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다웅 로맨스: <동갑내기 과외하기>(김경형, 2003) 월간스크린 ㉙ 한국영화 현장 기행

by.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전 스크린 편집장) 2019-04-25조회 1190
동갑내기 과외하기 스틸

2003년 | 코리아엔터테인먼트

감독: 김경형 | 원작: 최수완 | 각본: 박연선 | 각색: 김경형 | 제작, 기획: 이서열 허대영 | 촬영: 지길웅 | 미술: 오상만 김현옥 | 음악: 이경섭

CAST 수완: 김하늘 | 지훈: 권상우 | 종수: 공유 | 호경: 김지우 | 지훈 부: 백일섭 | 지훈 모: 김혜옥 | 수완 모 : 김자옥 | 수완 부: 오승근 

2000년대 초 한국영화의 트렌드 중 하나는 인터넷 소설과 청춘영화의 결합입니다. <엽기적인 그녀>(곽재용, 2001)부터 시작되어 <늑대의 유혹>(김태균, 2004)에서 정점을 맞이했는데, 그 중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바로 <동갑내기 과외하기>였습니다. 이 영화로 김하늘은 새로운 이미지를 더했고, 권상우는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죠. 
 

2002년 12월에 촬영 현장을 공개했습니다. 장소는 양수리 종합 촬영소의 세트장이었고요. 수완(김하늘)과 지훈(권상우)의 첫 과외 장면이었는데요, 지훈은 ‘호사다마’를 당구 용어로 여기고 ‘to 부정사’는 몰라도 ‘정사’는 안다며 깐족대는 동갑내기 제자입니다. 그런 제자 앞에서 수완은 철 없는 연애 사건을 들켜 버리네요.
 
 
낮에는 과외 전선에서 뛰고 밤에는 스쿠터를 타고 닭 배달을 하는 수완. 고등학교를 유급한 제자 지훈 앞에서 포커페이스가 되지 못해 결국은 화를 터트립니다. 이 영화 전까지 김하늘은 ‘멜로’ 이미지가 강했고 TV 중심으로 활동했는데요, ‘청춘 코미디’ 장르로 영역을 확장하고 영화배우로서도 확고히 자리를 굳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됩니다.
 
 
대학 진학? 지훈의 목표는 소박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하지만 아직 공부할 자세가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권상우는 당시 2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화산고>(김태균, 2001) <일단 뛰어>(조의석, 2002)에 이어 계속 교복 입는 캐릭터를 맡았습니다. 2004년엔 <말죽거리 잔혹사>(유하)에 출연하기도 했죠. “유니폼 입는 캐릭터가 그래도 멋진 것 같아요. 나중에 신부 역할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예언이었을까요? 그의 꿈은 1년 후 <신부 수업>(허인무, 2004)으로 이뤄집니다.
 
  
“사면초가가 무슨 뜻이야?” “다구리 붙을 때 사방에 적이라는 뜻이지!” 불량스러운 수업 태도를 보여주던 지훈은 아예 담배까지 꺼내 입에 뭅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권상우는 포즈 잡기가 어색한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세를 고쳤습니다. 티격태격 하는 설정이지만 현장에서 김하늘과 권상우는 척척 죽이 맞는 호흡을 보여주었습니다. “정말 에너지가 넘쳐요. 촬영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상대방을 참 기분 좋게 해주는 배우예요. 저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낼 때가 있는데요, 권상우 씨는 만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게 우리 영화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김하늘) “하늘 씨는 나보다 오래 연기한 선배지만,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는 게 아니라 편안하게 만들어줘요. 나중에라도 기회가 닿으면 하늘 씨랑 꼭 다시 연기하고 싶어요.”(권상우) 그리고 두 사람은 3년 후에 <청춘만화>(이한, 2006)에서 재회하죠.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지금까지 나온 코미디랑 다른 점이 있다면 ‘깨끗한’ 코미디 영화라는 점이에요. 제목이 ‘과외하기’인데, 난잡할 수 있겠어요?(웃음)”(권상우)  “코미디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이 있다면 그건 배우들이 망가진 행동으로 웃기려 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 영화에도 물론 그런 장면이 없지 않죠. 하지만 막무가내로 웃기려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와 상황으로 웃긴다는 게 장점이에요.”(김하늘)
 
 

결국 참지 못한 수완은 지훈의 코에 담배를 쑤셔 넣습니다. 권상우가 아플까 싶어 김하늘이 몇 차례 NG를 거듭하자 김경형 감독이 한 마디 던집니다. “아프게 쑤셔 넣어도 괜찮으니까, 그냥 힘차게 해!” 감독의 디렉션에 용기를 얻은 김하늘은 과감한 연기로 단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로 뒤늦은 데뷔를 하는 김경형 감독은 노랗게 염색한 머리로 현장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습니다. KBS에 입사해 드라마 현장을 먼저 접한 그는 이후 영화의 매력에 빠져 사표를 던지고 충무로에 뛰어들었고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김성홍, 1990)의 연출부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흔 세 살의 나이에 첫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만났습니다.
 
