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문헌자료 컬렉션

새로운 자료로 만나는 김기영: 김기영 문헌자료 컬렉션

1953년부터 1990년까지 총 35편의 영화를 연출한 영화감독 김기영(金綺泳)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김기영의 장남 김동원, 촬영감독으로 연을 맺은 정일성, [김기영 시나리오 선집Ⅱ](김기영, 김홍준 편, 한국영상자료원, 2008., 이하 [선집Ⅱ])를 편집한 김홍준 등의 기증 자료를 포함해 총 249점(복본 제외)의 김기영 관련 문헌자료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김기영 문헌자료 컬렉션>은 이 249점의 자료를 연구자와 영화 애호가가 간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정리한 것입니다. 

<김기영 문헌자료 컬렉션>의 자료들은 한국영상자료원의 유형 분류 기준에 따라 분류하면, "시나리오/콘티" 175점, "기타자료" 72점, "심의서류" 2점으로 분류됩니다. 이중 자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나리오/콘티"(175점)는 김기영의 1957년 작 <황혼열차>부터 그의 미완성 유고인 <생존자>, 김기영 사후에 기획된 리바이벌 영화 <악녀> 그리고 <황혼의 만하탄>(강범구, 1974)과 같이 그가 시나리오 집필에 참여한 작품을 포함해, 총 61편의 시나리오로 구성돼 있으며, "기타자료"(72점)는 <렌의 애가>(1969), <화녀>(1970), <충녀>(1972), <육체의 약속>(1975), <반금련>(1981) 등과 관련한 제작실무자료와 김기영의 육필 메모, 기타 미완성작 집필을 위한 단상 및 시놉시스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컬렉션의 "심의서류"(2점)는 <천사여 악녀가 되라>의 제명 변경 승인서와 미완성작 <아라리오 전설> 제작과 관련한 정부 행정문서로, 두 편의 영화 제작과 관련한 일조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합니다(그밖에 김기영의 연출작에 관한 심의서류 전체는 <김기영 검열자료 컬렉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를 정리하면서 중점적으로 고려한 것은 ⑴ 시나리오 판본 각각의 생산 시기와 ⑵ 육필입니다. 한 편의 영화에 시나리오 판본은 여럿 존재합니다. 그 이유는 창작자의 불만족 혹은 제작사의 요구 등 다양하겠지만, 1997년 사전 심의 폐지 이전에는 검열 당국의 심의 사항 준수가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1955년부터 1990년에 이르는 김기영 감독의 활동 시기는 시나리오 및 극영화 심의가 이뤄진 시기와 고스란히 겹칩니다. 국가 검열은 당대 창작자에게 불운이었을지 모르나, 후대 연구자는 심의 과정에 생산된 수많은 서류를 통해 해당 작품의 생산 환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을 활용해, 본 컬렉션에서는 심의 서류에 기재된 시정 요청 사항과 기안 연월일을 활용해 시나리오 판본의 생산 시기를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심의 서류가 일부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천사여 악녀가 되라(죽어도 좋은 경험>(1990)와 같이 시기 판정이 어려운 시나리오도 일부 존재합니다.) 개별 시나리오 판본의 생산 시기에 대한 정보를 참고해 최종 결과물=영화를 소실점으로 삼아 이 자료들을 연대순으로 살핀다면, 우리는 김기영 아이디어의 변천 과정 혹은 검열 당국과 김기영 사이의 힘겨루기를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육필입니다. 김기영의 육필은 본 컬렉션 곳곳에 존재합니다. 인쇄본 시나리오를 제외한 대부분의 자료가 육필 콘티·메모이며, 시나리오 대본 위에 육필 메모가 적혀있는 경우-이러한 자료는 인쇄본이 같더라도 다른 자료로 배치-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육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물 번짐으로 인한 얼룩(blot)이 육필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경우가 잦고, 자료 손상이 없는 경우에도 간체자·일본어를 섞어 사용하는 김기영의 “암호 같은 글씨”와 메모 배치의 두서없음은 독해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앞서 시나리오 판본들이 하나의 작품으로서 독자-주로 검열관-에 읽히기를 염두에 둔 데 반해, 육필 메모는 ‘예술적 형상화’에 앞서 의도를 투명하게 비치거나 순간적인 인상을 잡아두고 있기에 주목을 요합니다. 독해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나 그 한계보다 이러한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판단했기에, 이번 컬렉션에서는 일부 문구에 대해서는 부정확할지라도 해독을 시도했으며 자료해설을 통해 해당 육필 자료를 개관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한국영화사에서 김기영 감독이 다뤄진 방식을 고려하면 <김기영 문헌자료 컬렉션>은 특히 뜻깊은 전기를 마련하리라 기대됩니다. 1963년 영화평론가 이영일이 최초의 김기영 감독론을 “감독론의 대상으로서 생각할 때 가장 정체를 잡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김기영이다”로 서두를 열었을 때부터, 한국영화 담론에서 김기영은 다소간 예외적인 존재, 곧 "특이아"·"괴인"·"돌연변이"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중심이 아닌 외곽으로 시선을 돌려 찾아낸 주변적이고 하위적이어서 매력적인 영화”에 대한 열광, 즉 컬트 현상으로 김기영이 재발견되면서 더욱 증대되었습니다. 한 역사학자가 옛 지도에서 괴물의 존재를 역사학에서 탐구의 미진함으로 빗대었듯, 여백(돌연변이) 혹은 과잉(특이아, 괴인)은 한국영화사 연구에 김기영이 여전히 미답의 영역으로 남아있음을 암시합니다. 기실 “매스컴 쪽은 물론 영화 종사자들과도 접촉을 꺼리는” 생활 습관 때문인지 김기영은 작가 연구의 기초 토대로 기능할 수 있는 자기 서사를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1960~70년대의 또 다른 대표적 영화감독 김수용·신상옥·유현목이 단행본 자서전을 출간 및 전문 연구자와의 구술 채록을 했으나, 김기영은 자서전도 구술 채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김기영 연구의 실증적 토대는 다소 빈약한 수준입니다. 그러므로 <김기영 문헌자료 컬렉션>을 통한 관련 사료의 포괄적 정보 공개는 김기영 연구의 실증적 확장의 계기를 마련할 것입니다. 

※ <김기영 문헌자료 컬렉션>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 게시물 하단에 첨부된 [해제 다운로드]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 개별 자료에 대한 세부 정보 및 상세 해설은 아래 ‘자료 목록’의 자료명을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 조사·연구: 금동현(영화사연구자, 《마테리알》 편집진)
- 기획·진행: 이지윤(한국영상자료원)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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