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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이해룡
Lee Hae-ryong / 李海龍 / 1936 ~
본명
이정웅 (Lee Joung-woong)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논개 1956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DB 수정요청
소장자료
기본정보
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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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D(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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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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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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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노는계집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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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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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제 40회 황금촬영상영화제(구 황금촬영상 시상식)(2021)
:
연기 공로상(
)
주요경력
1997 창제 홍콩쇼부라더스사(1967-72) 5편 출연(철낭자, 13인의 무사등)
영화배우협회 회원(1957)
이사(1968),감사(1972),상임이사(1988)
현재 영화배우협회 부회장
영화배우협회 복지부 회장.
2008년 영화배우 협회 상임이사
2009년 영화배우협회 부회장, 영화배우협회 내 복지회 회장
신우회 부이사장, 참전 예술인 협회 부이사장
영화인 원로회의 수석부회장
펼쳐보기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50년대 명동은 유명인사가 많이 모였었다. 명동의 한 다방에는 유명 정치인 조병옥선생님을 중심으로 많은 인사가 모여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김두한 선생님을 중심으로 모였다. 또 한편에는 많은 연예인, 연주인, 시인 등의 예술인들이 전부 명동다방에 모여서 창작을 논의 하던 시절이었다. 저의 원래 희망은 마도로스였으나, 고등학교 졸업후 명동이 좋아서 매일 명동에 들르다 시피하였다. 56년도 당시 전 영화인들이 명동에 운집했을 때 그 유명한 은하수다방(현재 증권빌딩앞 건물)에서 윤봉춘감독님(한국영화계의 나운규선생님과 쌍벽을 이루는 유명한 항일독립영화인)에게 픽업되어 입문하게 되었다. 윤봉춘감독님의 작품 '논개' '유관순' '이름없는 별들' 3편(당시 학생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주요 영화작품
논개(1956,윤봉춘감독)
유관순(1959,윤봉춘감독)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이만희감독)
검은머리(1964,이만희감독)
7인의 여포로(1965,이만희감독)
차라리 남이라면(1969,정진우감독)
푸른침실(1970,이형표감독)
종로부르스(1976,김효천감독)
부초(1978,이한옥감독)
금강혈인(1981,김진태감독)
겨울로 가는 마차(1981,정소영감독)
종로부르스(1982,김효천감독)
장군의 아들(1990,임권택감독)
투캅스(1993,강우석감독)
태백산맥(1994,임권택감독)
축제(1995,임권택감독)
미끼(1995,박태우감독)
주요기타작품
■ 주요작품(TV)
무풍지대(1987)
용의 눈물(1997)
애착작품 및 사유
'7인의 여포로'(65년도 이만희 감독)- 당시의 반공법에 저촉을 받아서 검열에서 24군데를 커트당하였다. 검열전에 기술시사회에서 본 작품하고 검열후(커트후)의 작품을 비교할때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변하였다. 당시에 이 작품을 감독한 이만희 감독님은 남북간의 민족을 호소한 것이고 남북의 통일을 갈망했던 작품이다.
하고싶은 말
연기생활을 하면서 선배님들에게 받은 교훈 '인간이 먼저 되라'하는 말씀을 명심하고 지금까지 살아 왔다. 영화배우협회 회원들 중에는 스타도 많이 있으나, 생활이 다소 어려운 회원들도 있어서 그들을 위해 병원비 문제와 장례등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배우협회뿐 아니고 영화인 전체에서 의전위원장을 수차례 역임하였고 앞으로도 불쌍한 영화인을 위해서 남은 여생을 바치려고 한다. 그런 취지로 현재 복지부회장을 맡고 있다.
연기생활에 영향- 나는 현재까지 40여년을 후회없는 연기생활을 해왔다. 비록 주연은 아니었지만 배우로서 화려한 영화계 맛도 봤고, 또한 영화배우로서 신상옥감독님에 의해서 홍콩에 배우수출에 해당되서 홍콩 쇼부라더스에서 3년간 최고의 영화배우대우도 받아 봤고, 지난 젊은 날 화려한 영화배우속에서 살아왔다. 지금은 후회없이 남은 여생을 힘있는 데까지 영화 혹은 TV에서 인생을 마무리할까 하는 생각이다.
연기자로서 보람- 전 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속에서 천시받지 않고 대우를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아왔다.
영화속 명소
세계적인 명산인 설악산에서 촬영을 많이 하였다. '쥬리아와 도꾸가와 이에야스'(73년 이성구 감독)에서 일본 고오즈섬은 태평양에 가장 가까운 섬이고, 자연을 그대로 보존한 장소이며 지금도 가끔 그섬에 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1000여편 출연중 주로 흔히 이야기하는 갱영화(약400편) 군사영화(약100편)에 출연하였고 현재도 갱영화의 보스역으로 출연한다. 대표작으로서 '투캅스' '무풍지대' '장군의 아들'이 있다.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배역을 말하자면, 외국배우 마론 브란도를 가장 좋아하고 여건이 되면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젊은 사자들'에서 마론 브란도배역과 같은 그런 역을 하고 싶고, '황혼'이라는 작품에서처럼 노년층에 있는 남자와 젊은 여인과의 사랑을 그린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난 이제 나이가 노년기에 와 있으니까 기회가 주어지면 감독을 하고 싶다. 감독을 한다면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당시의 비참성과 남북간의 비극을 그리고 싶다.
자기소개 및 취미
나의 취미는 여행이다. 나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유창하게 통역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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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경(영화사연구소)
2015-11-02
한국영화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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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 월간영화 1984년 8월호
발행일
1984-07-30
[영화전단] 잊을 수 없는 연인(이만희, 1966) 검열서류
발행일
1966-07-20
[영화전단] 사기왕 미스터 허(이만희, 1966) 검열서류
발행일
1966-12-13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학업에 흥미를 잃고, 마도로스의 꿈을 안고 떠난 부산행 여정에서 김명제 촬영감독을 만났고, 그로부터 윤봉춘 감독을 소개받아 <처녀별>(1956)의 제작부로 영화에 입문한다. 같은 해 <논개>로 배우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5.16 이후 해병대에 입대하여 해병 연예대 소속으로 복무한다. 군 복무 중 이만희 감독의 <살아있는 그날까지>(1962),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등의 해병대 영화에 출연하였다. 군 제대 후, <검은 머리>(1964), <마의 계단>(1964), <만추>(1966), <얼룩무늬의 사나이>(1967) 등 이만희 감독의 영화에서 활동하다가, 1960년대 후반에는 신필름의 전속배우가 된다. 당시 신필름이 관심을 기울였던 한국-홍콩 합작 기획, 제작 덕분에, 1969년부터 1971년까지 홍콩으로 건너가 쇼브라더스의 <십삼인의 무사>(1970), <철낭자>(1971) 등 합작영화에도 출연하였다. 귀국 후에는 한국과 대만을 오가며 <5천리 대도망>(1974), <오령대협>(1978) 등 대만과의 합작 영화에도 출연하게 되었으며, 이는 197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다. 1980년대 접어들어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해온 이두용,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서 이전과는 다른 인물들을 연기했으며, 2000년대 영화배우협회 부회장인 동시에, 영화배우협회 내의 복지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원로 배우들의 복지와 처우 개선에 힘쓰고 있다. (한국영화사연구소)
* 참고문헌
한국영화사연구소, 『2009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 이해룡』, 한국영상자료원, 2009년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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