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식
Park Nou-sik / 朴魯植 / 1930  ~  1995
대표분야
배우, 감독
데뷔작품
격퇴 1956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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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돌아온 용팔이 (박노식, 1983)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 (박노식, 1976)
방범대원 용팔이 (박노식, 1976)
폭력은 없다 (박노식, 1975)
광녀 (박노식, 1975)
일생 (박노식, 1974)
하얀 수염 (박노식, 1974)
왜? (박노식, 1974)
집행유예 (박노식, 1973)
육군사관학교 (박노식, 1973)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체육학과를 나와 아이들을 가르키다가 유랑극단에서 주최한 노래자랑에 참여하여 1등을 한 동기로 그 유랑극단을 따라 공연에 나오게 되었다. 평소 워낙 끼가 많아서 권투, 노래, 춤 등 다양한 것을 보여주다 눈에 띄어 영화 "격퇴"에 검사 역할로 데뷔하게 되었다.
주요 영화작품
나는 너를 싫어한다(1957,권영순)
낙엽(1958,박구)
과거를 묻지 마세요(1959,안현철)
5인의 해병(1961,김기덕)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임권택)
정복자(1963,권영순)
열두냥짜리 인생(1963,이만희)
나갈 길이 없다(1964,이한욱)
마도로스 박(1964,신경균)
벙어리 삼룡이(1964,신상옥)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임원식)
민며느리(1965,최은희)
탈출명령(1966,강범구)
소복(1967,전조명)
다정불심(1967,신상옥)
일월(1967,이성구)
고발(1967,김수용)
메밀꽃 필 무렵(1967,이성구)
춘향(1968,김수용)
제삼지대(1968,최무룡)
카인의 후예(1968,유현목)
팔도강산(속)(1968,양종해)
감자(1968,김승옥)
내시(1968,신상옥)
필살의 검(1969,김시현)
결사대작전(1969,고영남)
돌아온 팔도사나이(1969,편거영)
의리의 사나이 돌쇠(1970,이남섭)
일이사 군부대(1970,김기덕)
태양은 늙지 않는다(1970,고영남)
전쟁과 인간(1971,신상옥)
소장수(1972,김효천)
며느리(1972,이성구)
잡초(1973,임권택)
하얀수염(1974,박노식)
애착작품 및 사유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카인의 후예", "소장수"...... 특히 "벙어리 삼룡이"는 대내외적으로 연기를 인정받아 애착이 많이 간다
하고싶은 말
"배우가 분칠을 해야 배우다" 그만큼 연기에 충실하라.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마로도스 박, 용팔이등 따라붙은 이름이 영화편수 만큼이나 많았다. 용팔이 시리즈는 당시 유행이 되어 본인이 직접 몇 편을 찍을 정도로 유명했었다. 아마도 사람들 뇌리에 있는 건 '박노식'하면 의리의 사나이가 떠오르지 않을까..
