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스크린]귀여운 콩가루 가족: <귀여워>(김수현, 2004) 월간스크린㉒ - 한국영화 현장 기행

by.김형석(영화저널리스트, 전 스크린 편집장) 2019-02-25조회 5,535
귀여워

2004년 | 튜브픽쳐스

감독, 각본: 김수현 | 각색: 김소정 김봉훈 | 제작: 황우현 황재우 | 촬영: 김철주 | 미술: 박혜성 | 음악: 이병훈

CAST
순이: 예지원 | 963: 김석훈 | 뭐시기: 정재영 | 개코: 박선우 | 장수로: 장선우 | 막내: 박희순 


사연은 이렇습니다. 박수무당인 장수로(장선우)는 자신을 찾아온 여인네들에게 씨를 퍼트렸고, 그래서 배다른 형제들이 탄생합니다. 퀵서비스맨 963(김석훈), 레카차 드라이버 개코(박선우), 그리고 조폭인 뭐시기(정재영). 여기에 순이(예지원)이 가세하며 가족을 이룹니다. 순이는 길에서 뻥튀기를 팔다가 우연히 개코를 만나 가족이 되었고, 장수로는 젊은 순이에게 연정을 품죠. 이처럼 <귀여워>는 어느 콩가루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귀여워

이 영화의 현장 공개는 실외와 실내 모두 이뤄졌습니다. 실외는 2002년 11월, 실내는 2003년 1월이었는데요, 영화 개봉이 2004년 11월이었던 걸 감안하면 꽤 간격이 큽니다. 원래는 2003년 5월 개봉이었는데 계속 미뤄졌기 때문이죠. 공개된 장면은 뭐시기가 아버지 장수로를 찾아온 신입니다. 동네 평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데요, 딱 봐도 건달기가 줄줄 흐릅니다. 역할을 위해 실제 건달과 합숙하면서 연기를 준비했는데 단 며칠 만에 완벽하게 ‘조폭화’되었다고 하더군요. 

귀여워 

뭐시기를 바라보는 장수로 역의 장선우입니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파와 콩나물 봉지를 들고 있죠. 사실 <귀여워>의 가장 놀라운 캐스팅은 장선우입니다. 김수현 감독은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꽃잎>(1996) <나쁜 영화>(1997) 연출부 출신인데요, 자신의 데뷔작에서 스승을 배우로 모셔온 셈이죠. 원래는 한진희 씨가 맡을 예정이었는데 일정이 지연되면서 무산되었고, 이때 튜브픽쳐스의 황우현 대표가 ‘장선우 캐스팅’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의외로 주변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역할 제안을 하게 되었으며, 처음엔 난처해하던 장선우 감독은 농담처럼 “한번 망해보자”며 승락했다고 합니다.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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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시기가 앉아 있는 평상 근처의 풍경입니다. 황학동 철거촌 주변 아파트죠. 김수현 감독은 말합니다. “철거는 서울의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죠. 황학동 아파트는 60년대 후반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처럼 부의 상징이었는데 10년도 못 가 철거가 거론됐어요. 서울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독특한 성격인데요, 끊임없이 변화가 이뤄지지만 실상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어요. 세우고 부수기만 반복할 뿐이죠.”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는 지금은 사라진 폐허의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서울에 대한 기록의 측면에서도 가치를 지닙니다.

귀여워 

<나쁜 영화> 연출부를 끝내고 일란성 세쌍둥이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던 김수현 감독은, 장수로와 순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면서 이야기가 쉽게 풀렸고 그 결과물은 <귀여워>가 됐습니다. 963의 퀵서비스나 개코의 레카차 운전사는 모두 감독이 직접 경험했던 직업이라고 하는데요, 생계를 위해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자연히 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야생적 느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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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예지원은 <생활의 발견>(홍상수, 2002) 이후 독보적인 아우라를 지니게 된 배우였죠. 그녀에게 ‘순이’는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안성맞춤 캐릭터였습니다.

귀여워 

좁은 아파트 복도에서 촬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안 실내 장면은 양수리 세트에서 촬영되었습니다.

귀여워 

2003년 1월에 개봉된 세트 촬영 현장입니다. 밖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둘째 개코가 발톱을 깎으면서 맞이합니다. 이 역할을 맡은 배우가 왠지 낯익다고 느껴지신다면… 맞습니다. ‘하얀 겨울’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남성 듀오 ‘미스터 투’의 멤버 박선우입니다. 김수현 감독의 동국대학교 영화과 후배인데요, 파격 캐스팅을 통해 이 영화로 데뷔해 신인답지 않는 노련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박선우는 영화음악을 맡기는 줄 알고 연락을 받자마자 김수현 감독에게 달려왔다고 하는데요, 기다리는 건 ‘개코’라는 캐릭터였습니다.

귀여워 

이날 963은 오토바이에 순이를 태우고 질주하다가 함께 집에 들어오는데요, 순이를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하는 장수로는, 아들에게 순이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며 아들의 뒷통수를 갈깁니다. 약간은 비뚤어지고 냉소적이면서 내성적인 963은 어쩌면 이 영화에서 연기하기 가장 까다로운 역할일 텐데요, 김석훈은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역할을 해냈습니다.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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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구조가 매우 특이합니다. 철거촌에 있는 집인데. 집 안도 철거되어 있는 셈이죠. 좁은 세트 안에서 앵글을 만들어내기 위해 구조를 조금씩 바꿔가며 촬영을 했습니다.

귀여워 

당시 예지원의 매니저는 지금은 고인이 된 하용수였습니다. <귀여워> 시나리오를 읽고 “혹시 예지원이라는 배우를 잘 알고 쓴 시나리오냐?”고 물을 정도로 적역이었다고 하네요. 배우 역시 순이와 자신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준비 과정부터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었고 현장에서 감독에게 가장 힘이 되어 준 배우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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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재영은 <킬러들의 수다>(장진, 2001) <피도 눈물도 없이>(류승완, 2002)로 조금씩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하며 거친 마초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말끝마다 “뭐시기”라는 말을 붙이는 뭐시기는 철거반을 이끄는 건달인데요, 정재영은 거의 완벽하게 역할을 해냅니다.

귀여워

장수로의 부스스한 헤어스타일도 섬세한 작업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장선우의 연기에 대해 현장 스태프들은 “연기와 연기 아닌 것의 경계에 서 있는 묘한 느낌의 연기”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귀여워 

현장에서 김수현 감독은 매우 꼼꼼한 스타일이었습니다. 감독은 <귀여워>가 결국은 “네 남자가 순이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는 영화”라며, 남자들의 그 귀여운 모습이 <귀여워>라는 제목의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감독은 <창피해>(2011) <우리 손자 베스트>(2017) 등을 내놓았습니다.

귀여워 

김수현 감독은 말합니다. “남자들은 무엇인가 계속 이뤄내려고 하죠. 세상이든 자신이든 끊임없이 변화시키려고 하는데, 정작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요. 반면에 순이는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가벼운 사람인 것 같지만 그녀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요. 그녀는 변화를 주도하지 않고, 상대에 반응하면서 변화를 이끌어내죠. 남자들이 뭔가 이루려고 아등바등해서 세상이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자연에 동조하며,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대안을 보여주는 모델이 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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