성감독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성‘이라는 점에서 적잖은 한계와 모순이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301, 302>(1994) 이후부터 보다 진지하고 깊어진 여성에 대한 관찰과 사색은 여성관객의 설득과 공감을 이끌어낼 정도로 한층 성숙한 시각을 보인다.
데뷔 이후 5, 6년 동안 십 여 편의 작품을 연달아 발표하는 등 저예산으로 단기간에 영화를 찍어내는 솜씨는 그의 장기이기도 했지만 영화사에 소속되어 작품 활동을 하던 시절 공급을 맞추기에 급급한 현실 때문이기도 했다. 다작에 지친 그는 잠시 미국에 들렸다가 그곳에서 자유로운 독립영화제작의 분위기에 매료되어 한국으로 돌아와 1994년 독립영화사를 차린다. 첫 작품은 <301.302>는 음식과 성을 소재로 한 독특한 톤의 영화로 박철수 감독을 작가주의 반열에 올라서게 했다. 황신혜와 방은희 두 여배우가 주연을 맡아서 어렸을 적 성폭력의 기억 때문에 음식을 먹지 못하는 여인과 남편의 무관심과 일상의 무료함에 지쳐 오로지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에 기쁨과 의미를 갖는 여인을 연기했다.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의 폐쇄성과 비밀스런 인물들로 인한 기이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있으며 일관된 이야기 중심에서 벗어난 시청각적 이미지의 효과적인 사용, 붉은 톤의 조명과 독특한 앵글이 돋보인 수작이다. 이후 박철수는 저예산 독립영화스타일을 계속 유지시키며 <학생부군신위>(1996), <산부인과> (1997), <가족시네마>(1998)등을 연달아 발표했다.
한국의 장례문화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학생부군신위>에서는 들고 찍기 방식으로 단 10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는 사실이 화제를 불렀으며,그 자신이 영화감독 큰 아들 역할을 맡아 직접 연기를 하기도 했다. 어느 시골 마을 박노인(최성)이 세상을 뜨자 아들 영화감독 찬우(박철수), 독실한 기독교도 찬세와 부모 속만 썩인 딸 미선(오정해)이 내려온다. 한적했던 마을은 여러 사람들로 북적이고 고인의 명복을 빌기보다는 저마다 자신의 잇속을 채우기에 바빠지면서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다. 5일장으로 치러진 장례절차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상세히 기록하며 현장의 생생함을 고스란히 영화에 담아내었다. 전통적인 소재를 통해 현대 한국인이 잊고 있는 가족의 의미, 공동체적인 질서를 다시 생각해봄으로써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게 하는 이 작품으로 그는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예술공헌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리며 명실공히 작가로서 인정받는다. 특정한 주인공을 내세우는 대신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가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 가는 형식은 다음 작품 <산부인과>에서도 반복된다. 모두들 그곳에 가기를 꺼리지만 반드시 필요한 공간, 산부인과에서 근무하는 두 명의 여의사와 간호사, 병원을 찾아 온 각기 다른 환자들 사이를 역시 헨드헬드로 빠르게 이동하며 박철수 특유의 거침없는 스타일을 선보인다. 쏟아지는 대사와 툭 툭 튀는 거친 장면전환은 할리우드 영화처럼 편안한 관람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투박함이 오히려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돌아보고자 하는 그의 주제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색다른 영화보기의 재미를 선사한다. 산부인과라는 흔치 않는 소재의 선택과 극중 실제 분만장면이 삽입되어 찬반양론의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는 등 숱한 화제를 뿌렸다.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가족 시네마>는 일본에서 일본어로 찍은 작품.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교묘히 허물어 가는 듯한 구조와 현대 가족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시각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늘 여성의 관계, 여성의 문제에 큰 관심이 있었던 그는 최근작 <봉자>(2000)에서 십대 소녀와 중년의 노처녀 사이의 묘한 관계를 그린 또 하나의 여성영화를 발표한다. 이 영화는 그의 첫 번째 디지털 영화이지만 형식적 스타일을 오히려 고정된 화면을 유지하며 디지털 영화의 장점인 유동성을 배제하고 있으며 느린 리듬과 초현실적인 나른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지속하고 있다. 빨리 찍기, 저예산, 독립제작, 여성에 관한 관심, 다양한 형식적 실험과 영상에 대한 집착 등 꾸준히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으며 작품 활동을 하는 동시에 대전영상원을 대전에 설립해서 자신의 작품은 물론 신인 감독을 위한 제작과 전문적인 영상교육, 지원을 통해 젊은 인재들을 키우겠다는 열의를 보여주고 있다. 한겨례 영화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2004년 실설되는 목원대학교 영화학부 초빙교수로 내정되어 있다. 저서 '박철수 감독 연출노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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