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Kim Jin-kyu / 金振奎 / 1922  ~  1998
대표분야
배우, 감독, 제작/기획
데뷔작품
피아골(이강천감독) 1943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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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종자돈 (김진규, 1967)
배우 :
하녀의 방 (김인수, 1987)
초야에 타는 강 (김기, 1985)
욕망의 거리 (김현명, 1985)
사랑하는 사람아 제3부 (장일호, 1984)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정진우, 1984)
야망과 도전 (남기남, 1984)
아가씨와 사관 (이영실, 1984)
가고파 (곽정환, 1984)
화평의 길 (강대진, 1984)

주요경력

1968년 예총 부회장 당선, 역임
영화 배우협회 회장역임
1982년 영화인협회 회장역임
1965년 서울 문화상
1964년 5.16 문예상
1996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상

기타정보

주요 영화작품
피아골(1955,이강천감독)
처녀별(1956,윤봉춘감독)
포화속의 십자가(1956,이용민감독)
옥단춘(1956,권영순감독)
사랑(1957,이강천감독)
이국정원(1958,전창근감독)
나 혼자만이(1958,한형모감독)
동심초(1959,신상옥감독)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1959,신상옥감독)
이 생명 다하도록(1960,신상옥감독)
하녀(1960,김기영감독)
성춘향(1961,신상옥감독)
오발탄(1961,유현목감독)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신상옥감독)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1962,전응주감독)
왕자 호동(1962,한형모감독)
고려장(1963,김기영감독)
아스팔트(1964,김기영감독)
잉여인간(1964,유현목감독)
진고개 신사(1964,이강원감독)
벙어리 삼룡이(1964,신상옥감독)
순교자(1965,유현목감독)
유정(1966,김수용감독)
태양은 다시 뜬다(1966,유현목감독)
흙(1967,장일호감독)
카인의 후예(1968,유현목감독)
나도 인간이 되련다(1969,유현목감독)
성웅 이순신(1971,이규웅감독)
의사 안중근(1972,주동진감독)
삼포가는 길(1975,이만희감독)
마지막 포옹(1975,최하원감독)
난중일기(1977,장일호감독)
사랑하는 사람아(1981,장일호감독)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1982,이원세감독)
가고파(1984,곽정환감독)
자기소개 및 취미
취미:승마,수영,낚시,사냥
특기:모터싸이클,수영,승마,외국어(일어,영어,중국어),사투리(충청도,경상도,전라도)
수상내역(영화)
1960년 제3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비극은 없다>)/
1961년 제4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박서방>)/
1962년 제5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성춘향>)/
1964년 제2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잉여인간>), 인기상(남)/
1965년 제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벙어리 삼룡>), 제3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잉여인간>), 제8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벙어리 삼룡>)/
1966년 제5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태양은 다시 뜬다>), 제4회 청룡영화상 인기상(남), 제9회 부일영화상 인기상/
1967년 제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연기상, 제5회 청룡영화상 인기남우상/
1969년 제6회 청룡영화상 인기남우상, 제12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카인의 후예>)/
1975년 제14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 (<삼포가는 길>), 제1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연기상 (<광화사>)/
1977년 제16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난중일기>)/
1986년 제25회 대종상 영화제 86 영화인상/
수상내역(기타)
1965년 서울 문화상/
1964년 5.16 문예상/
1996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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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2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일본 오이타(大分)현 농업전문학교를 마쳤다. 귀국 후 20살 무렵 삼촌의 소개로 동양극장 무대에 서면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다. 해방 뒤 장동휘와 함께 극단 장미(薔薇)를 만들어 순회공연 중, 이강천 감독에게 발탁되어 <피아골>(1954)로 영화계에 데뷔했다(한겨레). 데뷔 당시부터 20여 년간 그의 한자 이름은 김진규(金振奎)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한 성명의 한자는 김진규(金振圭)이다(경향신문a). 이후 그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배우로 발돋움한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 등 개성 있는 작품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연기의 폭을 넓혔고, 강대진의 <박서방>(1960), 신상옥의 <로맨스 빠빠>(1960),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등에서 말쑥한 청년 역으로 주목을 모으며 인기 배우가 되었다. 그를 스타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은 결정적인 작품은 신상옥 감독의 대표작 <성춘향>(1961)이다. 그는 ‘몽룡’ 역으로 특유의 깔끔하고 건강한 청년 이미지를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안정감 있는 연기력과 대중들의 사랑을 바탕으로 부일영화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등 당대 수많은 영화제의 남우주연상 및 인기상을 수상했다. 1967년 김진규는 김용익의 영문소설을 영화화 한 <종자돈>으로 첫 메가폰을 잡았다(동아일보a). 신영균과 김보애가 주연을 맡았고,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문예영화였다. 이후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야심차게 <성웅 이순신>(1971)의 제작에 뛰어들었으나 흥행에 실패했다(경향신문b). 이후 제작에는 손을 떼고,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배우 생활을 지속해 나갔다. 예총 부회장 및 영화인 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지병인 골수암으로 1998년 향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동아일보b).

* 참고문헌
동아일보a 1967년 6월 6일자 5면
동아일보b 1998년 6월 19일자 14면
경향신문a 1976년 12월 16일자 8면
경향신문b 1977년 12월 27일자 5면
한겨레신문 1998년 6월 19일자 13면

[작성: 김한상]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24년 5월 12일 충남 서천 출생. 대전중학교를 거쳐 일본 오오이다껜 농업전문학교 2년 수료. 영화계로 진출하기 전까지는 동양극장 등 무대에 선 연극배우였다. 20세 때 첫 출연한 이 공연의 레퍼터리는 <살구꽃>. 1954년 극단 장미를 이끌고 진해 공연에 나섰을 때 이강천 감독에게 발탁되어 그의 대표작 <피아골>(1955)의 주인공으로 출연, 영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를 계기로 <아빠 안녕>(1955) <이 생명 다하도록>(1960) <오발탄>(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새엄마>(1963) <벙어리 삼룡이>(1964) 등 흥행 및 작품성 있는 영화에서 기량을 발휘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정상급 배우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그가 처음 메가폰을 잡은 것은 1967년 재미작가 김용익 원작, 임희재 각색, 신영균·김보연 주연의 <종자돈>.
서해안 어느 농촌을 무대로 암소를 가진 과부와 황소를 기르는 홀아비의 어린 아들 딸들의 눈에 비친 그들의 애정을 서정적인 풍경 속에서 녹여낸 작품이다. 그뒤 <성웅 이순신>(1970)을 사재를 털어 제작, 주연으로 내놓았으나 흥행에 실패함에 따라 더이상 연출에는 손대지 않았다. 한국배우협회 회장, 영화인협회 이사장, 예총 부회장 등 역임. 1998년 6월 18일 골수암으로 별세했다. 당시 7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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