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정
Woo Yeon-jeong / 禹演征 / 1949  ~ 
본명
박희자 (Park Hui-ja)
대표분야
배우, 시나리오
데뷔작품
사랑을 빌립시다 1971
활동년대
1970,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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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 (이원세, 1981)
배우 :
[원로영화인 구술인터뷰] 우연정 (, )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 (이원세, 1981)
킹콩의 대역습 (최영철,폴 레더, 1976) 김의 부인
비정지대 (최하원, 1976) 정임
걷지말고 뛰어라 (최인호, 1976) 호텔녀
내일없는 추적 (김시현, 1976)
나는 살아야 한다 (최하원, 1976) 정숙
사랑을 빌려 드립니다 (김영효, 1975) 세화(빠 댄서)
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이원세, 1975) 임충자(남로당원)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대학 시절까지 나에게 있어서 영화란 그저 보고 즐기는 차원이었지 언감생심 내가 스크린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우연히 당시 자신의 작품에 출연할 신인 배우를 찾고 있던 노진석 감독님의 눈에 띄어 명동에서 로드 캐스팅되었고, 그 후 내 꿈은 발레리나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바뀌게 되었다.
주요 영화작품
타잔 한국에 오다(1971,김화랑감독)
몸전체로 사랑을(1973,홍파감독)
집행유예(1973,박노식감독)
빵간에 산다(1974,이원세감독)
행운(1974,주동진감독)
나는 살아야 한다(1976,최하원감독)
나는 살아야 한다(1976,최하원감독)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1981,이원세감독) 외 다수
애착작품 및 사유
<행운>- 런닝 타임이 1시간 40분인 이 작품에서 나는 거의 1시간 30분가량이나 출연하여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집행유예>- 이 작품은 항상 나를 아껴주셨던 존경하는 박노식 선생님이 제작한 작품으로, 당시 을지 극장을 가득 메운 만원 관객의 성원에 힘입어 처음으로 보너스를 탔던 기억이 난다.
하고싶은 말
<그대앞에 다시 서리라> 이 후 작품활동이 없으신데요-사실 그대앞에 다시 서리라 이전에 나는 사형선고를 받아놓고 있었다. 다리로 전이된 암이 이미 말기로 치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임신중이었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내 속에 자라고 있는 생명을 저버리고 그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의 수술을 맡고 있었던 주치의에게 사정하여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나의 병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외국인 의사의 허락으로 첫 딸을 낳을 수 있었다. 그후 나는 아이를 보며 삶의 활력을 되찾았고 나의 얘기를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바로 그대앞에 다시 서리라인 것이다. 이 작품은 당시 픽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고도의 사실성에 입각한 작품으로 내 삶의 기록으로 만들어졌다.이 작품 이 후 나는 활동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지금도 마음만은 영원한 배우의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홍콩 배우 성룡과 한.중 합작 영화를 많이 찍음-70년대 당시 골든 하베스트 영화社 로부터 신일룡氏와 함께 캐스팅 제의를 받아 홍콩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거절, 아쉬움이 남음.
영화속 명소
<흑표>- 철원 일대
<들국화는 피었는데>- 강원도 인제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어느 역을 맡건 간에 먼저 염두에 두는 것은 왜 내가 이 역에 캐스팅되었느냐다. 결국, 언제나 나를 믿고 캐스팅한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연기하자는 일종의 사명감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초심(初心)은 촬영기간 내내 나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준다. 또한 형식적인 연기에 그치기보다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지적인 연기를 보여주고자 노력하였다.
자기소개 및 취미
연기의 매력이란 한 사람이 다양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각양각색의 인간군상들을 연기하노라면 이 좁은 하늘아래 이렇게 많은 인생역정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저도 많은 역할을 해 봤지만, 사실 연기를 할 때는 그다지 뼈저리게 인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해진 이 후로 하루 하루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며 그 동안 소홀히 대해 왔던 주변의 일상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요즈음 건강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며 사업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도 건강하시고 하루 하루 의미있는 날이 되셨으면 합니다. 덧붙여 연기자 우연정을 항상 기억해주시고 한국 영화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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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여성영화인사전
우연정 禹演征

-배우. 1949년 4월 17일 전북 전주 출생. 본명 박희자(朴希子). 숙명여대 보건체육과 졸업. 연세대 경영대학원 석사.

숙명여대 재학 중이던 71년, 노진섭 감독에 의해 우련히 캐스팅되어 <사랑을 빌립시다>에 출연하면서 연기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70년대 전반기의 대표적인 여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하였다. ‘섹스 심볼’ ‘제2의 김혜정’ 등 당시 그를 수식하던 말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강한 성적 매력이 그의 이미지를 규정하였다. 그가 출연하는 광고 사진들의 상당수는 수영복 차림이었으며 영화의 캐릭터에서도 성적인 매력은 중요하게 부각되곤 했다. MBC TV의 특채 탤런트로 <수사반장> 등의 단막극에도 출연하였는데 주로 ‘매력적인 범죄자’나 ‘비련의 여간첩’의 역을 맡았다. 영화의 경우에도 주로 반공영화에서 여간첩으로 등장하곤 하였다. 70년대 말까지 9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지속적으로 활동하였으나 80년 골수암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으며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 세 명의 자녀를 출산하였으며 자전적인 영화인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81, 이원세)에 출연, 대종상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인천에 거주하면서 개인사업에 종사하고 있다.(이호걸)

출연
-71 대감신랑, 사랑을 빌립시다, 춘색한녀, 타잔 한국에 오다. -72 인왕산 호랑이, 일본해적, 쟉크를 채워라, 제삼의 추적. -73 나와 나, 몸 전체로 사랑을, 배따라기, 별난 장군과 팔도부하, 석양에 떠나라, 용구와 용팔이, 젊은 교차로, 집행유예, 하숙인생, 황사진. -74 눈으로 묻고 얼굴로 대답하고 마음 속 가득히 사랑은 영원히, 들국화는 피었는데, 용호대련, 위험한 영웅, 죽엄의 다리, 토지, 행운, 환녀, 흑나비, 흑표. -75 너 또한 별이 되어, 빵간에 산다, 사랑을 빌려 드립니다, 49제, 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76 걷지 말고 뛰어라, 나는 살아야 한다, 내일없는 추격, 비정지대, 사랑을 빌려드립니다, 킹콩의 대역습. -81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
원작
-81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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