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계식
Kang Kye-shik / 姜桂植 / 1917  ~  2000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청춘행로 1946
활동년대
1940, 1950, 1960, 1970, 198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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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말미잘 (엄마와별과말미잘) (유현목, 1994) 노인
밀월여행 (김응천, 1993)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 (신승수, 1992) 도예가
사의 찬미 (김호선, 1991) 우진부
칠삭동이의 설중매 (권영순, 1988)
연산일기 (임권택, 1987)
피조개 뭍에 오르다 (양병간, 1985)
대학별곡 (장성환, 1985)
위대한 유산 (이장호,신승수, 1984)
사슴사냥 (노세한, 1984)

주요경력

1942년 극단 현대극장(現代劇場) 단원
1946년 청춘행로(장황연감독)출연으로 영화계 데뷔
1947년 극단 청포도(靑葡萄) 단원
1948년 극단 민예(民藝) 단원
1952년 극단 신협(新劇協議會) 단원
1962년 국립극단 전속단원 등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본인은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를 하기 위해 연극을 시작했는데 영화를 하고나서도 연극은 계속 해왔다. 극단 <신협>에 오래 있었다.해방 뒤에 영화가 많이 쏟아졌는데 16㎜나 청소년물이 많았다. 그때 영화 제의를 받았다. 1946년부터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주요 영화작품
청춘행로(1949,장황연감독)
산유화(1957,이용민감독)
한많은 청춘(1958,권영순감독)
자식복 돈복(1959,윤대룡감독)
아 백범 김구 선생(1960,전창근감독)
귀부인(1968,이형표감독)
춘원이광수(1969,최인현감독)
무정검(1969,권영순감독)
유정검화(1969,권영순감독)
얼굴이 아니고 마음입니다(1983,이형표감독)
엄마와 별과 말미잘(1995,유현목감독)
주요기타작품
■ 주요작품(TV)
해돋는 마을
억세풀
삼국사기
애착작품 및 사유
뭐든지 진지하게 작품하나 하더라도 열심히 한다. 작품을 개봉했을때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를 생각하면서 연기가 사회에 기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출연한다. 영화,연극 시스템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작품"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본인이 하고 싶은 배역은 이순신 장군역이다. 자기를 생각지 않고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것이 참 좋다.
하고싶은 말
본인이 어렸을 때는 영화를 예술로 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예술작품으로 대접받는다.그래서 영화가 더 발전했으면 한다.폭력영화나 보잘것 없는 영화 말고 '맨발의 청춘'같은 영화가 있으면 좋겠다. 제가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조급한 마음을 갖지 말라.연극이나 영화를 하려는 사람중에 출세하고 싶다는 마음에 조급한 사람들이 있다며 본분 지키고 열심히 기량을 닦아나가면 빛을 출세할 것이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한 사람의 연기자가 되려하기보다는 훌륭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면 좋은 연기자가 될 것이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본인은 '청춘행로'가 첫출연작이어서도 그렇고 내용은 좋아서 애착을 가지고 있다.'한많은 청춘'에서 본인은 선생님 역을 맡았는데 좋은 내용을 아주 진지하게 만든 영화라서 애착이 간다. 또 감독이 친구였고 자기 사업으로 알고 같이 애썼기에 더 애착이 간다. '자식복 돈복'은 운전수가 자식 데리고 인생을 헤쳐나가는 내용인데 아주 좋았다.
자기소개 및 취미
자식들은 결혼해서 소련,미국,뉴질랜드에 이민 가 있고아내와 단 둘이 산다. 심장이 좋지 않다. 고혈압에 당뇨도 있고 해서 한달에 두번 병원에 간다. 요즘은 걸어다니는 것도 힘들다. 영화계에 비슷한 연배는 한 둘 남고 거의 없어서 고독하다.평일에는 책을 보고 며칠에 한 번씩은 대학로에 있는 '밀다원(찻집)'에서 옛동료를 만나는 것이 낙이라면 낙이다. 본인은 자신을 '골동품'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연기를 그만 두겠다는 생각은 없다. 나이 들어 어렵긴 하지만. 본인은충청도 사람이다.그래서 충남대에 시나리오를 다 기증했다.
수상내역(영화)
백상예술대상(1987) 공로상/국민훈장 옥관장(1991)
수상내역(기타)
■ 수상내역(연극)
동아연극상(23회-1986) 특별상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17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다(김기제). 1941년 설립된 국민연극연구소(國民演劇硏究所)에 연구생으로 입학하여 과정을 끝마쳤다(매일신보, 김기제). 1942년 국민연극연구소를 운영하던 극단 현대극장(現代劇場)에 입단하면서 배우생활을 시작했으며, 해방 후 1947년 극단 청포도(靑葡萄), 1948년 민예(民藝) 등을 거쳐 신협(新劇協議會)에 들어갔다(김기제). 1946년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를 통해 영화에도 데뷔했으며, 장황연의 <청춘행로>(1949), 신상옥의 <젊은 그들>(1955), 이강천의 <백치 아다다>(1956), 김기영의 <봉선화>(1956) 등에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 자리 잡았다. 1955년 <젊은 그들> 이래로 매년 끊이지 않고 영화에 출연했으며, 유현목 감독의 1994년작 <말미잘>이 마지막 작품이다. 2000년 1월에 별세했다.

* 참고문헌
매일신보 1941년 5월 15일자 4면
김기제 편, 『한국연예대감』, 성영문화사, 1962, 183쪽, 244쪽.

[작성: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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