 

대부분 슬픈 역할을 맡았던 김하늘에게 <동갑내기 과외하기> 현장은 조금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감독님이 나이에 비해 참 젊으세요. 장난꾸러기?(웃음) 감독님이 오히려 저희들한테 애교도 부리시고요. 그러니까 스태프들도 편하게 풀어지고 배우들도 풀어지고…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죠.”
 
 

김경형 감독이 권상우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는 와중, 김하늘은 휴지를 입에 대고 기침을 합니다. 촬영 당시 몸살 감기였는데요, 이날 촬영도 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고 오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죠. 그런데… 그 감기가 바로 권상우에게 옮은 것이었다는 사실. “감기 걸려서 입원까지 했다가 거의 나을 때쯤 됐는데, 상우 씨가 또 감기에 걸려서 온 거예요. 저한테 감기 옮긴다고 장난으로 막 침 튀기고 그랬는데, 정말 다시 감기 든 거 있죠.”(김하늘) “제가 진짜 죽일 놈입니다.(웃음)”(권상우)
 
 

김경형 감독이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장면의 톤을 배우들에게 전합니다. 한편 두 배우가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시나리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고 하네요. “시나리오를 차 안에서 단숨에 다 읽었어요.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냥 하겠다고 했죠.”(권상우) “저도 차 안에서 봤는데, 원래는 드라마 <로망스> 촬영중이라 그 대본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잠깐 본다고 읽기 시작한 <동갑내기 과외하기> 시나리오를, 차에서 내려 식사하러 갈 때까지 들고가게 됐어요. 그리고 쉽게 결정 내렸어요.”(김하늘)
 
 

영화에선 ‘날나리’지만 학창 시절 권상우는 ‘범생이’였습니다. “저는 진짜 고등학교 때 커피숍 한 번 안 가봤어요. 친구들이랑 운동하고, 주말에 영화 보러 가고, 가끔 친구네 집에서 놀고. 담배도 안 피우고요. 재밌게 노는 학생이긴 했어도, 겁이 많아 얌전했어요.” 사정은 김하늘도 마찬가지. “학교 다닐 때 제일 말썽 부린 게 지각 정도였죠.”
 
 

지길웅 촬영감독은 우리에겐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2003) <왕의 남자>(2004)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엔 신부 역으로 잠깐 출연하기도 하는데요,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 2>(2007)에선 김호정 감독과 공동으로 연출을 맡기도 했습니다.
 
 
“지금 저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일하는 게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는 거예요. 처음 일 시작할 때는 정말 행복하지도 않았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내가 왜 항상 밝은 척 웃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그게 다 일이 즐겁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해지고, 그러니까 좀 더 좋은 연기 보여줄 수 있게 되고… 저한테는 정말 중요한 변화예요.” 김하늘에게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일의 즐거움을 깨닫게 한 작품입니다.
 
 
“저는 솔직히 드라마에 나온 제 모습을 보면 짜증나요. 주눅 들어서 연기하는 것 같아 보이거든요. 영화 촬영장에 오면 훨씬 편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드라마보다 영화가 하고 싶어요. 이제 봄이 되면 데뷔한 지 딱 2년이에요. 그 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제가 출연했던 작품들을 보고 사람들이 ‘권상우 뭔가 했구나’라고 생각할 만한 건 아직 없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권상우가 뭔가 한’ 첫 작품인 셈입니다.
 
 
부잣집 도련님답게 패러글라이딩이 취미인 지훈.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실연 당한 동갑내기 과외 선생님을 위로하기 위해, 이후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타러 나간다.
 
 
필름 감는 소리만 조용히 들리는 가운데 연기에 몰입하는 권상우. 그런데 갑자기 동시녹음 기사가 버럭 호통을 칩니다. “누가 배에서 꼬르륵거려!” 그 주인공은 권상우였고, 멋쩍게 웃으며 자진납세 하는 바람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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