저술내역
1995년 자서전『뻥가오리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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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60~70년대를 대표하는 액션배우 중 한명이다. 1930년 전남 순천시에서 출생했다. 순천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순천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56년 이강천 감독의 <격퇴>로 영화배우로 데뷔한 뒤, 김묵 감독의 <현상붙은 사나이>(1961), 이만희의 <다이얼 112를 돌려라>(1962), 이강원의 <도망자>(1965), 신경균의 <0번 상해돌파>(1967), 정창화의 <나그네 검객 황금 108관>(1968) 등에서 특유의 카리스마 있는 마스크와 액션 연기로 독보적인 인상을 남겼다. 특히 그는 <남대문 출신 용팔이>, <역전출신 용팔이>(1970), <신입사원 용팔이>, <위기일발 용팔이>(1971), <방범대원 용팔이>(1976), <돌아온 용팔이>(1983) 등 일련의 “용팔이” 시리즈로 개성 있는 캐릭터를 구축했다. ‘용팔이’로 분한 박노식의 연기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 독특한 표정연기, 의리의 주먹”이라는 삼박자로 구성된 것이기도 했다(동아일보). 액션 뿐만 아니라 사극, 멜로,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대중적인 입지를 공고하게 다지며 대종상과 청룡상의 남우주연상 및 인기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1971년 <인간 사표를 써라>로 감독 데뷔하였으며, <쟉크를 채워라>(1972), <집행유예>(1973),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1976) <방범대원 용팔이>(1976), <돌아온 용팔이>(1983) 등 열네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의 연출작은 활극적 요소롤 십분 발휘한 것이었고, 배우로서 자신의 대표작인 “용팔이” 시리즈를 직접 연출하기도 하는 등 감독으로서 강한 의욕과 개성을 나타냈다. 1980년대에 이민을 갔던 그는 귀국한 이후 배우로 활동하는 아들 박준규와 영화사를 준비하면서 영화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드러냈다(경향신문a). 1995년 지병인 당뇨병으로 6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경향신문b). 자신의 연기 인생을 회고한『뻥가오리 백작』이라는 자서전을 남겼다(경향신문c).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91년 9월 28일자 19면
경향신문b 1995년 4월 4일자 23면
경향신문c 1995년 5월 24일자 12면
동아일보 1995년 4월 4일자 29면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작성: 김한상]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30년 2월 4일 전남 순천시 출생으로 순천사범학교를 나왔다. 1956년 이강천 감독의 <격퇴>에 출연하여 배우가 된 후 <느티나무 있는 언덕>(1958),<과거를 묻지 마세요>(1959,안현철),<피 묻은 대결>(1960),<다이얼 112를 돌려라>(1962),<현금은 내 것이다>(1965),<카인의 후예>(1967),<메밀꽃 필 무렵>(1968),<소장수>(1972)등 900여편에 출연했으며 액션 스타의 자리를 굳혔다.1970년대에 들어가면서 메가폰도 잡아 <인간 사표를 써라> <나>(1971),<집행유예>(1973),<하얀 수염> <왜?> <일생>(1974), <폭력은 없다> <광녀> <방범대원 용팔이>(1975), <악인이여,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1976),<도라온 용팔이>(1983)등 14편을 만들어 내었다. 이 가운데 <폭력은 없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연을 겸했다. 감독 데뷔작인 <인간 사표를 써라>는 누명을 쓴 친구의 복수극을 그렸고 <나>는 애인을 뺏기고 청각까지 잃은 사나이가 오랫동안 벼르던 복수를 하게 되지만 그 역시 총에 맞아 쓰러지는 비극적 결말을 담았으며, <집행유예>는 능력을 인정받아 지방 신문사의 광고부원으로 채용된 재일동포가 신분이 노출돼 해고된 후 은행 강도가 됐으나 일본사회의 비인간적 편견이 이런 행위를 만들어 냈다는 변론이 받아들여져 석방,새출발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하얀 수염>은 평생을 오직 자식들을 위해 살다가 양로원에 들어온 노인이 잘못을 뉘우친 자식들에 의해 편안한 여생을 누리게 된다는 내용이고, <왜?>는 얼굴도 모른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갔다가 조총련의 마수에 걸린 처녀가 빠져나오기까지의 사연을 엮었으며, <광녀>는 탈옥한 은행강도들이 숨겨둔 거액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담았다. <악인이여,지옥행 열차를 타라>는 일제말기 일본군 패잔병들이 사금을 찾아 광산촌에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살인과 복수를 그렸고, <돌아온 용팔이>는 미국에 살던 용팔이가 할머니의 막대한 유산상속 유언이 든 테이프와 국보급 보물을 갖고 귀국하면서 빚어지는 해프닝과 반전의 결말을 담았다. 그의 감독 작품 역시 연기와 마찬가지로 역동적인 액션에 무게를 두었으며 작품성보다는 흥행성을 중시하였다. 그의 아들 준규도 배우로서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자주 등장하지만 동생 노승 또한 1960년대 <갈매기 우는 항구>(1964)등에 출연한 바 있는 배우였다. 1995년 4월3일 지병으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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